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학용 편집위원

국정감사를 감사를 받는 피감기관이 스스로 요청해서 받았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19일 실시되는 충남도에 대한 국토해양위의 국정감사(국감)는 안 지사가 ‘친정’인 민주당은 물론 새누리당에까지 국감을 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실시되는 ‘청탁 국감’이다. 전남도가 받기로 돼 있던 국토해양위 국감을 충남도가 받는 것이다.

감사받는 걸 좋아할 기관은 없다. 국회 국정감사는 피감기관으로선 가장 부담이 되는 감사 중 하나다. 그런 감사를 도지사가 자청하였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새누리당 김태흠 의원은 안 지사로부터 국감 청탁을 받고 “남들은 국감을 빼달라고 부탁하는데 충남은 왜 자청해서 받으려 하느냐?”고 물었다. 안 지사는 “감사에서 질책 받을 건 받고 현안 문제는 공론화 시켜 해결점을 찾고 싶다”고 했다.

안지사 “현안 공론화해서 해결하고 싶다”

국감을 현안 해결의 기회로 삼고 싶다는 뜻이다.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실한 현안의 중대성과 문제점 등을 국감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정부 지원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협조를 받아내고 싶다는 바람일 것이다. 가령, 내포신도시 조성과 충남도청 이전에 따른 예산 지원의 필요성과 서해안 유류피해 대책 등을 국회의원들에게 소상히 알려주면 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국감의 궁극적 목표는 국정(國政)이든 도정(道政)이든 잘 돌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는 점에선 피감기관이 현안 해결의 수단으로 국감을 이용하는 것도 가능은 한 일이다. 질책을 감수하고서라도 국감을 통해 지역 현안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고자 하는 안 지사의 고육책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이런 목적의 국감이 현안 해결의 수단으로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국회의원들이 도지사로부터 충남도의 딱한 사정을 전해들을 수 있겠지만 이를 국회활동이나 대(對) 정부 활동에 얼마나 반영할지는 모르겠다. 또 정부도 국회도 사안의 중요성을 몰라서가 아니라 한정된 재정을 배분하는 우선순위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

'햇볕' 대신 '강풍’ 전략..효과는 의문

지역 현안에 대한 정부 지원은 형평성이나 우선순위의 문제다. 그 순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은 지방자치단체의 정치력이다. 정부 지원이 필요한 현안이 있으면 우선 지자체 스스로 그 내용을 중앙부처에 설명하며 설득하게 된다. 이때 도지사와 공무원들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줄을 대서 부탁도 해야 하는 사실상의 대 정부 로비과정이다. 도지사의 ‘보이지 않는 정치력’은 여기서 드러난다. 이것이 현안 문제에 대해 ‘보통 도지사들’이 취하는 노력의 첫 단계다.

그것으로도 안 될 때 정치권과 여론을 동원해서 중앙에 압력을 가하는 두 번째 단계를 밟게 된다. 이는 도지사의 ‘눈에 보이는 정치력’의 시험대다. 첫 단계가 소프트한 방법이라면 둘째 단계는 힘으로 밀어붙이는 방식이다. 안 지사의 국감 청탁은 정치권을 활용하면서 여론화도 해보자는 것이니 두 번째 단계로 볼 수 있겠다.

효과 면에서는 첫 단계의 방식이 대체로 낫다. 첫 단계는 ‘햇볕 전략’에 가깝고 두 번째 단계는 ‘강풍 전략’에 가깝다. 나그네의 외투를 벗길 수 있는 것은 햇볕이지 강풍이 아니다. 만일 안 지사가 ‘햇볕 전략’의 노력은 부족한 상태에서 곧바로 ‘강풍 전략’을 쓰고 있다면 성과를 기대하기는 더욱 어렵다. 스스로는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서 남을 이용하려는 방법이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 힘들고, 현안 해결을 위한 진정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

패기의 도지사와 국회의원 진검승부 펼쳐보길

안 지사는 작년 국정감사에선 여야의 국회의원들로부터 질책보다는 칭찬과 덕담을 많이 들었다. 국감 자리였지만 차차기 후보감으로 거명되는 안 지사에 대한 격려성 멘트도 많았다. 토론과 논쟁을 좋아하는 안 지사에게 국감은 불편하기보다는 자신의 장기를 잘 드러낼 수 있는 즐거운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번 국감은 다를 수도 있다. 목적이 어떠하든 피감기관인 도지사가 국감을 자청한 것은 그가 적어도 국감을 꺼리지 않고 국회의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지역현안 해결을 위해 국감까지 이용하겠다는 패기의 도지사다. 그런 상대에게 덕담만 건네는 건 그를 두려워하기 때문으로 보일 수 있다. 이번 국감에선 진검승부로 겨뤄보기 바란다. 안지사에게 국감 멍석을 깔아둔 김태흠 의원도 제대로 붙어보기 바란다. 그게 안 지사와 충남도를 도와주는 방법이다.

충남도 공무원들도 올핸 안 해도 될 국감 준비를 하느라 애를 썼을 것이다. 그런 만큼 현안 해결이든 진검승부든 소기의 성과를 거둬야 한다. ‘별스런’ 도지사 때문에 안 치러도 될 국감을 치르느라 고생만 했다는 얘기가 나오지 않길 바란다.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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