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처럼 왜 못 싸우나

얼마 전 안희정 지사가 이명박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됐었다. 서해안 유류피해 보상 문제에 대통령이 관심을 가져달라는 부탁의 내용이었다. 임기 초반 4대강 문제로 청와대를 향해 거듭 대립각을 세우던 것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안 지사의 편지 ‘공개’는 단순한 서신 이상의 ‘정치 행위’임이 분명하다. 각을 세우던 ‘다른 편’과도 소통할 줄 아는 도지사라는 의미도 있다. 그러면서도 그 편지가 유류피해 어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도 있다는 점에서 실용적이다. 일거양득의 편지다.

하지만 이는 청와대와 각을 세우던 안 지사의 모습이 역시 허상이었나 하는 의문을 자아낸다. 나는 안 지사가 ‘지방 정치인’으로서 지방의 소외 문제에 대해서도 4대강 문제처럼 전투적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기대해왔다. 지사의 편지가, 중앙 관계가 ‘전투 모드’에서 ‘화해 전략’으로 바뀌었다면 이런 기대는 난망일 수도 있다.

대통령에게 편지 보내는 안지사, 달라졌나?

모든 권력과 돈이 다 중앙에만 집중돼 있어, 지방은 늘 중앙에 손을 벌려 돈을 구걸해야 하는 입장이다. 도지사라도 중앙에 올라가 조아리고 사정해야 쥐꼬리만한 예산이라도 더 타내고, 별것 아닌 국책사업도 따낼 수 있다.

다른 수단이 없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당장 충남도 예산으로는, 충남도지사의 힘으로는 유류피해 어민을 더 도와줄 수가 없다. 대통령에게 간청하고, 장차관이나 국무총리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안 지사가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도 이에 다름 아니다. 안 지사가 그런 편지를 보내고 충남도의 국비 확보를 위해 중앙부처를 방문하는 것을 문제삼을 수는 없다. 지금으로선 그것이 도지사의 책무다. 그리고 여느 시도지사들이 다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나는 안 지사가 그 이상의 방식을 보여주길 기대하고 있다. ‘4대강’ 문제로 청와대에 세웠던 대립각을 ‘지방의 문제’에 대해서는 왜 세우지 못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고 있다. ‘편지’ 같은 게 나쁠 건 없으나 그것만으로 안 된다는 얘기다.

‘지방의 문제’는 지방이 중앙에 구걸하는 방법으로는 풀리지 않으며 오히려 지방이 중앙을 상대로 투쟁해야 해결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지방분권 문제의 권위자인 안성호 대전대교수도 그런 의견을 가지고 있다.

안희정, '4대강'처럼 왜 못싸우나?

나는 그런 싸움을 할 수 있는 ‘지방의 투사(鬪士)’로 안희정을 연상해왔다. 지방을 위해 싸우는 ‘지방 검객’으로서의 도백(道伯)을 기대해왔다. 그러나 그는 ‘4대강 문제’ 외엔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 본래 그런 검객은 아니었는지, 아니면 때를 더 기다리고 있거나 전략을 수정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물론 안 지사는 지방분권에 대해 누구보다 적극적이다. 충남 도정의 중요 목표를 언급할 때마다 자치분권과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빼놓지 않는다. 작년에는 전국시도지사협의회에 지방분권 추진 기구를 만들고, 얼마 전에는 4.11 총선에서 각 당이 지방분권을 최우선 공약으로 삼아달라는 여야 시도지사의 공동 촉구문까지 이끌어 냈다.

그러나 그 정도로는 지방분권이 진전되기 어렵다. 안 지사 같은 사람이 나서 ‘4대강’ 이상으로 중앙을 상대로 날을 세워야 하고 전국적인 이슈로 만들어야 한다. 혹, 안지사도 그 필요성은 알면서 도지사로서 할 수 있는 방법에 한계가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렇다면 이번 총선이 좋은 기회다. 충남도는 지방분권의 필요성을 홍보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동하고, 안 지사는 ‘지방분권 특강’을 잇따라 마련할 수도 있다. 모든 후보들에게 ‘지방분권을 위한 개헌’ 추진을 다짐받고 공약으로 주문할 수 있을 것이다. 선관위에 알아보니 자치단체장이 지방분권을 요구하는 행위가 특정 정파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아닌만큼 선거법에도 걸릴 이유가 없다고 한다.

지방분권주의 진정이면 총선 때 ‘행동’ 나서야

지방분권은 중앙 혼자서 가지고 있는 권력의 일부를 지방으로 가져오는 일이다. 현실적으론 대통령이 지방분권에 찬성해야 하고 국회의원 과반수가 동의해야 한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거의 다 지방분권에 반대하는 중앙집권주의자들이다. 중앙정부 중앙언론과 함께 대표적인 중앙집권주의자요 기득권자들이다.

이들은 말로는 지방분권 운운해도 속내는 반대다. 자기들 밥그릇이 작아지기 때문이다. 이런 국회의원들에게 지방분권 법에 도장을 찍겠다는 다짐이라도 받을 수 있는 때가, 국민이 딱 한번 상전이 되는 이번 같은 선거다. 이때가 아니면 지방분권 법을 그들에게 명령할 수 없다.

이번 총선과 연말 대통령 선거는 지방분권 작업을 그래도 가장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 기회다. 그 선봉자는 중앙에선 찾기 어렵고 지방에서 나와야 한다. 지방분권에 적극적인 안희정 지사가 적임이라고 믿고 있다. 안지사가 진정한 지방분권주의자라면 이번 총선부터 행동에 나서야 한다. /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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