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잔소리]48

▲ ‘자식에게 효도 받는 연습을 하라.’하는 것이다.
효를 행하는 자식이 자식으로서 마지못해 의무적으로 하는 것으로 여기고 효도받는 부모는 부모로써 당연히 받아야하는 권리로만 여긴다면 이러한 효는 형식적일뿐 진정성과 존경심, 자애의 마음이 전혀 담겨 있을 수 없게 된다.

다시 말해 자식에게 효를 받는 부모가 힘들게 낳아 기르고 가르친데 대한 보상을 받기위한 권리행사로서만 효를 받으려한다면 자식으로부터 진정성과 존경심이 담겨있는 효를 받을 수 있겠는가. 자식으로부터 받는 효에는 당연함 외에 진정성과 존경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자식으로부터 존경심과 진정성이 담긴 효를 받기 위해서는 부모자신이 자식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삶을 보여 줌으로써 그 자식의 효가 진정성과 존경심이 우러나오도록 해야 한다.
독자께서 만일 자녀에게 “세상에서 누구를 제일 존경하느냐”하고 물었을 때 자녀가 “우리 아버지입니다.” “우리 부모님이십니다.”하였다면 독자께서는 자식으로부터 진정성 있고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효도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

자식이 부모에게 불효를 한다면 그것은 그 자식의 인성이 나쁜 탓이 아니라 내가 내 부모에게 불효한 모습을 그대로 보고 배웠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효하는 자식을 탓하기 전에 내 부모에게 불효했던 내 자신을 탓해야 할 것이다.
태공(太公)이 이렇게 말했다.
“효어친(孝於親)이면 자역효지(子亦孝之)하나니 신기불효(身旣不孝)면 자하효언(子何孝焉)이리오.” 즉 “내가 어버이에게 효도하면 자식 또한 나에게 효도 하나니 내 자신이 이미 어버이에게 효도하지 않았다면 내 자식이 어찌 나에게 효도하리오.” 하였다. 참으로 지당한 말인 것 같다.

필자의 선친께서 필자가 결혼한 후에도 아침문안인사를 하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너에게 인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네가 이다음에 네 자식에게 효도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라는 말씀의 뜻을 이제야 깨닫게 됨이다.

혹시 ‘내가 자식 앞에서 늙으신 부모를 무시하거나 역정을 내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삼가고 또 삼가야 할 것이다. 내 자식이 그대로 본받는다.

자식으로부터 의무적이고 형식적인 효도가 아니라 진정성과 존경심이 담겨진 효도를 받기 위해서는 지금부터라도 늙으신 부모님께 효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야 될 것이고 자식이 존경할 수 있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효도 받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 ‘자식은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다.’하였다.
이 말은 자식은 자기 아버지의 앞모습 즉 아버지가 사회에서 얼마나 돈을 잘 벌고 높은 벼슬을 하고 명성을 얻었느냐를 보고 배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뒷모습 즉 아버지의 생각이나 가치관 또한 가정에서의 행동거지, 일상생활모습이나 습관, 부모에게 하는 언행과 효도, 부부관계, 자녀에 대한 교육방법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다.

그러한 아버지의 뒷모습은 어느덧 자식에게 각인되어 자식이 훗날 어른이 되면 그대로 닮는 다는 것이다.
그래서 효도하는 집안에서 효자가 나온다 하지 않는가. 필자의 선친께서는 아침운동과 수행과 기도, 일기쓰기를 평생 해 오셨다.
그러한 선친의 생활습관은 어느덧 자식인 필자도 그대로 보고 배워져 지금 선친께서 하신 그대로 행하게 된 것이다.

‘만취한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아내와 다투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는지.’ ‘경박한 언행을 하지는 않았는지’ 이처럼 자식에게 보여주어야 할 올바른 부모의 노릇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부모노릇하기가 정말 힘들다 하지 않던가.
그래도 다시 한 번 옷깃을 여미고 내 자식이 보고 배워서 훗날 닮아갈 부모로서의 내 모습은 어떠한지 성찰해보자.
실천덕목의 하나로 자녀와의 약속은 꼭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비록 술김에 한 약속이나 얼떨결에 한 약속이라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나타내는 아래의 글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할 수 있다.

지난날 우리에게 아이가 탄생했어요.
평범한 출생이었죠.
이일 저일 바빴고 치러야할 고지서도 많았기에
내 아이는 내가 없는 사이에 걸음마를 배웠고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말을 배워 나는 아버지 같이 되겠어요. 아버지……
꼭 아버지를 닮을 거예요.

언제오세요. 아버지……
글쎄다. 하지만 함께 보게 될 때는 즐거운 시간을 갖자구나!
 내 아들이 지난 열 살이 되었군요.
공 사 주셔서 참 고마워요. 아버지. 함께 놀아요. 공 던지기 좀 가르쳐 주세요.
 오늘은 안 되겠다. 할 일이 많다.
 아들은 괜찮아요. 하며 밝은 웃음을 머금은 채 나갔다.
 나는 아버지 같이 될 거예요. 아시죠. 나는 아버지 같이 될 거예요.

언제 오세요. 아버지……
글쎄다. 하지만 그때는 즐거운 시간을 갖자구나.
내 아들이 몇일 전 대학에서 돌아 왔더군요.
 사내답게 컷길래 나는 말했지요. 내 아들아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잠시 함께 앉아 있으려므나.
 아들은 고개를 저으며 미소로 말하길 차 열쇠 좀 빌릴 수 있을까요 아버지? 이따 봐요.

 언제 돌아오니, 아들아……
글쎄요. 하지만 그때 함께 좋은 시간을 갖도록 하죠.
나는 은퇴한지 오래이고 아들은 이사를 나갔죠.
지난달 아들에게 전화를 해서 괜찮다면 한 번 볼 수 있겠니?
그러고 싶어요, 아버지 - 시간만 낼 수 있다면 새 직장 때문에 바쁘고 애들은 감기에 걸렸어요.
얘기하게 되어 반가워요. 아버지
전화를 끊고 나자 선뜻 깨달게 된 것은 내 아들이 나랑 똑 같이 컷다는 것
내 아들이 꼭 나와 같다는 것 언제 집에 오니 아들아……
글쎄요. 하지만 그때는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하죠. 아버지.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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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古典의 향기?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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