▲ 정용길 충남대교수

염홍철 대전 시장이 <디트뉴스24>를 상대로 하여 1억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의 민사소송을 제기하였다. 신문에 실린 칼럼을 문제삼아 지난 6월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했으나 중재가 성립되지 않자 소송이라는 극단적 수단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해 8월 2편의 칼럼과 1편의 기사에 대해 2천만 원의 1차 소송을 제기하였고, 12월 말 디트뉴스 편집국장이 작성한 4편의 칼럼을 문제삼아 1억 원의 2차 소송을 제기하였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황당하다는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정확한 사실의 전달과 권력에 대한 감시와 비판이 언론의 존재 이유이다. 사실과 다른 기사가 신문에 실리면 정정 보도를 통해 사실을 바로잡으면 되는 것이고, 칼럼이나 사설과 같은 의견기사에 대해서는 ‘사상의 자유시장(free marketplace of ideas)’에 맡겨 언론 소비자인 독자들이 판단하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칼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여 선출직 공무원인 대전 시장이 언론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구시대적인 작태이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심각한 침탈 행위이다.

명예는 개인의 기본권으로서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심지어 죽은 사람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죄를 인정하는 것은 명예가 인간의 삶에 매우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인의 권리인 명예를 지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 내지 ‘언론의 자유’와 충돌하는 부분이 있다. 즉 개인의 명예를 두텁게 보호하면 필연적으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된다. ‘개인의 권리’와 ‘언론의 자유’라는 두 가지 보편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한 지혜가 필요하다. 명예훼손죄는 소송을 제기한 당사자가 누구인지, 보도내용이 사실인지 또는 의견인지, 그리고 보도내용의 성격이 어떠한지에 따라 다른 판단을 요한다.

명예훼손죄는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사인(私人)인지 또는 공인(公人)인지에 따라 법의 적용이 달라진다. 사인의 경우에는 개인의 기본권으로서 철저하게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공직자의 경우에는 공공의 혹독한 감시대상이 되는 위험을 처음부터 감수하고자 했고, 일반인에 비해 언론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하여 반론을 쉽게 제기할 수 있기 때문에 폭넓은 비판의 대상이 된다.

공직자들의 명예를 일반인과 같은 수준으로 보호하게 되면 공직자의 개인적 명예는 보호되겠지만 국민의 알 권리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실현이라는 더 큰 공적 가치는 희생된다. 그렇기 때문에 공인의 경우에는 ‘개인의 권리’보다 ‘언론의 자유’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세계적 추세이다. 그러한 면에서 국제언론자유수호단체인 Article 19는 공직자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나 공직자의 비리 또는 부패행위의 폭로를 막고자 할 경우에는 명예훼손이 정당화될 수 없다고 하였다.

명예훼손의 문제는 언론의 보도 내용이 ‘사실(fact)’인지 또는 ‘의견(opinion)’인지에 따라 다르다. 즉 사실기사는 객관적으로 진실성 여부를 판별하기가 용이하지만 의견기사의 경우에는 주관적 판단과 가치관이 개입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의견의 표출과 논쟁은 언론과 민주주의의 핵심이기 때문에 순수한 의견기사에 대해서는 애초부터 명예훼손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사실의 보도에 관해서도 ‘엄격한 책임성’이 요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정확한 사실을 보도하는 것이 언론의 기본적 책무이지만 공적인 토론에 있어서 허위사실의 표현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지나치게 요구하면 스스로 '자기검열'에 빠져 언론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되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사실과 다른 내용이 있어도 전체적인 맥락에서 진실에 접근하고 있으면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언론 선진국인 미국에서는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의 경우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첫째는 종래 피고가 부담하던 ‘진실의 증명책임’을 원고에게 전환시켰다. 둘째는 원고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증명하지 않는 한 명예훼손을 인정하지 않았다. 즉 기사의 발행 당시에 피고가 보도내용이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거나, 내용의 진실성 여부에 대해 무모하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경우가 아니면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공인이라 하더라도 개인의 신상에 관한 정보나 프라이버시는 보호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 문제를 삼은 칼럼은 모두 이 지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공적 사안에 관한 것이며, 전문가들과 시민단체 그리고 언론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대전시의 현안들이다. 이러한 사안일수록 공적 토론의 광장에서 치열한 토론과 논쟁이 필요한 것이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좀 더 합리적인 대안이 마련되는 것이다.

개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명예훼손죄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다만 소송을 제기한 원고가 사인이 아닌 공인의 경우에, 사실기사가 아닌 의견기사의 경우에, 또한 개인의 신상정보가 아닌 공적 사안에 관해서는 명예훼손이 성립되지 않는다. 염 시장의 <디트뉴스24>에 대한 명예훼손 소송은 이런 면에서 그 정당성을 상실하고 있다. 대전 시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 공인이며, 문제가 된 칼럼은 의견기사이고, 대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거액의 민사소송을 제기한 것은 비판언론에 재갈을 채우기 위한 언론탄압이며, 명예훼손소송 남용의 형태인 ‘공적 참여금지를 위한 전략소송(SLAPP, strategic lawsuit against public participation)’에 불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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