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민학] 세종시 꼼수인사

   
  김학용 편집위원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있다. 인사권자가 누구를 어떻게 쓰는지를 보면 그 조직의 앞날을 예측할 수 있다. 세종특별시의 유한식 초대시장이 하고 있는 인사를 지켜보면서 걱정하는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유 시장은 유성구에서 근무하던 자신의 딸을 세종시로 데려왔다. 본래 연기군에 근무하다 유성구로 나가 있던 그의 딸이라고 한다. 세종시는 애초 7급에서 8급으로 강등하여 들어왔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인사 발표에선 7급으로 그대로 발표했다가 문제가 되자 수정하는 소동을 벌였다. 강임자에게 적용하는 승진제한 규정도 완화해 ‘꼼수 인사’ 의혹이 일고 있다.

시장 딸의 부서 배치도 논란이다. 그녀는 핵심 부서로 꼽히는 기획조정실에 배치되었다. 세종시 측은 직급 자체가 낮아 중요 업무를 맡을 수 없기 때문에 ‘요직 배치’라는 비판은 옳지 않다고 반박하였다. 시장 딸이니 근무 부서가 큰 의미는 없을 수 있으나 승진점수 관리에선 분명 차이가 있을 것이다.

유 시장, 자신의 딸 전입시켜서 요직 배치

‘꼼수 승진’ 시도 의혹은 충분히 해명돼야 하지만, 전입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될 건 없다. 그렇더라도 시장 부녀가 같은 직장에서 근무한다면 다른 직원들에겐 불편할 게 뻔하다. 시장 딸이 ‘천사표 직원’이라고 해도 시장의 딸이라는 사실이 주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다.

개중에는 시장 딸을 상관처럼 떠받드는 족속들도 나올 테고, 시장보다 시장 딸을 더 불편하게 여길 사람도 없지 않을 것이다. 보통 사람은 함께 근무하는 시장 딸을 여느 동료처럼 대하기는 어렵다. 시장이 세종시 직원들을 고려하면 딸이 세종시에 근무하고 있더라도 시장에 당선되는 즉시 유성구 등에 부탁해서 전출시켜야 할 형편이다.

과거 상피제(相避制)는 주로 인사의 공정성 때문에 필요했지만 세종시 공무원들이 겪고 있을 ‘제3자의 불편함’을 방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좋은 제도였다. 부자간 형제간 등 친인척 간에는 같은 곳에서 벼슬하지 못하도록 하는 상피제는 지금 세종시에도 필요해 보인다.

직원에 불편주는 인사 말아야..상피제 필요

유한식 시장도 상피제의 장점은 알고 있겠지만, 그보다는 송대(宋代)의 정자(程子)처럼 생각했을 수 있다. 정자는 “성인(聖人)은 본래 사(私)가 없거늘 무슨 혐의로 피할 것이 있겠느냐?”면서 떳떳하게 자기 동생을 추천하였다.

하지만 떳떳함은 자만(自慢)과 이웃 사이다. 유 시장이 ‘법적으로 떳떳한데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고 생각했다면 그게 바로 자만이다. “나도 이제 연기군수가 아니라 세종특별시장이다!”는 자부심이 자칫하면 그런 자만으로 변질될 수 있다.

그러나 유 시장이 성호(星湖)의 비판을 염두에 뒀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성호는 정자의 행동을 다음과 같은 이유로 비판하였다. “딸을 시집보내는 것과 같은 일은 집안의 일이므로 반드시 혐의를 피할 것이 아니지만 국가의 일에 대해서는 혹 그렇지 않은 때가 있다. 오얏나무 아래서도 주의해야 혐의를 면하게 된다.”

그러면서 성호는 진(晉)나라 평공 때 기해(祈亥)의 추천 방식을 바람직한 인사로 들었다. 기해는 평공으로부터 사람을 추천하라는 요청을 받고 자기 아들 기오(祈午)에 앞서 원수 사이였던 해호(解狐)를 먼저 추천했다. 민중들은 마음으로 기뻐하였다. 그런데 해호가 쓰이기도 전에 죽자 이번엔 아들 기오를 추천했다. 성호는 이제 기해의 말이라면 누가 믿지 않겠느냐고 했다.

‘딸 챙기기’는 시장의 자만에서 비롯?

만일 유 시장이 딸을 요직이 아닌 면사무소로 먼저 보냈더라도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유 시장은 자기 딸만 본청 요직 부서로 불러들이고 나머지는 면사무소로 보냈다. 법적 하자는 없겠으나 시장은 직원들의 신뢰를 잃게 되었다.

아마 시장은 딸 인사가 별일 아닌 데도 언론이 과도하게 시비를 건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천만의 말씀이다. 이번 일은 유 시장이 공(公)과 사(私)를 얼마나 잘 분별할 줄 아는가를 가늠해볼 수 있는 사건이 되고 말았다.

시장이 자기 딸을 챙기는 인사를 보면서 세종시민들은 실망하고 있을 것이다. 이젠 세종시가 출범하면서 이뤄진 크고 작은 다른 인사까지 의심한다고 해도 시장은 변명이 어렵게 되었다.

유 시장에겐 ‘자기 딸만 챙기는 시장’이란 꼬리표가 붙게 생겼다. 그런 시장을 좋아하고 믿어줄 시민들은 별로 없다. 딸을 유성구로 다시 보내고 사과하지 않으면 시장에 대한 불신은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다.

세종특별시는 아직 이름만 특별시다. 한 달 전의 연기군과 달라진 건 거의 없다. 세종시특별법에 넣어 고쳐야 할 게 쌓여있다. 정치적으로, 행정적으로, 법적으로, 재정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다. 유 시장도 어제 충청권시도지사협의회에 나와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런데 시장이 공무원들에게 주지 않아도 될 불편을 주면서 시민들의 신망을 잃는다면 인구 10만의 작은 도시지만 끌고 갈 수가 없다. 유 시장의 세종시호(號)가 출항부터 불안하다. 누구든 ‘인사가 만사’라는 말을 우습게 여기면 안 된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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