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도 독서대학

충남도가 독서를 권장하고 있다. 독서를 하면 승진에도 유리한 ‘독서대학’ 제도까지 만들었으니 권장 정도를 넘어 강요하는 셈이다. 독서의 중요성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다. 그러나 독서를 공무원의 승진문제와 연계하는 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독서대학은 공무원들의 인문학적 상상력과 창의력을 향상시키자는 게 목적이다. 업무 능력도 향상될 가능성은 있다. 그러면 더 좋은 아이디어, 더 좋은 시책으로 도민들에게 서비스할 수 있으리란 가정이 전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효과가 어떨지는 의문이다. 우선 독서를 공무원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승진 문제와 연결시킴으로써 강제성을 띠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공무원에게 승진은 인생이 달린 문제다. 대전경찰청의 간부가 상관인 지방청장을 도청해온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줬다. 그 놈의 승진 때문이었다.

효과 의문시되는 ‘충남도 독서대학’

승진을 앞둔 공무원들 가운데는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사람이 꽤 있을 것이다. 뇌물 바치고 때론 ‘영혼’없는 공무원 소리까지 들어가며 승진에 매달리는 게 공무원이다.

‘독서대학’에 참여, 1년에 책 10권을 읽으면 승진 가산점을 최대 1점까지 받을 수 있다. 승진경쟁에서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커다란 점수다. 0.1점 차로 이른바 ‘승진 배수’ 안에 드느냐 못 드느냐가 갈리기도 하니까 말이다.

도 공무원들에게 책읽기는 이제 그냥 독서가 아니라 승진이 걸린 ‘경쟁’이 될 가능성이 크다. 대입을 위한 수험생들이 하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라 공부이듯 말이다. 이제 충남도 공무원들은 그런 수험생의 처지가 될지도 모른다.

창의성은 자유롭고 자발적 책읽기에서 나오는 것이지 경쟁을 위한 피곤한 독서로는 나오긴 힘들다. 그런데도 ‘독서대학’엔 이미 ‘입학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5월 시범실시 때는 신청자가 별로 없었으나 내년 정식 도입을 앞두고 신청자가 늘고 있다.

공무원이 읽고자 하는 도서를 신청하면 도가 지정한 업체가 책을 제공해준다. 그 책을 읽은 뒤 독후감을 제출하면 외부의 평가위원이 ‘패스’ 여부를 판정해준다. 한 권을 패스하면 0.1점, 10권을 읽으면 1점의 가산점을 얻는다.

1점에 초연할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충남도 공무원들은 ‘독서 경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충남도에서 ‘독서열풍’이 불게 된다면 ‘독서업무’라는 새로운 경쟁 방식이 하나 더 늘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독후감 대행’의 폐단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충남도가 추구하는 독서는 이건 아닐 것이다. 안희정 지사가 생각하는 ‘공무원의 독서’는 아마 다산(茶山)이 아들에게 훈계하여 전했던 ‘군자의 독서’와 같을 것이다. 다산은 폐족(廢族)으로 가문을 지키려면 독서밖에 없다며 다음과 같이 타일렀다.

“옛사람들이 나라를 다스리고 세상을 구했던 글들을 즐겨 읽도록 해야 한다. 만백성에게 혜택을 주어야겠다는 생각과 만물을 자라게 해야겠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야 참다운 독서를 하는 군자라 할 수 있다.”

‘독서 업무’에선 창의력 안 나와

폐족의 처지라야 진정한 독서가 가능할지도 모른다. 안지사도 노무현 정부가 막을 내릴 때 스스로 ‘폐족’을 자처하였다. 그때도 그는 ‘군자의 독서’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도백’이 되어서도 그런 독서를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선비의 독서’는 벼슬에 있을 때나 없을 때나 다를 게 없다. 적어도 승진 경쟁을 위한 독서는 아니다.

안 지사는 지금 독서다운 독서가 가능한 도백의 자리에 있다. 그는 책 한권을 읽어도 국민과 도민들을 위한 아이디어가 솟구칠지 모른다. 그러나 도 공무원이 0.1점을 위해 읽는 책은 평가위원의 ‘패스’를 위한 서글픈 ‘서민의 독서’이니 뭔 아이디어가 나오겠는가? 충남도는 독서대학의 효과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나 내가 보기에 성공하기 힘들다.

내 판단이 옳다면, 이유는 안 지사에게 있을 것이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의 효과를 즐기는 안 지사가, 모든 공무원들이 다 자기 같다고 여기는 잘못일 게다. 공무원 중에도 안지사 같은 사람도 적지 않겠으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을 것이다. 또 독서엔 서툴고 게을러도 일 잘하는 공무원도 많다는 것을 생각했다면 승진점수 따는 ‘독서대학’을 쉽게 도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