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시밭길 가는 지역당

   
  김학용 편집위원

지난 총선에서 참패하며 존망의 기로에 섰던 자유선진당을 결국 ‘이인제’가 꿀꺽했다. 어제 자유선진당 전당대회에서 당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아왔던 이인제 의원이 당대표로 선출됐다. 대회에선 당명을 바꾸고 정강정책도 손을 봤다. ‘통일’이란 용어를 새로 갖다 붙이면서 당명도 ‘선진통일당’으로 바꾸었다. ‘이인제당'이 출범한 것이다.

이 대표는 당을 보다 확실하게 장악하기 위해 내쫓을 사람은 내쫓고 자기 편은 끌어들였다. 이회창 등 이 당의 본래 주인들과 그 일파들은 쓸쓸히 떠나야 했다. 일부는 선진당을 없애는 전당대회장에서 끝까지 저항하며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소용없었다. 일단은 이인제 체제가 구축된 셈이다.

자기 사람 끌어들이며 ‘이인제당’의 출범

이인제당은 이번에 수구의 상징어처럼 들리는 ‘자유’ 대신 ‘통일’을 넣으면서 정강정책을 수정하고, ‘보수 쪽과만 연대하겠다’ 종전의 전략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연대의 유연성과 정치적 역량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해 볼 만하다. 그동안 ‘수구’의 대명사처럼 인식돼 온 선진당을 쇄신할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선진통일당이 새로운 ‘충청의 지역정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끝내 고사하고 말 것인가? 선진통일당의 앞날을 예단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인제당'으론 전망이 어둡다고 나는 보고 있다. 이유는 여럿이다.

첫째 ‘이인제’는 정치인으로 사실상 생명을 잃은 사람이다. 그는 ‘불복(不服)’과 ‘탈당’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다. 대권에 눈이 멀어 이당 저당 왔다갔다하는 대표적인 정치 낭인이다. 경선에 지면 불복하고 뒤엎고 당을 뛰쳐나가 다시 대권의 길을 찾는 대통령병 환자였다.

그런 식으로 대선에 2번 출마하면서, 실질적으로 당을 옮겨다닌 게 5번이나 된다. 합당 등의 이유로 당적이 바뀐 경우까지 합하면 10번이 넘는다. 탈당은 정치인에게 병가지상사라고 하나 이를 밥먹듯이 하여 대표선수로 낙인찍혔다면 얘기가 다르다.

이로 인해 그는 ‘믿을 수 없는 정치인’이 되었다. 고향에서 연이어 당선되면서 ‘불사조’ 소리도 듣지만 당선으로 면죄부를 받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불복과 탈당의 이미지를 아직 씻지 못하고 있다. 이런 정치인이 도모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주인 없는 정당에서 대표 자리를 차지한다고 해서 당을 제대로 살리기는 어렵다.

생명 잃은 ‘불복의 정치인’이미지 못 씻어

둘째, 그가 추구하는 노선도 불분명하다. 자유선진당에서 ‘자유’를 떼 내고 ‘통일'을 갖다 붙임으로써 통일문제에 적극적인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하는 뜻은 알겠다. 그러나 그것이 남북문제에 소극적인 편인 새누리당이나 보다 적극적인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분명치 않다. 남북의 현실에서 통일정책을 어떻게 차별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저 ‘통일’이라는 구호만으로 당의 정체성을 새롭게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이인제=통일’이란 이미지를 얻고자 하는 목적일 수도 있다. ‘통일’은 선진당의 창업주 이회창이 내세운 ‘자유’와는 대각선상에 있다. 따라서 통일당으로 이름을 바꾸면 이회창 색채를 더 쉽게 탈색하는 효과가 있다.

셋째, '이인제당'은 텃밭을 너무 소홀히 하고 있다. 전국정당화를 명분으로 외연을 확대하면서도 지역 인재는 홀대하고 있다. 선진당 지지자의 대다수를 차지할 충청 유권자들이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최고위원으로 들어와 당을 주무르게 됐다.

선진당 핵심 인사들의 상당수는 이번 전당대회에 빠지거나 방관자가 되었다. 이인제의원 자신을 제외한, 단 두 명인 지역구 현역 의원 가운데 이명수 의원은 전당대회에 참석하지도 않았다. 그를 포함 현역 둘이 탈당할 거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인제당은 선진당의 껍데기만 가져다 외지인들로 채워 넣은 모양새가 됐다. 충청도민들이 이런 정당을 지역당으로 인정하여 지지해줄지 의문이다.

이인제 대표는 ‘어머니(충청지역) 곁을 떠나 바깥에서 인정받으면 어머니도 다시 끌어안아 줄 것'이라며 외연 확장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지역당은 텃밭을 튼튼히 하는 전략이 우선이고 외연을 넓히는 것은 그 다음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인제당은 왜 텃밭보다 바깥에 비중을 두는가? 그가 충청도(논산) 출신이긴 하지만 그의 정치적 터전은 경기 수도권이다. 여기서 정치를 시작하고 대권가도의 발판으로 삼았던 경기도지사도 여기서 했다. 논산에서 내리 3선을 했지만 충청권 전체로 보면 충청의 대표선수엔 못 미친다. 그럴 바에는 전국으로 뛰겠다는 게 그의 계산 같다. 그가 표방하는 ‘제3세력’을 구축하는 데도 전국정당이 더 유리할 수 있다.

이인제 목표는 여전히 대선 나가는 것?

그는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은 이후 줄곧 “대선 출마는 않겠다” 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금 상황으로 그가 대선에 관심 있다고 말할 처지가 아니다. 그러니 대선에 안 나간다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상황’이 바뀌면 그의 말은 달라질 것이다. 홍수가 나지도 않았는데 ‘미생지신(尾生之信)’이라며 경선에 불복한 그가 정말 상황이 바뀌는 데도 달라지지 않을까?

‘이인제’의 목표는 이번 대선에서 본인이 또 한번 나서는 데 있다고 나는 본다. 보수든 진보든 제3세력이든 연대를 통해 권력 창출에 기여하겠다는 게 선진통일당의 공개적인 목표일지는 모르나 ‘이인제’ 개인의 목표는 다를 것이다. 어쩌면 이번이 그의 마지막 시도일지도 모른다.

이인제는 비록 빈껍데기라 해도 지역당을 하나를 접수, 자기 것으로 포장함으로써 그런 개인적 목표에 다시 도전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모른다. 그가 강조하는 ‘전국정당화’ ‘제3세력 결집’ ‘통일’ 등의 어휘는 당보다는 자신이 대권으로 가는 데 더 필요한 말들이다.

지난 총선 때는 충청도민들 가운데 지역당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여론조사가 여러 번 나왔다. 20년 넘게 부침을 거듭해온 충청 지역당이 실패한 정치인의 개인적 목표로 이용돼선 안 된다. 위기의 충청도 지역당이 또 한번 가시밭길을 가고 있는 듯하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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