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들이여!

배치표를 받은 이땅의 수험생들에게
<기고> 송 명 석(영문학 박사  무일세종교육연구소장)
 
2012년 12월 30일 (일) 11:01:01 송명석 sms8213@hanmail.net
 
   
 
요즘은 입시철이다. 수험생이 있는 가정에서는 노심초사 도통 정신이 없다. 원서를 여러 개 써서 동으로 서로 동분서주한다. 이미 수능시험 결과가 나왔다. 기대치 이하의 성적표를 받은 수험생은 죽을 맛이다.
점수에 따라 갈 수 있는 배치표가 제시된다. 입시전문기관에서 만든 표에 따라 자신이 갈 수 있는 대학과 학과를 찾느라 고심한다. 전문기관의 유료상담까지 받는다. 그래도 기대를 충족하기 어렵다.
대학의 순위가 분명하다. 어느 대학을 입학하느냐에 따라 본인은 물론이고 가문의 위상까지도 영향을 받는다. 성적표가 부실한 부모들은 안부 받기도 겁난다.
사람의 능력을 철저히 학력으로 평가하는 한국 사회에서 시험은 극히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고통을 준다. 시험 자체가 고통이 아니라 그 결과를 수습해야 하는 고통이다. 열패감으로 청년 시절을 시작해야 한다. 그 열패감은 부모 함께 맛보는 쓰라린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다들 서울대를 생각한다. 아쉽지만 고려대나 연세대도 괜찮다. 한 발 더 양보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만 가도 열패감을 면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 가면 좋다. 교육환경이 우선 좋다. 나오면 취업과 승진도 잘 된다. 소위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꽤 높다. 학력과 학벌이 결합되어 그 위세는 막강하다.
그래서 공부를 매우 잘하고 수능 성적도 아주 잘 나오는 학생들은 서울대 가면 된다. 서울대 가기 다소 버거운 성적은 배치표에 따라 원서 작성하면 어려울 건 없다.
문제는 명문대 갈 조건이 아니 되는 수험생들이나 부모들의 고통이다.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 마음먹으면 달라진다. 미련을 버리고 시야를 넓게 보면, 마음도 달라지고 생각도 달라진다.
수험생들이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게 될 20년 후를 고려하면 굳이 명문대 갈 이유가 없다. 명문대 졸업하면 위세를 부릴 수는 있으나, 반드시 사회활동의 성취가 대학서열의 연장인 것은 아니다. 새옹지마(塞翁之馬). 외려 지금 이름 난 대학 못간 것이 전화위복이 될 가능성 많다. 단지, 20년 후를 내다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권위주의 시절의 찌꺼기가 많다. 연고주의가 대표 격이다. 혈연, 지연, 학벌이 현재도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20년 후가 되면 무력화된다.
서서히 그 징후를 드러내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 권력의 폐쇄적 통제가 사회를 지배했을 때는 끼리끼리 뭉쳐야 했으나, 이제 사회가 개방화되고 세계화 되면서 전면적인 변화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 건강한 몸과 심성, 그리고 창의적 능력만 있으면 전 세계가 활동의 무대가 된다.
이 추세가 진행되면 20년 후에는 학력과 학벌이 설 자리가 좁아진다. 싫든 좋든 국경이 허물어지고 있고, 남북의 통일은 이미 시작됐다.
점수 안 나왔다고 징징거리지 말고 겨울 금강을 한 번 호흡하고 오라. 그리고 통 크게 살 것을 다짐하자. 우리의 상상력은 이제 휴전선에서 그치지 않고, 두만강을 넘고 만주 벌판을 달려 시베리아 유럽까지 확장된다.
20년 후엔 부산에서 출발하는 유라시아 횡단 열차를 타고 배낭여행을 가게 된다. 그땐 미국, 중국, 일본만이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인도, 중앙아시아까지도 우리의 생활권이 된다.
이런 시대를 살아 갈 사람들에게 출처도 불분명한 공부라는 게 그 어원이 '지아비 되기'인 것으로, 현대화하자면 '어른 되기' 혹은 '성숙한 사람 되기'일 터인데, 성숙의 의미는 빠져버리고 '지식습득'만이 강조되고 있는 세태이다. ‘문제해결사 되기'로 전락되었다. 그 문제라는 것은 단편적 지식의 종합에 불과하고, 깊고 창의적인 사유는 뒷전에 밀려버린 지 오래되었다.
거기에 전통적으로 지식습득은 입신출세와 불가분의 관계라 할 수 있었고, 우리 스스로 근·현대를 주체적으로 개척하지 못하면서 영미의 교육정책이 일본을 거쳐 이식·굴절되는 가운데, 교육과 학교의 바람직한 기능과 역할을 놓치고 말았다.
신분상승과 유지의 가장 유력한 도구가 되었기에 '학력지상주의', '학벌카르텔'이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거대한 벽에 도전하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분명한 배치표에 맞춰 청춘을 소비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아직 미미하나 '대안적 시도'가 진행되고 있고, 실제 그 길을 걷고 있는 청년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당당함을 보이고 있다.
분명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 땅의 수험생들이여, 모두 “파이팅”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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