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염홍철 ‘악연’은 풀렸나

   
▲ 김학용 편집위원

‘박근혜 시대’가 열리고 있다. 대전은 박근혜의 시대를 기대해도 좋을까? 대통령마다 지역통합을 주장하고, 균형발전을 강조하지만 특정 지역과는 불편하게 임기를 보내는 대통령도 없지 않다.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시 개청식에도 불참함으로써 충청지역과는 끝내 화합하지 못했다.

박근혜 새 대통령 시대는 어떨 것인가? 박근혜 박 당선인이 풍전등화의 세종시를 지켜준 공(功)은 이번 대선에서 세종시민들이 박 당선인의 손을 들어줌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대전만 놓고 보면 박 당선인과 대전은 서운한 기억도 없지 않다.

호남고속철 노선, 대전시민 실망시켰던 박근혜

요즘 대전시는 호남선 KTX가 계속 서대전역을 경유할 수 있게 해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대전시가 교통도시로서의 위상을 잃게 만드는 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일조했다. 2005년 호남고속철도 노선 싸움 때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대전(서대전역 분기)과 충남(천안 분기) 대신 충북(오송역 분기)의 편을 들어주는 당론을 채택, 대전시민들을 실망시켰다.

이에 대해 같은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염홍철 시장은 “이해가 안 간다”면서도 크게 반발하지는 않았다. 행정수도 위헌 논란 속에서 염 시장이 박 대표와 갈등을 겪는 와중에 일어난 일이다. 호남고속철을 빼앗긴 것은 대전 100년사 가운데 가장 큰 실책이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지역 공약으로 주목받았던 과학벨트 지원과 관련해서도 박 당선인은 대전시민에게 의문표를 남겼다.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2000억원’는 박 당선인의 대전공약 7가지 가운데 가장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것이었으나 그는 전액 국고지원을 끝내 약속하지 않았다.

과학벨트 부지매입비 전액 지원 끝까지 주저한 박근혜

선거 과정에서 박근혜 후보는 처음엔 “대전시가 능력껏 하는 데까지 하고 국가에서 부담해야 된다”고 했다가 반발여론이 비등하자 “선(先) 국고지원이라도 하겠다” 며 한발 양보했으나 전액 국비로 하겠다는 말은 끝내 하지 않았다. 이장우 의원 등 새누리당 지역 정치인들이 박 후보의 대전 공약집에 ‘과학벨트 국고지원’이라고 명시했을 뿐이다.

과학벨트는 명실상부한 국가사업으로, 지방정부에 예산 분담을 요구할 명분이 없을 뿐더러 2000억원이면 전체 5조원 예산의 20분의 1도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박 당선인이 끝까지 이 돈을 대전시에 요구한 이유를 지금도 알 수 없다. 박 당선인은 한 표가 아쉬운 상황에서도 그 약속을 주저한 게 분명하다.

그것이 박 당선인의 ‘원칙’ 때문이었다면 그 기준이 무엇인지를 이제라도 대전시민들에게 말해줘야 한다. 원칙이 아니라, 대전에 대한 박 당선인의 미온적인 ‘태도’ 때문이라 해도 그 이유를 대전시민들은 알아야 한다.

염홍철 시장의 ‘대선 정치’ 실패

“대전지역의 이익을 대변해줄 대선후보를 지지하겠다”고 거듭 주장했던 염홍철 시장의 발언은 무색해졌다. 염 시장은 대선 과정에서 문재인 후보를 만나,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었다. 문 후보와는 달리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사람이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염 시장의 ‘대선 정치’는 실패한 셈이다. 만에 하나, 박 당선인의 과학벨트에 대한 미온적 태도가 정치적 이유 때문이라면 ‘대선 정치’를 빙자한 염 시장의 ‘권력 줄타기’가 원인일 수도 있다.

박근혜 당선인과 염홍철 시장의 ‘악연’은 질기다. 이번에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자, 언론마다 ‘대전은요’ 사건을 박 당선인을 설명하는 과거사로 많이 인용했다.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흉기 테러를 당한 상태에서도 ‘대전은요?’라고 묻고, 환자의 몸으로 대전까지 달려왔다. 결국 불리한 판세를 뒤집었고, 염 시장은 질 수 없는 선거를 지고 말았다.

당시 박 대표는 “배신을 많이 당해봤지만 실명을 거론하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한 적이 없었다”며 “하지만 오늘은 그동안 금기시해 온 일을 깨려고 한다"는 말과 함께 염홍철 후보의 탈당을 비판했다. 박 대표가 염 시장에 대해 분노한 것은 탈당보다는 그의 거짓말이었다. “염 시장은 행정도시 특별법이 통과되자 감사 전화도 하고 감사 편지도 보내놓고, 법안 통과 5일 만에 탈당해서 한나라당이 반대하기 때문에 탈당한 것처럼 거짓말을 했다”고 말했었다.

박근혜와 염홍철의 ‘악연’ 끝나지 않았나?

염 시장은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 “행정도시 건설에 협조해준 박근혜 대표에겐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지금까지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된 것 같지 않다. 선진당과 새누리당이 통합한 뒤 염 시장은 박 후보 쪽에 대전시청을 방문하도록 요청했지만 박 후보는 응하지 않았다고 한다. 선거법 위반 소지를 이유로 들었으나 대선후보라도 자당 소속 단체장을 방문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박 후보는 이번 대선 때 경기도청은 방문했었다.

박 후보가 당선된 뒤, 염 시장의 한 측근은 기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염 시장의 사조직이 이번 대선에서 서포터 역할을 했으며, 이 부분을 (박근혜 당선인과 잘 통하는) 강창희 의장도 잘 알 것이라고 했다. 염 시장 사조직이 정말 박 후보를 위해 선거운동을 했는지, 그랬다면 선거법상 문제는 없는지 모르겠으나 측근의 시장 공치사는 오히려 ‘박근혜 시대’에 대한 대전시의 불안감을 말해주고 있다.

‘대전은요’는 박근혜 당선인의 정치와 선거에 대한 집념을 말해주는, 그의 상징어처럼 되었다. 그러나 이 말의 또 다른 주인공이 현직 대전시장이란 점에서 대전시까지 애먼 피해를 볼 수도 있다. 어느 기관이든 수장(首長)이 최고 권력자의 눈 밖에 난 사람이란 인식이 퍼지면 좋을 리 없다.

이명박 정권, 득표율 낮았던 충청권과 ‘불화’..박근혜 시대엔?

물론 이는 통합을 외치는 박 당선인 자신도 손해보는 일이다. 박 당선인은 원칙과 신뢰 말고 통합의 정치구호도 내걸었다. 대권(大權)을 쥔 자가 먼저 관용과 포용으로 대해야 한다. 박 당선인이 대통령에 취임하면 모든 시도지사를 만나겠지만 특히 염홍철 시장과는 각별히 만날 필요가 있다. 염 시장 스스로도 불신을 해소하려 노력해야 함은 물론이다.

이명박 정권과 충청권의 불화는 대선에서 이명박 지지도에서 나왔을 수도 있다. 17대 대선에서 충청도는 이명박 후보에게 호남을 제외하곤 가장 낮은 지지를 보냈었다. 이번 대선에서 대전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지지도는 호남과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낮았다.

통합을 강조하는 박 당선인이 득표율로 지역을 차별하지는 않겠지만, 정치도 사람의 일이고 이명박 정부의 예가 있으니 걱정하는 시민들이 없지 않다. 우선 박 당선인은 물론 염시장을 비롯한 지역 정치인들은 이런 우려를 해소하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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