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와 염홍철의 재회

   
▲ 김학용 편집위원

14일자 지방신문에는 전날 대전에서 열린 지역신문컨퍼런스 행사장에서 박근혜 대선후보와 염홍철 시장이 만나 반갑게 악수하는 사진이 실렸다. 박 후보에겐 행정도시를 핑계로 떠났던 ‘배신자’가 ‘아군’으로 돌아왔음을 말해주는 사진이다. 염 시장으로서도 아주 껄끄러운 매듭 하나를 풀어갈 수 있는 ‘감격적인 재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박 후보가 염 시장에게 준 선물은 아주 고약한 것이었다. 박 후보는 염 시장은 만나기 바로 직전 대전의 한 행사장에 들렀다가 과학벨트 부지 매입비 문제와 관련 대전시 입장과 상반되는 답변을 했다. 박 후보는 “(부지 매입비 부담은)대전시에서 능력껏 할 수 있는 데까지 하고 나머지는 국가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했다. 부담의 비율이나 금액 문제까지 언급한 것은 아니지만 대전시가 일부 부담해야 한다는 이명박 정부의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은 것이다.

염홍철, 박근혜와 ‘감격적인 재회’

정부 요구대로 진행될 경우 대전시는 2100억 원 정도의 돈은 부담해야 할 처지다. 이 돈은 대전시의 1년간 재량사업비 수준을 훨씬 넘는 것이며, 대전시가 엑스포과학공원 10만 평을 롯데에 내주고 받겠다는 연간 임대료 100억 원의 20배가 넘는 금액이다.

대전시는 과학벨트가 국가사업인 만큼 전액 국가가 부담해야 하며, 그런 돈을 댈 여력도 없다며 정부에 호소하는 중이다. 그런데 염 시장은 오랜만에 만난 박 후보에게 절망스런 답변을 듣게 된 것이다. 박 후보로부터 2000억원을 가져오겠다는 약속을 받아도 시원찮을 판에 그 돈은 대전시 책임이라는 답변만 들었다.

박 후보로선 국가사업이지만 지역에 혜택이 가는 만큼 해당 지역도 사업비를 일부 부담해야 한다는 원칙을 말한 것일 수 있다. 박 후보의 답변이 원칙과 소신에서 나온 것이라면 무조건 탓할 수는 없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인 데도 가는 곳마다 “다 들어 주겠다”고 하는 것보다는 낫다.

대전시 고민거리 외면한 박근혜

박 후보의 답변은 소신인가? 무심결에 나온 ‘대전 홀대’ 실수인가? 명색이 대선후보인데 지역을 방문하면서 그 지역 고민거리도 모르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박 후보의 답변이 실수로 잘못 나왔다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원칙론에서 나왔다면 그런 원칙을 내세울 만한 근거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마땅치 않다. 과학벨트는 국가사업일 뿐 아니라 정부의 공모사업도 아니었다. 대전시는 충남북도와 함께 과학벨트는 세종시로 와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정부가 대전으로 결정한 사업이다. 대전으로선 환영할 사업임에는 틀림없으나 돈을 댈 의무는 없는 순수한 국가사업이다.

박 후보가 이런 점까지 알고도 대전시민을 실망시키는 답변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물론 사안을 제대로 몰랐다면 더더욱 그렇다. 대선후보가 잘 모르는 문제에 엉뚱하게 답변해서 스스로 표를 깎아 먹을 이유는 없다. 과학벨트 부지 매입비 문제는 유치 경쟁을 벌이는 두 지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도 아니다.

박-염 구원 푸는 자리에서 ‘고약한 선물’

박 후보가 염 시장과 진정으로 ‘구원(舊怨)’을 푸는 자리라면 적어도 고약한 선물을 가져오진 않았을 텐데 하는 의문이 든다. 당초 염 시장은 박 후보를 대전시청으로 초청하려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 후보 측이 선거법위반 소지를 들어 시청 방문을 거부했다고 한다. 그러나 대선후보가 시청을 방문하는 것 자체는 - 시장이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만 하지 않는다면- 선거법 위반은 아니다.

그럼 박 후보는 왜 대전시청엔 가지 않았을까? 시청까지 가서 대전시와 대전시장의 입장을 외면하는 대답을 하기 어려워서였을까? 박 후보가 지역민에 실망스런, 그래서 후보로선 표를 깎아먹을 수도 있는 답변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 길은 없으나 대전시민의 큰 고민거리를 대놓고 외면한 박 후보의 답변이 대전시민의 대표이자 과거 박 후보에게 정치적 배신자였던 염홍철 시장을 만나기 직전에 나온 점이 묘하다. 대전의 큰 고민거리를 외면한 그날 박근혜 후보의 그날 답변은 박 후보와 염 시장이 반가운 악수를 나누는 ‘재회의 사진’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것이 ‘박과 염의 여전한 거리감’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선진당 갖다 바치더니 꼴좋다” 비아냥

그러나 선진당의 새누리당과 합당 대열에서 탈퇴한 사람들에겐 “새누리당에 당을 갖다 바치더니 꼴좋다!”는 비아냥은 듣게 되었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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