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전남 모 군수의 공무원 체벌

   
 
60년 대 까지만 해도 공무원들이 상사로부터 따귀를 맞았다거나 정강이를 채였다는 이야기가 들리곤 했다. 그 당시만 해도 공무원사회는 지금보다는 훨씬 보수적인 분위기에 위계질서가 엄격했고 상사의 권위가 대단하여 그러려니 하며 넘어갔다.
그러나 최근 전남의 어느 군에서 상식적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군수가 체육대회 행사장에서 ‘오후 행사에 많은 공무원들이 자리를 떴다’하여 군수보다도 나이가 많은 50대 중반의 여성 과장을 비롯하여 간부 5명에게 무릎을 꿇고 손을 들게 하는 해프닝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있는 공무원과 가족, 지역기관장을 비롯한 주민 등 수 백여 명이 바라보는 공개석상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 공무원들은 가족과 주민들이 보는 앞에서 벌을 서는 수모를 당한 것이다.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에 그 무엇이 치밀어 올랐고 한편 서글퍼짐을 금할 수 없었다. 동료와 부하들에게도 민망한 일이고 가장으로써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고 주민들의 일을 보살펴 주는 공직자의 입장에서 여간 쑥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국민들이 공무원을 바라보는 눈은 어떨까 짐작이 된다.
‘얼결에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장난스럽게 벌어진 일로 누구도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다.’라고 했다지만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하고 무릎을 꿇었다가 잠시 후 일어섰으나 군수가 다시 벌을 서게 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렇게만 볼 상황만은 아닌 것 같다.
설령 행사가 소홀하거나 차질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응분의 책임을 묻는 것은 원활한 조직운영을 위하여, 또 재발을 막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그 장소와 방법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비록 자녀가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부모님 앞에서는 이를 꾸짖지 아니하고, 부모도 자녀 앞에서는 그 애비를 탓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아무리 상급자라 하더라도 아랫사람들이 있는 자리에서 간부에게 체벌을 주고, 가족과 주민들이 빤히 바라보고 있는 곳에서 망신을 줄 수 있을까?
요즈음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조용하게 넘어가기 어려울 장면이 백주 대낮에 공적인 조직에서 벌어졌다니 기가 막힐 뿐이다.
민선단체장은 형사적인 문제만 없으면 책임지고 문책 받는 경우가 없다 하더라도 지금은 왕조시대도, 절대 군주 시대도 아닌데 군수가 그런 일을 자행하다니.
그렇지 않아도 특히 민선 후에 관공서의 문턱이 낮아지고 민주화되어 공무원의 멱살을 잡고 사무실에서 난동을 치는 것을 마치 주인으로써 할 수 있는 일인 냥 착각을 하는 주민이 적지 않은데, 이런 일로부터 시달리는 공무원을 아우르고 보듬어주어야 할 군수가 그랬다면 그 가련한 공무원들이 기댈 곳은 과연 어디인가?
한편 공무원들도 마찬가지다. 그 소동을 일으킨 군수도 문제지만, 아무 말도 못했던 공무원들의 처지도 딱하고 가엾다.
아무리 상사의 지시라고 하더라도 그 군수의 체벌지시가 과연 ‘정당한 업무상의 지시’인지를 가려서 받아들이고, 당시의 상황이나 군수의 심기가 불편했다면 논리적으로 건의를 하여 조치를 해야 할 일일 텐데 이런 일련의 상황에서 직업공무원의 자부심과 자존심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하더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 기개는 찾을 수 없는가?
민선체제에서는 더욱 공무원 중심을 잡고 스스로 사명감으로 다져져야 할 터인데 왜 그렇게 작아지는지 아쉽기 그지없다.
지방자치를 시행하고 단체장을 주민의 손으로 직접 선출함은 분명 장점이 있다.
정해진 임기에 소신껏, 안정적으로 오로지 주민만을 바라보며 지역에 적합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그리고 주민들도 자신들이 선택한 일꾼이라는 공감대와 공동의 책임감으로 행정에 내 일처럼 참여한다는 정신을 갖기 때문이다.
극히 이례적인 일로 제도나 민선 공직자를 탓하거나 일반화 할 수는 없겠지만 혹시 선출직에 대한 자격시험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는다면 지방자치는 얼마나 더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몇 년 전, 한 중앙부처의 공무원이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여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공무원이 자부심이 없다면 단순한 월급쟁이와 무엇이 다른가?
오늘도 수십,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공무원이 되고자 독서실에서, 고시촌에서 감기는 눈을 비벼가며 책과 씨름하는 지망생들에게 어떻게 비쳐질 것인가?
모두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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