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정치인’과 ’정치 고수’

   
▲ 김학용 편집위원

그냥 죽어 나올 수도 있던 ‘단일화 전쟁’에서 안철수가 내놓은 의외의 사퇴 카드는 그를 다시 ‘연구 대상’으로 되돌려 놓았다. 그의 후보 사퇴 이후 부동층이 크게 늘었고, 이들 표의 향방이 대선 승부를 가를 수 있는 형국이 되었다.

안철수는 캐스팅 보터가 되어 있다. 게임에서 일단 패했지만 그의 존재감은 변함이 없다. 그 존재감은 선거가 끝난 뒤에도 지속될 가능성 있다. 도움을 받아야 하는 문재인과 민주당은 애가 타지만 안철수는 아직 사인을 보내지 않고 있다.

단일화 패배에도 존재감 여전한 안철수

안철수는 도대체 어떻게 하려는 것인가? 아니 그는 대체 어떤 사람인가? 대선에서 장(場) 밖으로 밀려났지만 그에 대한 궁금증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안철수 정치’는 이제 정말 시작이라며 그에 대해 더 주목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안철수가 정치인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이후, 또 대선 출마 선언에서 사퇴까지 두 달 남짓 보여준 모습에서 사람들은 그가 어떤 인물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는 알게 되었다. 애초 알려진 바와는 달리 성인(聖人) 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도덕적으로 결정적인 허물은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새 정치를 주창했으나 새 정치에 대한 그림은 갖고 있지는 않았다. TV토론 실력은 신통치 않았고, 선거공약은 허술했다. 그의 새 정치는 모호하고 애매하다. 그는 우도 아니고 좌도 아니다. 어떤 것은 보수의 박근혜와, 어떤 것은 진보의 문재인과 같다. 스스로는 그걸 ‘상식’이라고 말한다. 그는 또 너무 자주 ‘국민’을 판다. 자기 생각을 말해야 할 때도 ‘국민의 생각’ 뒤로 숨곤 한다. 이런 모습에 김지하는 “안철수는 어린애 같다. 깡통이다”고 냉소한다.

안철수가 보여준 정치감각은 수준급 이상

그러나 그가 보여준 정치 감각은 수준급 이상이다. 그는 언제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잘 아는 ‘프로’였다. 그가 단일화 과정에서 보여준 사퇴 결단도 상대 문재인과 민주당을 한 방 먹인 고단 수였다. 단일화의 결판이 임박해오면서 그에 대한 지지율도 떨어지는 추세였다. 자칫하면 패배자로 그냥 물러날 수도 있었다.

그는 눈물의 사퇴로 자신의 단일화 약속을 지키면서 나중을 모색할 수 있는 수를 냈다. 노회한 민주당 사람들까지 당황했던 걸 보면 정말 정치신인답지 않다. 그의 정치는 벌써 프로급이다.

그의 이런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IT 업계에 종사하면서 동종업자 안철수를 일찍부터 관찰해온 한 지인이 분석한 ‘무서운 안철수론’을 참고할 수 있을까? 지인은 안철수를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와 비교한다. 이들은 돈을 많이 번 사업가다. 그러나 그들은 돈이 목적이 아니라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었다.

IT업계 종사자 "안철수는 대통령보다 세상 바꾸는 게 꿈"

지인은 “그들은 IT로써 세상을 자기 손에 넣고 싶어하는 사람들이었고, 안철수는 정치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한다”고 했다. 안철수는 자신이 그렇게 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특히 융복합학문을 하면서 자신감을 가졌고, 정치에서도 자신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을 갖고 있다고 지인은 분석한다.

“논란을 빚었던 국회의원 100명 안(案)도 IT기술과 직접민주주의를 융합하면 가능하다는 판단에서 나왔다고 본다. 안철수는 그런 식으로 우리 정치판을 갈아엎고자 한다. 그의 꿈은 단순히 대통령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 이상일 것이다. 그걸 자기 계획에 따라 직접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따라서 안철수는 민주주의를 추구하지만 민주주의를 실천하기는 어려운 사람이다. 안철수는 정의로운 사람이지만 무서운 사람이다.”

‘무서운 안철수론’은 애초의 ‘착한 안철수’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안철수는 기존 정치인과는 달리 신뢰를 지키고, 국민을 위해서 애쓸 ‘착한 정치인’으로 정치무대에 등장했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정치혁신도 맡겨 볼 수 있는 ‘착한 정치인’으로 지지를 보낸 것이지 정치판과 민심을 무서울 만큼 잘 읽어내는 ‘정치 고수’로 그를 택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보여주고 있는 것은 ‘정치 고수 안철수’에 가깝다. 사퇴 카드도 그런 솜씨에서 나온 것으로 봐야 한다. ‘착한 안철수’라면 민주당에게 ‘아름다운 단일화’만 갖다 바치고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는 비록 단일화 협상에서 현실의 벽을 넘지는 못했지만, 계산할 줄 알고, 밀고 당길 줄도 알며, 의외 수로 상대의 허를 찌르는 결단을 내릴 줄 아는 정치 고수임을 보여줬다.

그는 잠적 닷새 만에 나타나 “무슨 일을 할 때 개인의 입장이 아니라 지지자 입장에서 판단하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이런 모습에서도 정치 고수들이 연상된다. 착한 정치인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다.

'착한 정치인'에서 '정치 고수'로 브랜드 바뀐다면

정치를 잘하는 정치고수라야 착한 정치도 실현할 수 있다. 현실정치에서 정치적인 발언과 정치적 행동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안철수의 브랜드가 ‘고수 정치’로 바뀐다면 ‘착한 정치’는 그만큼 멀어지기 쉽다는 게 문제다. 현실정치에서 ‘정치 고수’소리를 들으면 국가와 미래를 바꾸는 진정한 ‘정치 고수’가 되기 어려울 것이다.

현실정치에서 안철수에게 문재인은 자신을 가장 먼저 패퇴시킨 적수가 됐다. 그러나 안철수 스스로 “문재인을 성원해 달라. 그가 단일후보”라고 선언한 이상 그를 도와야 할 처지다. 그가 문재인을 얼마나 열심히, 어떻게 응원할지, 어떤 결과를 얻을지 궁금하다. 안철수는 사퇴 이후 닷새만에 나타났지만 문재인 지원에 관한 언질은 없었다. 그 의미가 무엇이든 그 자체가 ‘정치적인 행위’이다. 안철수가 정말 정치인으로 태어나고 있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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