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짜 땅만 좋아하는 시장

만약 처음 가보는 큰 도시의 도심에 진입해서 1km 가까이 되는 거리를 달려도 길 한쪽은 오로지 울창한 숲으로 이어지는 풍경을 목격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생소하고 낯선 느낌마저 들면서도 한번 들어가 보고 싶을 것이다. 도심에서 만나는 우거진 숲은 사막의 오아시스와 같다.

뉴욕시민들은 그런 공원을 가졌다. 150년 전에 만들었다는 센트럴파크다. 면적이 100만평이 넘는다. 하늘을 찌르는 듯한 고층빌딩 숲의 길 건너편엔 ‘도심속 원시림’이 마주하고 있다. 공원 중앙에 미술관 하나가 위치하고 있을 뿐 온통 숲이다.

   
▲ 뉴욕 센트럴파크. 연 2500만~3500만명이 찾는 대표적 도심공원이다.

대전시민들도 이런 공원을 가질 수 있었다. 둔산 신도시를 만들면서 대전시가 확보한 둔산대공원을 뉴욕처럼 꾸밀 수 있었다. 둔산공원은 센트럴파크의 5분의 1수준인 20만 평이다. 이봉학 시장 때 토개공에서 확보한 땅이다. 도심 공원으론 작은 면적이 아니다. 문제는 둔산공원의 3분의 1 정도가 시멘트와 구조물로 덮여 있다는 것이다.

둔산 공원녹지 훼손 주도한 염홍철 시장

평송청소년수련원을 비롯해서 대전예술의전당 대전시립미술관 등이 공원을 잠식하고 있다. 최근에는 대전시가 국악전용극장을 이 공원에 건축하기로 결정, 시멘트 구조물이 하나 더 늘게 생겼다. 숲과 시민들 사이를 이들 건축물들이 갈라놓고 있다. 둔산공원은 공원이 아니라 문화예술단지의 배후 녹지처럼 되고 말았다.

“공원과 문화시설은 잘 어울리는 것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도시계획 전문가들은 공해가 심한 대도시의 도심 녹지는 훼손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도심에서 녹지와 숲의 가치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술의전당이나 국악전용극장 등은 다른 곳에 위치해도 큰 문제가 안 되지만, 도심의 숲을 변두리로 옮긴다면 그 가치는 수십 수백 분의 일로 감소한다. 같은 샘물이라도 사막의 오아시스가 더 귀중한 이유다. 염홍철 시장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훼손하고 그 자리에 건축물을 짓는 행위를 거듭하고 있다.

   
▲ 둔산대공원. 좌우의 녹지 부분 아래는 예술의전당과 평송수련원 등의 시설로 잠식당했다. 최근에는 여기에다 국악전용극장을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염 시장은 둔산공원을 망치고 있는 ‘장본인’이다. 그는 90년대 중반 관선시장 때 평송청소년수련원을 이곳에 넣었다. 청소년수련원을 도심공원에 넣은 것은 산 위에 항구를 건설한 것만큼이나 황당한 결정이었다. 당시 염시장 시절, 필자는 대전시 출입기자로서 “청소년수련원이 왜 도심공원으로 가느냐”고 지적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박성효 시장 때도 무빙쉘터 설치..훼손 일조

대전예술의전당은 민선1기 홍선기 시장 때인 96년3월 착공됐으나 취임 9개월이 안 된 시점이라는 점에서 보면 위치 결정과 설계는 염 시장 때 이뤄졌을 공산이 크다. 시립미술관도 염 시장 임기 직후 착공됐지만 이는 당시 둔산공원 부지를 대전시에 제공한 당시 토지개발공사에서 선물로 준 것이므로 책임을 묻기는 어렵다. 무빙쉘터라는, 쓸데없는 철골구조물을 설치한 박성효 시장도 둔산공원을 망치는 데 일조했다.

둔산공원을 망치는 데 앞장서고 있는 사람은 염 시장이다. 그는 왜 이런 엉터리행정을 하고 있는 것일까? 한 공무원은 “둔산공원 문제는 전형적인 행정편의주의”라고 지적했다. “공짜 땅에 시민 세금으로 건물 짓는 것만큼 쉬운 행정도 없다”고 했다.

둔산공원은 부지 대금을 줄 필요가 없는 시유지(市有地)다. 이런 ‘공짜 땅’에 국악전용극장 짓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만약 국악전용극장을 둔산이 아니라 중구청과 시민단체의 요구대로 중구 안영동이나 다른 지역에 건설하려면 부지 매입이나 도시계획 변경 같은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개인 부지를 매수하기 위해 주인과 골치아픈 가격 협상을 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 물론 예산도 더 들어갈 것이다.

손쉬운 행정만 아는 시장이 빚는 ‘공짜 땅의 비극’

둔산공원은 그럴 필요가 없다. 시장이 도장만 꾹 찍으면 된다. 20여 년 전 지역의 한 독지가가 내놓은 30억원으로 지은 평송수련원을 둔산공원에 넣은 것도 아마 부지 고민이 필요없는 ‘편의 행정’ 탓이었을 것이다.

대전시는 국악전용극장 부지 선정에 대해 문화시설을 한 곳에 모으는 의미가 있다고 설명하지만 이는 ‘어차피 망가진 공원인데 한번 더 훼손한들 어떠냐’는 말로 들린다. 도심녹지를 훼손하면서 끌어 모으면 무슨 소용인가?

대전천의 하상도로는 편리하다. 둔산과 산내 쪽을 오가는 차량에겐 더 없이 좋은 도로다. 그러나 끝까지 하천을 도로로 쓸 수는 없다. 그래서 박시장 때 하천을 깔고 앉았던 중앙데파트와 홍명상가도 철거했다. 둔산공원에 자꾸 건물을 넣는 것은 대전천에 하상도로를 늘리는 꼴이다.

시는, 둔산이 접근성이 뛰어나다는 점도 고려했다고 해명한다. 접근성은 좋아야 하지만 식당을 화장실로 쓸 수는 없듯, 다 용도가 있는 법이다. 능력있는 시장이면 공원지역이 아니면서도 적당한 부지를 확보한 뒤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해결했을 것이다. 도심 한 가운데 숲을 까뭉개고 문화시설을 때려 넣는 일은 안 할 것이다. 대전시는 150년 전 뉴욕을 아직 못 따라 가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란 말이 있다. 모두에게 개방된 ‘공짜’ 목초지에선 개인의 욕심 때문에 소가 다 굶어죽게 된다는 개념이다. 손쉬운 ‘공짜 땅’만 좋아하는 시장 때문에 시민의 공유지 도심공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공짜 땅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대전시는 또 다른 노른자위 땅 엑스포과학공원부지를 한 대기업의 물놀이장으로 제공하려 하고 있다. 나는 이것도 시장이 ‘공짜 땅’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염 시장은 대전시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짜 땅의 비극’을 중단시켜야 한다.

둔산공원에 추진하는 국악전용극장은 삽을 뜨기 전에 부지를 바꿔야 한다. 둔산공원은 평송수련원 같은 시설을 다른 곳으로 이전, 복원해야 할 판에 시멘트를 한번 더 덮는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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