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잔소리-83]길흉화복 닥쳐도 평상심 잃지 말아야

운명이란‘언제까지 살아라.’,‘어떻게 살아라.’하는 것이다. 

『인생』과 함께 떠오르는 말이『운명』이며 또한 풀지 못할 수수께끼 같은 신비로움의 단어가 바로『운명』이다.
이러한『운명』이라는 말을 인생의 화두(話頭)로 삼아 삶의 문제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도 지혜로운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런 뜻에서 우선 운명의 의미를 한번 생각해 보겠다.

『운명』은 첫째, ‘내 뜻과 내 자유와 내 선택과는 관계가 없는 어떤 불가항력적인 힘이다.’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20세기 후반에 대한민국 땅에서 OOO의 자식으로 태어난 것도 부모나 나의 뜻이나 선택과 관계없이 태어난 것이 아니겠는가.
이처럼 인간은 누구도 운명을 선택할 자유가 없고 오로지 선택되어 질 뿐이다.

둘째, ‘운명은 각자가 받아야 할 몫이다.’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운명은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던, 좋던 싫던 간에 받아야 하고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며 피하려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만일 불행한 운명을 막을 수 있고 피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불행하게 살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셋째, ‘운명은 인간의 노력과 관계없이 작용한다.’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은 그 사람의 노력과 관계없이 어떤 사람에게는 후하게 작용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박하게 작용한다.
만약 인간의 노력에 비례해서 운명이 작용한다면 누구나 노력한 만큼 다 잘살아야 되는데 세상은 그렇지 못하지 않는가.

넷째, ‘사람의 운명은 각각 다르다.’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이라 할 때 명(命)은 사람마다 주어진 삶의 시간 즉‘언제까지 살다가라.’하는 것과 삶의 처지 즉‘어떻게 살아가라.’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명(命) 즉 주어진 목숨과 삶의 처지는 형제간이나 부자간은 말 할 것도 없고 모든 사람마다 각기 다르지 않는가.

다섯째, 그러나 ‘운명은 변할 수 있다.’라고 할 수 있다.
『운명』이라 할 때 운(運)은‘돈다’의 뜻으로서『운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변화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주어진 목숨과 삶의 처지 즉 명(命)은 모두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변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겪지 않는가. 

‘인생사는 새옹지마’이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화와 복을 겪는다.
그런데 살면서 겪는 화와 복의 시작과 끝은 누구도 알 수 없어 화된 일인가 싶더니 생각지도 않게 복으로 변하고 복된 일인가 했더니 느닷없이 화로 변하니 화가 복의 씨앗이고 복이 화의 씨앗이 되는 변화무쌍한 그 화와 복의 조화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사성어로 새옹지마(塞翁之馬 :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라는 말이 있다. 즉 인간의 길흉화복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일정함이 없다는 말이다.

옛날 중국 북방의 국경마을에 점을 잘 치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이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그 말이 새끼말까지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조금도 반가운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 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새끼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쳐들어오자 마을 젊은이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아가 대부분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만은 다리가 부러진 까닭에 싸움터로 나아가지 않아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화가 복의 씨앗이 되고 복이 화의 씨앗이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노자』는 또 이렇게 말했다.

“복(福)은 화(禍)속에 기대어 있고“화(禍)는 복(福)속에 숨어 있도다. 누가 그 화와 복의 끝을 알 수 있겠는가. 화와 복의 끝은 정해짐이 없느니라.”하였다.

이런 일이 있었다.
민주화 시위가 한창이던 5공 시절 어느 대학생이 시위에 참가했다가 집시법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날마다 절에 가서 아들 석방을 위한 불공을 드렸다.
그 어머니의 정성스런 불공 덕분인지 아들은 징역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3개월 만에 풀려 나왔다.
어머니와 아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그 기쁨도 3개월뿐, 석방 3개월 뒤 아들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차라리 감옥에 그냥 있었으면 목숨은 잃지 않았을 텐데, 이 또한 복속에 화가 들어있었음이 아닌가.
 
이처럼 우리는 살면서 예측할 수 없는 인생의 길흉화복(吉凶禍福)을 겪게 될 것이다.
그럴 때 마다 꼭 명심하여야 할 것은 경사나 복이 닥쳤다고 너무 기쁨에만 도취되지 말고 뒤에 올 수 있는 애사나 화에 대비하는 준비의 지혜를 갖도록 하고. 애사나 화가 닥쳤을 때도 너무 슬픔이나 절망에 빠지지만 말고 다시 오는 경사나 복을 위한 준비의 지혜를 갖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나에게 어떤 길흉화복이 닥치더라도 평상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즉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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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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