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목민학]

부자들 중엔 착한 사람이 정말 적은 것일까? 부자 전문가인 미국 조지아대 교수의 조사로는 그렇지가 않았다. 그는 백만장자의 부자들이 무엇을 좋아하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등을 인터뷰하고 조사해서 『백만장자 마인드』라는 책을 썼다. 연구에 따르면 대체로 부자들은 학교성적이 뛰어난 편은 아니지만 성실하고 진실하며 열정적이다. 그러면서도 금전적 모험을 감행하는 용기가 있고 독창적인 면도 있다. 부자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게 만드는 책이다.

그러나 동서를 막론하고 부자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그 반대다. 서양에선 부자가 천당 가는 것을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만큼 어렵게 보았다. 『맹자』에도 “어질려면 부자가 되기 어렵고, 부자가 되려면 어질기 힘들다”(爲仁不富 爲富不仁)는 말이 있다. 이 말은 본래 노나라의 악인(惡人) 양호(陽虎)가 한 말이다. 양호는 ‘어질어서 부자가 되지 못할까 걱정’한 말이지만, 맹자는 오히려 ‘부자가 되려다 어질지 못하게 될까 걱정’하는 뜻으로 인용했다.

부자는 어질지 못하다? 아니다?

요즘 이건희 회장의 삼성가(家) 형제들이 벌이고 있는 싸움을 보면 맹자의 진단이 옳은 것 같다. 형 맹희씨는 아우에게 “늘 자기 욕심만 챙겨왔다”며 동생의 말을 “어린애 같은 발언”으로 공격하고, 동생 건희씨는 형을 ‘이 사람’으로 부르면서 “누구도 (형을) 장손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없고, 이 사람이 집에 와서 제사지내는 꼴을 못 봤다”고 비난한다. 동생의 표현에 따르면 ‘형이 감히 쳐다보지도 못하는 동생’이다.

비록 못난 형 때문에 싸움이 시작된 듯하지만, 형을 막 대하는 동생의 모습이 더 충격적이다. 단순한 재산상속의 문제라면 말할 필요도 없고, 만약 삼성의 경영권 문제가 걸렸다 해도 TV카메라 앞에서 자기 형을 ‘이 사람’으로 호칭하면서 비난하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어느 한쪽의 잘못은 아니라고 보지만 설사 형의 잘못이 크다고 해도 동생이 형에게 공개적으로 삿대질하듯 비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세계적인 부잣집 형제들 싸움판에서 나온 동생의 막말은 옛 상놈 집안에서도 듣기 힘들 말이다. 삼성가의 형제들은 졸지에 개차반이 되고 ‘콩가루 집안’으로 전락하고 있다. 삼성 이미지에도 먹칠을 했다. 여론이 좋을 리 없다.

‘콩가루 집안’ 된 세계적인 부자 삼성家

이 회장에 대한 비판과 함께 삼성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자 이 회장은 “사적인 문제로 개인감정을 좀 드러내서 국민 여러분께 죄송하다”고 했다. 하지만 형한테는 사과가 없었다. 대신 “전문가에게 맡겨 소송을 진행하겠다”며 재산 싸움에 대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논어’를 경영철학으로 삼았다는, 두 형제의 선친(이병철)은 ‘인격적으로 호소하는 힘,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인품, 이것이 사장의 으뜸가는 자질”이라며 “경영자는 범인(凡人)과 달라야 하며 부하직원의 추앙을 받을 만해야 한다”고 했다. 선친은 지금 지하에서 통탄하고 있을 것이다.

기자들 앞에서 자기 형을 ‘이 사람’이라고 부르는 대단한 동생의 인격이 만천하에 알려졌는데 어떤 부하직원이 그를 진심으로 추앙하여 따르겠는가? 삼성의 임직원들도 졸지에 ‘콩가루 집안’의 회장님을 모시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월급이 많아도, 하는 일이 중대해도 존경하기 힘든 사람 밑에서 일하는 고충은 말할 필요가 없다. 이 회장은 집안 형제들과 삼성 임직원에게도 사과해야 한다.

이건희 회장은 타임지가 뽑은 ‘존경받는 기업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 우리나라에도 그를 존경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는 여론조사가 나오곤 했다. 이제 그런 대답이 얼마나 나올지 궁금하다.

정약용 “형은 먼저 태어난 나, 동생은..”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형제는 나와 부모를 같이하였으니 이 또한 나일 따름이다. 형은 먼저 태어난 나요, 아우는 뒤에 태어난 나다”고 했다. 친구간에는 생사를 걸면서도 형제에겐 행인 대하듯 하는 세태를 지적한 말이다.

과거 형제간 재산송사는 ‘인륜(人倫)’의 문제였다. 형제간에 우애가 없는 것을 불효로 보았다. 『목민심서』에도 형제간 재산분쟁을 ‘교민(敎民)조’에서 다루고 있다. 송나라 때 재물로 다투는 형제가 있어 그곳 수령이 타일러 말했다. “관가에 송사하면 서리(胥吏)만 위하는 일이다. 법에 걸어 이기려는 것과 각기 분수를 지켜서 형제간의 사랑을 온전하게 하는 것과 어느 것이 낫겠는가?” 수령의 말이 간절하여 소송한 자가 깨달았다.

삼성가의 소송도 변호사만 좋은 일이다. 지금이라도 화해해야 한다. 삼성가의 분쟁은 가난 때문이 아니라 탐욕 때문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여유있는 쪽에서 좀더 양보하는 게 맞다. 소송으로 수천억원을 지킨다 한들 영원히 ‘콩가루 집안’으로 남게 되고 회사 이미지에도 똥칠을 하는 마당에 무슨 소용인가?

재산 다툼하는 늙은 형제들 거울 비춰 화해시킨 수령

예나 지금이나 돈이면 다 되는 세상이지만 돈으로 안 되는 게 여전히 있다. 위험에 처한 집안을 다시 복구하려면 돈이 아니라 화합과 희생이 필요하다. 누구든 실수는 있는 법이다. 잠깐의 분노를 참지 못한 결과일 수 있다. 그렇다면 화해가 답이다. 이젠 돈 문제를 넘어 감정의 문제로 가 있지만 해법은 마찬가지다.

“명나라 때 어떤 형제가 늙어서도 재산 다투기를 그치지 않았다. 이에 고을 수령이 큰 거울을 가져와 같이 비추니 형제는 얼굴이 서로 닮고 수염과 머리카락이 모두 하얗게 된 것을 보고 울면서 서로 양보하였다.” 『목민심서』

 

삼성가의 형제들은 ‘마음의 거울’을 가지고 서로 만나 얼굴이라도 마주보면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선친이 경영의 바이블로 삼았던 ‘논어’도 그 거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형은 여든, 동생도 일흔을 넘긴 나이니 그러고도 서로 화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것이다. (부자들의 세계를 몰라도 너무 모르는 소리인가?) 부디 두 형제는 ‘부자들은 어질지 않다’는 말이 편견임을 보여주기 바란다. / 김학용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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