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반일'의 정치 외교

   
    ▲ 김학용 편집위원

안희정 지사가 펼치는 ‘지방외교’의 모양새가 대통령 외교를 방불케 한다. 얼마 전, 왜곡 교과서(부교재)를 채택한 일본 구마모토현에 충남도의 국장급 간부를 특사로 파견, 항의 서한을 전달하더니 지난주엔 중국을 방문해서 일제의 만행을 상징하는 난징대학살 추모기념관을 찾아 헌화했다. 거기서 그는 ‘아시아의 평화’를 주창했다.

‘친중반일(親中反日)’의 외교 행보다. 왜곡 교과서를 채택한 구마모토현과는 갈등을 마다하지 않으면서 중국 장쑤성에 가서는 우호의 메시지를 전했다. 안 지사는 장쑤성의 성장(省長)을 만나 교류 협력도 논의했다.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이뤄지는 국제교류, 즉 지방외교는 문화, 경제 분야 등의 교류에 한하고, 외교적 갈등의 소지가 있는 사안은 피한다. 그러나 안 지사의 지방외교는 이런 관행을 탈피하고 있다. 구마모토현에 특사까지 보내 항의서한을 전달한 것은 지방외교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다.

‘친중반일’의 정치적 외교 펴는 안지사

안 지사의 난징대학살 추모기념관 헌화도 지방외교의 범주를 넘는 것이다. 도는 안 지사가 헌화하는 모습을 찍어 보도자료로 냈다. 충남도와 ‘외교적 갈등’을 겪고 있지만 30년 간 자매결연을 맺어온 구마모토현도 이 사진을 보았을 것이다. 그들 중엔 안 지사에 대해 언짢게 느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안 지사가 근래 펼치고 있는 ‘대통령 외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도지사의 진취적이고 담대한 외교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교는 국가 차원이든 지방 차원이든 국익(이익)을 목표로 하는 것이니 득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지방외교가 국가 차원의 외교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지방외교는 ‘적대(敵對) 외교’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국가 차원에선 외교 갈등을 고조시킬 수도 있고 때론 전쟁도 불사하지만 지방외교는 오로지 ‘협력 모드’ 안에서 가능하다.

따라서 교과서 왜곡 문제가 아무리 심각해도 충남도로서는 효과적인 대응법이 없다. 안 지사가 통상실장을 일본에 보내 항의할 수는 있으나 효과를 거둘지는 의문이고, 그 이상의 외교 카드도 없다.

‘지방외교’는 적대적 외교 불가능하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항의 수준을 넘어 양국간 긴장을 고조시키는 외교 행위도 가능하고, 때론 그것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다. 또 제3국을 끌어들이는 방법도 가능하다. 안 지사는 이번 중국 방문을 ‘제3국 끌어들이기’의 기회로 사용한 듯하다.

충남도는 보도자료에서 “이번 기념관 방문?헌화는 난징시민에 대한 유대와 공감을 강화하는 한편일본의 역사왜곡에 대한 충남도와 장쑤성 간 공동 대응의 토대를 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충남도와 장쑤성이 공동으로 구마모토에 대응하자는 의미다.

지방외교 차원을 넘는 ‘친중반일’의 정치외교다. 물론 구마모토가 한-중 협공에 굴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오히려 반발할 가능성도 있다. 또 왜곡교과서 문제로 인한 ‘반일’이라면 ‘친중’에도 문제는 있다.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왜곡은 더 노골적이다. “그 문제는 장쑤성 차원의 문제가 아니므로 모르겠다”고 해야 할까? 중국과 일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문제는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다.

국가 간의 외교는 그 결과가 때론 치명적이고 돌이키기 어렵다는 점에서 무엇보다 신중함이 요구된다. 외교 행위에선 행동 하나 말 한 마디조차 조심스런 이유다. 강대국이 약소국을 대할 때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게 기본이다. 외교에 관한 고금의 준칙이다.

제나라 선왕이 “이웃나라와 사귀는 데 방법이 있습니까”하고 묻자 맹자는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것은 하늘의 뜻을 두려워함이고, 큰 나라도 작은 나라를 섬기는데, 이는 하늘의 뜻을 즐기는 것”이라고 답했다. 힘이 없으면 말할 것도 없거니와 힘이 있어도 상대를 함부로 대하지 말아야 한다.

안 지사의 ‘친중반일’ 외교는 정치외교라는 점에서 더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도 안지사의 난징대학살 추모기념관 방문은 예정에 없던 것이라는 점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한·중(韓中)이 일본을 협공하는 (결과가 된) 중요한 외교 행보의 일정이 현지 방문 중에 즉흥적으로 이뤄졌다면 신중하지 못한 것이다.

불타는 정의감에 ‘방종 외교’는 아닌지?

지방외교는 ‘지역의 이익’을 위한 국제교류다. 지역경제, 지역문화, 지역행정제도 등의 분야에서 상호 교류를 통해 얻고자 하는 게 지방외교의 목적이다. 만약 구마모토가 안 지사의 정치외교에 반발하면서 백제문화제 등의 문화 교류가 위축된다면 손해가 더 클 것이다.

안 지사는 “어떤 경우라도 식민 지배, 독재, 불법의 역사를 옹호해선 안 된다”는 말을 자주한다. 그에게 일본의 역사 왜곡은 누구보다 참을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일본에게 30만명이나 희생된 중국의 유적지를 찾아 헌화하는 것도 불타는 정의감이 아니면 쉽지 않다.

그래도 충남지사로서 하는 외교라면 충남도의 실질적 이익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 안지사의 정치외교는 지금 그게 의문이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정의감에 불타는 의식 있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를 국내외에 전해주는 것만으로 정치외교에 따른 위험성을 상쇄하지 못한다.

혹시 안지사의 이런 행보가 차차기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펼치는 ‘국내용’이라면 언급할 가치도 없다. 대통령의 외교를 도지사로서 미리 흉내내는 경우라도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달리 도지사의 정치외교는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래서 도지사가 오히려 민감한 외교행보가 가능할 수도 있다. 도민에게 득이 없고 책임도 지지 않는 외교라면 이는 무책임한 ‘방종(放從) 외교’다. 안 지사의 외교가 그런 외교는 아닌가?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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