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민학] 충남도의회 예산삭감 횡포

충남도의회는 도가 제출한 추경 예산을 마구잡이로 삭감하고 있다. 지방의회의 횡포다. 도가 도의원들 앞으로 편성해주던 재량사업비를 이번 추경에서부터 빼기로 결정한 데 대한 옹졸한 보복이다. 도는 그동안 도의원들을 위한 사업비로 1인당 수억원의 예산을 편성해왔다.

도의원들이 자기 지역구에서 낯을 낼 수 있도록 해주는 선심성 예산이다. 예산편성 원칙에 어긋나는 것이다. 그러나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이런 엉터리 예산 편성이 이뤄지고 있다. 작년 전북도가 편성한 노골적인 도의원 재량사업비가 드러나면서 감사원의 지적을 받았다. 감사원은 충남도 등 다른 시도에서도 이런 예산을 편성하지 말도록 요구했다.

충남도도 감사원의 요구를 수용, 이번 추경부터는 ‘도의원을 위한 예산’을 편성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자 도의원들이 횡포를 부리고 있다. ‘예산 심의의 칼’을 멋대로 휘둘러대고 있는 것이다. 현재로선 도의회 사상 최대 규모 삭감이다.

 충남도의회의, 흥분한 상태로 옹졸한 보복

당장은 분을 삭이지 못해 으름장을 놓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집행부가 적절하게 달래지 않는 한 상당 규모의 예산이 정말 삭감될 수도 있다. 도의회가 끝내 그렇게 처리하여 재정 운영에 차질을 준다면 그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문제의 최종 책임자는 도지사에게 있다. “도의원들이 벌이는 무책임한 일을 왜 도지사가 책임지는가?” “가령, 여소야대(與小野大)의 도의회가 사사건건 훼방을 놓고, 합리한 요구로 도정의 발목을 잡아도 도지사의 책임인가?”

도지사 측에선 이런 반문이 나올 법하지만, 그렇다고 봐야 한다. 매사를 합리적이고 올바르게 판단하는 정치인들(도의원을 포함)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적은 게 우리의 정치의 현실이다. 이런 ‘위인들’과 함께 도정을 꾸려가야 하는 최종 책임은 도지사에게 있다.

도지사에 대한 불합리한 요구라고 생각될지 모르나 그것을 해낼 수 있어야 된다. 그래야 유능한 도지사다. 합리적인 도의원들이 파트너라면 누구나 잘할 수 있다. 스스로 부도덕하고 무능한 도지사만 아니라면 말이다.

불행하게도 지금의 도의회는 안 지사에게 그런 훌륭한 파트너는 못된다. 물론 도의원들은 안 지사를 그렇게 여기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도지사와 도의회는 줄곧 불화를 겪는 모습만 보여왔다.

도정의 최종 책임자는 도지사

‘못된’ 도의원들에게 불화의 책임이 더 있다고 하더라도 안 지사는 책임 면할 수 없다. 안 지사에겐 도의원들 다루는 기술이 부족하다는 걸 말하기 때문이다. 이런 기술을 다른 말로는 ‘정치력’이라고 부른다. 도의회와 집행부의 관계가 파탄으로 간다면 그 원인의 상당 부분은 도지사 자신의 정치력 부족에 있다.

정치력은, 안 지사가 존경했던 노무현에게도, 때론 경멸하던 이명박에게도 부족한 자질이다. 도의회를 대하는 것을 보면 지금 도지사 안희정도 그 점에선 노무현 이명박과 닮아 보인다.

어느 나라든 의회는 집행부(행정부)의 수장(首長)에겐 까다로운 대상이다. 그게 정상이다. 대통령이 이런 의회를 다루는 방식은 크게 2가지가 있다. 루스벨트 방식과 존슨 방식이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의원들을 직접 상대하는 방식을 썼다. 달래고 회유하여 협조를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존슨은 이런 방식으로 생산적인 의회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의회를 직접 다루는 대신 국민을 통해 의회에 압력을 넣는 식으로 대했다. 이는 대통령이 국민에게 인기를 얻어야 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에 루스벨트는 ‘노변정담’ 같은 방송프로를 이용하기도 했다. 처음엔 효과를 봤으나 나중엔 실패했다.

내가 보기에 안 지사는 도의회를 루스벨트 방식으로 대하는 것 같다. 도지사 자신이 면사무소와 낙도를 찾아가 각계 각층의 도민들을 직접 만나면서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고 홍보하고 있다. 호응도 얻고 도지사로서의 자신감도 얻는 듯하다. 주민들한테 지지를 받으면 도의회의 부당한 횡포를 막을 수 있다고 여기고 있는지도 모른다.

‘루스벨트’보다 ‘존슨’ 따라야 할 안희정

그러나 지금 안지사에겐 존슨의 방식이 필요해 보인다. 최종 권력은 의회의 동의보다 민심에서 나오는 것은 맞지만 도지사가 의회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다면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사실상 없다. 무능한 도지사가 되기 십상이다.

충남도의회의원들은 이제 재량사업비 문제보다 안희정 지사의 ‘태도’에 주목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이번 싸움이 두 기관의 자존심 싸움이라면, 이기는 쪽이 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도의회도 안지사도 이런 걸 모를 만큼의 바보는 아니라고 본다.

지금 도의회는 흥분한 상태로 예산심의권 이란 칼을 마구 휘두르고 있지만 안지사의 ‘상태’는 아직 모르겠다. 도하 언론이 이 사건을 크게 취급하면서 우려를 나타내는 데도 옛 주군의 제사에 달려가는 것은 ‘여유’ 아니면 ‘오만’이다. 오만은 도지사에게 이어지는 사람 좋다는 칭찬과는 거리가 먼 용어다. 정말 오만이라면 그 대상이 도의회 도의원들이 아니라 200만 도민이란 점을 알아야 한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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