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01호 병실에서

 


 

새해 벽두부터 동생에게 골수 이식을 해 주기 위해 병원에 2박3일간 입원을 했다. 여러 형제들 중 내 골수만 맞았다.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주저 없이 골수 기증에 사인을 하였다.

흔쾌히 동의 한 아내의 고마움을 엎고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시술을 했다. 카톨릭 대학교 성모병원 병실에서 본 서울 야경, 조명 빛을 받아 화려하지만 낯선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렇게 전망 좋은 병실에서 환자 아닌 환자의 모습으로 누워있으니 이런 저런 상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건강의 소중함, 가족, 형제간의 우애, 그리고 내 소중한 일부를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기부문화에 대해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직접 겪지 않으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한다. 나 역시 예전에는 가볍게 여겼던 것들이다.

James Baldwin는 “One can give nothing whatever without giving oneself--that is to say, risking oneself. If one cannot risk oneself, then one is simply incapable of giving. 자신을 주지 않고는 아무것도 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자신을 걸어라. 만약 그렇지 못하면, 당신은 아무것도 주지 못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했다.

비록 동생이긴 하지만 내 신체의 일부를 공여한다는 것이 생각보단 그리 쉬운 것은 아니었다.

약 3개월간의 채혈을 통한 DNA검사도 쉽지 않았을 뿐더러, 이러저런 검사와 자가 수혈을 위한 예비헌혈 비축, 바쁜 업무를 하면서 서울을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정 등이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도 골수기증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런 가운데서도 수확이 있다면, 그런 검진 과정에서 4:1의 경쟁률을 뚫고 내가 가장 건강하고, 동생골수와 일치가 된다는 점이었다.

비록 골수가 맞아도 공여자의 건강상태가 좋지 않으면 주고 싶어도 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건강검진을 제대로 한 셈이었다.

잠시 병원신세는 졌지만 내가 아직은 건강하고 얼마나 축복받고 있는 존재인가를 절실히 느끼게 되었고, 공기의 소중함을 잊고 살 듯 너무도 편해서 소홀히 생각했던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는 계기가 되었다.

가족이란, 서로 슬플 때 같이 슬프고 기쁠 때 같이 기쁨을 느끼는 것이다. 우리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의지가 되는 사람, 아플 때 곁을 지켜주는 사람은 바로 가족이다.

가족이 없다면 ‘나’라는 사람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가족이 없었더라면 지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 만큼 가족은 이 세상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이다. 이식을 해주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아! 부모나 장남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소리 없이, 대가 없이 그저 그렇게 주고 홀연히 사라져야 하는 존재인지도 모른다는 생각 말이다.’

우리는 ‘돈만 많으면 가정은 행복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돈이 많다고 꼭 가족이 행복하란 법은 없다.

돈이 없어도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가족이 있으면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모든 게 돈인 세상이지만 힘들 때 옆에 있어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기쁠 때 같이 기쁘고 슬플 때 같이 슬픔을 나누는 가족이 있다는 건 큰 행운이고 고마운 존재가 아닐까?

가족은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울타리이자 버팀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깝고 편하다는 이유만으로 가족의 소중함을 잊고 살아간다.

가까이에서 늘 당신을 응원하고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는 존재가 '가족'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랑과 행복의 시작은 바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나는 백혈병이라는 무서운 병마와 싸우는 환자 중에 골수를 찾지 못해 치료를 중단해야 하는 환자들과 그 가족들의 안타까움을 지켜보며 골수기증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소 아프고, 불편하더라도 누군가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면 기꺼이 골수 기증에 동참해야 하지 않을까?

21세기 우주를 오고가는 첨단 과학의 시대에도 인공혈액이나 인공장기는 그저 가공물일 뿐이다. 오로지 건강한 사람들의 골수기증과 장기기증만이 필요한 것이다.

미래는 더불어 살아가는 노블레스 오블리제라는 기부를 통한 상생의 시대이다. 몸으로 물질로 자신의 위치에서 참여의 문화는 의무나 책임이기 이전에 특권이요,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는 가만히 앉아서 얻어지는 방관자적인 소극적 권리가 아니라 적극적, 능동적, 자발적으로 참여해서 얻어지는 현대인의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는 1회성이 아니라 반복적, 계속적으로 실천되어져야 할 영원한 권리이다. 이러한 권리를 실천하는 주인공이 되어 보기를 권해본다.

뉴욕의 베스트셀러, Randy작품인 ‘쌍둥이별’은 형제간의 골수이식에 관한 갈등을 주제로 다룬다.

여기서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서로 간에 얼마만큼 무거움을 떠넘기며 살아가고 있으며, 모든 것을 감수해야 하는가를 숙제로 준다.

나는 가끔 우리 아이들에게 “자신에게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만나거든 당당하게 네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해주곤 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후에는 그 의미에 자꾸 저울질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 한다.

갈급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뭔가를 준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는 아름다운 것이며,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행복의 시작이다.

송명석(영문학 박사, 무일교육연구소장)sms82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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