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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롱베이 해변을 산책하면서


베트남의 새벽길은 온통 생기로 덮여 있다. 하롱베이 드림호텔을 지나 열대의 정원과 꽃들을 보면서 점차 뿌옇게 변하는 새벽을 가르는 공기 속에서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 자문해 본다. 3학년 담임들이 일 년 간 적금 들어 학생들 졸업시키고 그날 밤 비행기로 베트남 북부 하노이, 닌빈, 그리고 하롱베이를 코스로 해서 간만에 망중한의 사색여행을 다녀왔다.

“가르치는 일이 도대체 무엇인가?”,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지?”

 다기망양(多岐亡羊)이란 말이 떠오른다. 양을 찾아 헤매다 길이 많아 쩔쩔매는 목동의 모습은 곧 진리를 찾아 헤매는 가르치는 이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리라.

 학생들을 가르친 지 어언 이십오년이 넘었다. 그 짧지 않은 기간에서 느끼는 바는, 가르치는 일은 효과적인 교육의 목표를 위해 끝없이 고민하고 찾아 헤매는 일이란 생각이 든다. 설명할 보조 내용을 찾아 헤매고, 수업방법을 위해, 수업매체를 위해 고민하고 노력하는 일이 가르치는 이의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 생각이 된다.

 그러나 가르치면서 생각되는 바는 끝없이 작아지는 내 모습이다. 전공의 내용은 수십 번 되풀이 하다 보면 능숙해지고, 수업의 매체 사용도 반복 속에서 이내 익숙해지지만, 학생들의 인성과 교육본질 문제에 부딪히면 한 없이 작아지고 모자라는 내 모습이 발견하곤 한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위대한 영혼이라는 생각을 하면, 나 자신 작아지고 작아지며 어느새 나의 모습은 모두 사라지고 없어지게 된다. 그것이 옛날에는 무척 견디기 어려운 일이며, 때로는 더욱 나를 세우려 몸부림쳤던 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를 부수고 즐겨 진리와 사랑의 나를 온전하게 보존하는 그런 내가 되고 싶어진다. 그것이 행복이니까.........

 그러다보면 자주 기원을 하곤 한다. 내 자신 경건하고 청정함을 위하여 기원하고, 내 자신 진리의 깊은 물이 되기 위하여, 내 자신 누구보다 성실함이 넘치는 주인공이 되기 위하여 기원을 한다. 누구를 향해 기원을 하나? 완전한 진리의 근원을 앙망하며 기원을 할 수밖에 더 이상 기원의 대상은 필요 없는 질문이 아니겠는가?

 또한 마음을 닦는 데 필요한 경전을 즐겨 읽게 된다. 논어나 중용을 읽고, 불경과 탈무드를 읽게 된다. 하늘이 명한 것이 성품이며, 성품을 따르는 것이 진리이며, 진리를 닦는 것이 교육이라고 나름대로 중용의 구절에 대해 교육과 연결시켜 본다. ‘가자 가자 진리가 넘치는 바다로 가자’라는 반야심경의 주문을 해석해 외어 본다. 진리를 구하는 것이 모든 지식의 출발이란 말도 교육과 연결하여 자주 떠오르는 구절이다.

 말과 글로써 살아 온 지난날들, 그 속에서 느끼는 바는 가르치는 일은 배우는 일이며, 가르치는 일은 한 없이 겸손해지는 일이며, 가르치는 일은 진리에 무릎을 꿇는 일이란 깨달음이다. 내가 비어지고, 내가 넘어지고, 내가 여지없이 부서질 때 온전한 내가 설 수 있음을 불을 보듯이 환하게 느껴진다. ‘낮아짐으로 높아지며, 버림으로 인하여 한없는 생명의 진리가 채워짐을 아는 것이다’라는 독백이 절로 터져 나온다.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한 없이 부서지는 어느 날 나의 모습은 청정한 하늘을 이루는 맑은 공기의 하나가 되겠지? 넘실대는 푸른 바다를 이루는 작은 물방울이 되겠지? 보리, 밀이 넘실대는 질펀하게 펼쳐진 황토 들판의 작은 흙이 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푸른 하늘을 이루는 작은 공기가 될 수 있다면, 그대 창문을 열고 멀리 청산을 바라볼 때 가슴 깊이 그대 속으로 들어가 싱그러운 마음, 미소 짓는 웃음을 이루는데 그대와 함께 있고 싶어!

 그대 아스라이 펼쳐진 들판을 걸으며 루룰랄라 노래하고, 때로는 나직히 시를 읖조릴 때 그대 발밑의 고운 흙이 될 수 있다면, 그대 발밑의 싱그런 잡초를 키우는 흙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은 가히 축복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출렁이는 파도의 속삭임, 끼룩이는 물새의 노래가 어우러진 청정바다에서 그 바다의 일부를 이루며 살 수 있다면 나는 산호인 그대를 키우리라. 나는 물새인 그대를 위해 부서지고 깨어지고 싶지 않겠는가?

 요즘 들어 정신없이 달려온 지난 시절 교사의 길을 재음미 해본다. 어쩌면 소명(召命)인지도 모를 이길,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무뎌지는 감각, 때론 게을러져 가는 태도, 온갖 속물근성으로 물들어 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교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라는 본질적 존재론과 목적론에 고민하게 된다.

 지난 어느 날 수업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어느 학생의 질문이 귓가에 맴돈다. “선생님 곰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환웅은 어느 별에서 왔을까요?” “응 그것은 불교의 윤회사상이 가미된 표현이지. 또 다른 해석은 천신족인 환웅 같은 문화인이 되기를 곰을 숭배하는 지신족이 약속한 백일의 5분의 1인 스무날을 견뎌서 드디어 사람다운 사람 곧 문명인이 되었다는 해석은 어떨까?   그리고 한용운님의 말씀! 월조는 남지를 그려 울고, 호마는 북풍을 그려 운다는 말이 떠오르는 것은 단군신화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이리라. 이처럼 진리는 터득하는 자의 것이며, 성실하게 추구해야 하는 당위성기도 하다. 이런 진리탐구를 위하여 교육은 존재하는 것이다. 맹목적인 것은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소명으로 알고 반성하며 담금질과 채clr질을 하면서도 가야 하는 이 길은 그래서 숭고하고 존엄한 것이리라!

 첨단화된 정보화의 시대에서 개방적 사고, 창의적 사고, 발산적 사고를 생각한다. 또 복잡한 이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바른 방향을 생각하게 한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 외롭지 않아. 그러나 풀잎 하나 떨어지면....." 흥얼거리는 유행가를 뒤로 하면서 말이다. 새벽 산책 어둠 속에서 만상이 하나 둘 싱그러운 모습으로 새로이 탄생한다.

 이렇게 하롱베이의 하늘은 열리고 우리의 벅찬 2012년 3월은 시작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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