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후 5개월… 3명 목숨 앗아간 현장에선 오늘도 “빨리빨리”

   
지난해 9월 갑천 하수관로 매설작업장 매몰사고 현장에서 경찰이 희생자를 이송하고 있다. 용접공 김 씨는 일요일이던 사건 당일 오전 철판을 이어붙이는 용접작업을 하던 중 7m 깊이의 웅덩이에 빠져 숨졌다. 김 씨를 구하려면 현장소장 이 씨와 장비기사 김 씨도 사망했다.

지난해 9월 25일 대전 유성구 원촌동 갑천에서는 하수관로 매설 작업을 하던 인부 3명이 모래 웅덩이에 빠져 숨지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했다. 흙막이 공사를 위해 땅에 박을 플레이트(철판)를 용접하던 용접공 김진수 씨(51)가 약한 지반 탓에 발을 헛디디면서 ‘ㅁ’자 형태로 파놓은 7m 깊이의 구덩이에 빠졌다. 이를 목격한 굴착기 기사 김진구(47) 씨와 현장소장 이용필(32) 씨가 인간 띠를 만들어 김 씨를 끌어내려했지만, 순식간에 세 명 모두 모래 웅덩이 속으로 사라졌다.

일요일이던 이날 오전 9시 10분에 발생한 사고는 출동한 소방당국이 50여명의 인력과 굴착기 2대 등을 동원해 구조작업을 펼쳤지만, 하천물과 토사가 계속 유입되면서 사고 발생 4시간여 만인 오후 1시 30분쯤 결국 3명 모두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해당 사고는 대전시 건축공사 현장 산업재해로서는 단일 공사장에서 발생한 최대 인명사고로 기록됐다.

그로부터 5개월이 흘렀다. 하지만 사건은 이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 가고 있다.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해빙기를 맞아 산업재해로 인한 인명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여보자는 의미에서 당시 사건을 되짚어본다.

대전시 역사상 최악의 사망사고
지난 사고는 60년 넘은 대전시 역사에서 최악의 산업재해로 기록될 전망이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단일 건설공사 현장에서 작업자 3명이 한꺼번에 사망한 사례는 흔치 않다.

현재가지 대전시 역사 이래 최대 토목공사로 남은 도시철도 1호선 공사의 경우도 1996년 10월 착공, 2007년 4월 10년 6개월동안 총사업비 1조 8931억 원과 연인원 500만 명, 크레인 등 100여종의 장비와 레미콘 153만 8000톤, 철근 59만 8000톤의 자재가 투입된 사업이다. 하지만 그 많은 기간과 연인원이 투입된 초대형 건설사업자에서도 사망자는 단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사고가 발생한 갑천제2차집관거 설치사업은 도안, 학하, 덕명, 관저, 노은 지구 등 신규택지개발지구로 하수발생량이 늘자 이를 수용할 차집관거를 설치하는 사업이다. 성구 구성동과 원촌동 사이에 5.2㎞의 차집관로 외에도 역시이펀(inversed siphon) 2개소와 환기구 5개소가 설치된다. 사업비 102억 3400만 원에 사업기간은 24개월에 불과했다.

‘빨리! 빨리!’가 결국 참사 불러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이번 사고는 휴일이던 일요일에 하청업체인 영창토건이 협의 없이 단독으로 진행하다 발생했다. 원칙적으로 관급공사의 경우 휴일에 공사를 진행키 위해서는 감리단에 알려야 하고, 발주처의 승인까지 얻어야 한다.

사고가 나자 발주처인 대전시건설관리본부와 감리단은 “(사고 당일) 공사가 진행되는지 조차 사실조차 몰랐다”고 해명하기 급급했다. 원청업체인 인보건설 역시 “몰랐다”며 황당해했다. 법적으로도 발주처와 감리단에는 책임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원청과 하청업체에서는 “지난해 여름 우기가 길어 공기가 늦어졌기 때문에 일요일에도 작업을 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발주처인 대전시의 설명은 이와 달랐다.

당시 대전시 관계자는 “공사 현황을 지속적으로 보고 받는데 11월이면 공사가 끝날 것이라고 했고, 현장 확인 과정에서도 가능했다. 사업기간이 2012년 3월까지인데 공기가 촉박했다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사고로 사망한 하청업체 현장소장 이 씨의 직장 동료 A씨는 당시 “이 씨가 사고 1시간 전 ‘잦은 비 때문에 공사가 지연돼 일요일이지만 일하러 나간다. 장비를 추가로 지원해야 한다’고 전화를 걸어왔다”고 증언했다.

결국 이들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현장에서 말하는 공기는 사업계획서에 나와 있는 2012년 3월이 아닌 그 보다 몇 달 앞선 2011년 연말 즈음으로 해석된다.

“오늘이 일요일인가요?”… 요일 개념 없는 현장

사고는 눈이 부시게 화창한 가을, 어느 휴일에 발생했다. 이들은 왜 이날 가족과 함께 한가로운 휴일을 보낼 수 없었을까?

대부분의 건설현장에서 공휴일 공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관급공사의 경우 규정상 사고 등으로 얘기치 않게 발생한 현장 등 긴급공사나 공기 단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사업장 외에는 승인을 해주지 않게 돼 있다. 노동자의 권리 보호 차원도 있지만, 사고 발생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루라도 빨리 공사를 끝내면 업체에는 이득이 가는 상황에서 휴일공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사고만 발생하지 않으면 감리나 발주처 누구도 간섭하지 않는 구조다. 허가된 휴일 공사장이 아니면 감리나 발주처 어느 쪽도 감독할 의무는 물론 사고 발생 시 책임질 의무도 없기 때문이다.

사고가 난 현장 인근에서는 4대강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일요일에도 공사는 계속됐다. 이곳에서 만난 한 건설인부는 일요일 공사 이유를 묻는 질문에 “오늘이 일요일인지 몰랐다”면서 “국토관리청에서 다음달(11월)까지 공사를 끝내달라고 해서 두 달째 휴일 없이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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