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1일 대전 공연 등 9년만에 국내 리사이틀

한국이 낳은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63·줄리어드 음악원 교수)가 돌아왔다. 왼손 부상으로 악기를 놓은 지 6년만이다. 2005년 한국공연 당시 손가락 부상이 악화되면서 무대를 떠나야 했던 정경화에 대해 사람들은 많은 얘기를 했다. “천재도, 연습벌레도 부상과 세월 앞에선 어쩔 수 없구나”, “정경화의 시대는 이제 끝났다”라고….

그렇게 잊혀져가던 정경화가 우리 앞에 나타났다. 9년만의 독주회 ‘She is back’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다. 제목 그대로 그녀가 돌아왔다. 정경화는 오는 12월 21일 대전문화예술의전당 무대를 비롯해 서울, 인천, 춘천을 돌며 국내 리사이틀을 갖는다. 이번 독주회를 통해 복귀를 알리는 셈이다.
 
‘위클리디트’가 지역 언론으로는 유일하게 지난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정경화를 만났다. 그는 ‘뭔가를 보여주리라’는 특유의 독기와 완벽함 대신 넉넉한 인생의 여유로 독주회 소식과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 부상을 딛고 9년 만에 국내 독주회를 개최하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지난 21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연주 계획을 밝혔다.
- 손가락 부상으로 오랫동안 무대에 서지 못했다. 9년 만에 독주회를 하는데 소감은.
“더 이상 연주자의 길을 걷지 못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에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건강이 회복돼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여름 열린 ‘대관령국제음악제’(예술감독으로 활동)가 계기가 됐다. 잠깐 섰던 무대에서 연주자로서 용기가 생겼고, 그곳에서 지금의 파트너인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를 만났다. 다시 독주회를 하게 되다니 기적이다.”
 
- 공백기 때 가슴 아픈 일이 많았던 것으로 안다.
“지난 5년은 내게 ‘상실의 시대’였다. 연주를 하지 못하게 돼 슬펐던 것이 아니다. 부상으로 하루아침에 연주자의 삶을 멈춰야 했지만 담담히 받아들였다. 대신 후손과 제자들을 가르치고 도움을 주기위해 최선을 다했다.(정경화는 2007년 9월부터 줄리어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삶이 지옥처럼 힘들었던 것은 내가 사랑하던 주변 사람을 줄줄이 잃었기 때문이었다. 2007년에 첫째인 명소 언니를 떠나보내야 했고, 같은 해에 피붙이나 다름없던 프로듀서 크리스토퍼 레이번을 잃었다.(그 는 1970년 정경화 데뷔 앨범부터 줄곧 정경화와 음악작업을 함께했다) 그리고 올 5월엔 사랑하는 어머니까지 떠나보내야 했다.”
 
- 힘겨운 시간들을 어떻게 이겨냈나.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줄까’ 원망하며 힘들어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방법을 몰랐던 것 같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고 하용조 목사님이 나를 위해 많은 기도를 해주셨다. 그리고 “이제 경화는 정리하면서 인생의 3막을 준비할 때다”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 때부터 마음을 비우고 학생을 가르치는 데 집중했다. 그런데 기적처럼 손이 회복되기 시작했다.”
 
- 이번 독주회를 소개해 달라.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감사와 존경, 사랑을 담은 무대다. 훌륭한 파트너 피아니스트 케빈 케너와 함께한다.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21번’을 비롯해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브람스의 ‘바이올린 소나타 제1번’, 일평생 나의 멘토가 되어준 크레스토퍼 레이번을 위한 프랑크의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등을 선사한다. 인간이기에 겪을 수 밖에 없었던 기쁨과 시련, 행복, 사랑을 고국 팬들과 나누고 싶다.”
 
- 연주자로서 많은 나이다. 부상도 당했었다. 음악을 대하는 태도가 바뀌었나.
“예전엔 완벽한 음악을 위해 싸웠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잘 한다고 해도 나는 만족하지 못했다. 노는 방법을 모를 정도로 연습에 몰두하면서 더 나은 바이올린의 색채를 위해 몸부림쳤다. 지금은 기력이 딸려 그렇게 못한다. 그리고 시련을 겪으면서 완벽주의는 버렸다. 연주하는 자체에 감사함을 가질 정도로 긍정적인 사람이 됐다. 물론, 테크닉적으로는 예전만 하지 못하다. 하지만 오랜 세월을 지나오면서 바이올린 색채가 내 몸과 하나로 연결된 것을 된 것을 느낀다. 이제, 더 깊이 있는 음악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 앞으로의 계획은.
“오랫동안 소망했던 바흐 무반주 소나타와 모차르트 소나타 전곡을 내년부터 녹음한다. 또 2013년까지 런던 무대를 비롯해 중국, 일본, 미국 순회 공연 등이 잡혀있다. 더 이상 무대에 서지 못할 것 같던 내가 다시 연주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보너스 인생을 선물 받은 기분이다. 하늘에서 사랑하는 이들이 내가 다시 연주를 하게 된 것을 보면 너무너무 좋아할 것 같다. ‘우리 경화가 다시 음악을 나눌 수 있구나’라고 말이다.”
 
정경화는 인터뷰에서 “음악 인생의 3막을 열었다”고 했다.
1막은 ‘현의 마녀’로 불리며 세계무대를 휩쓸던 25세까지다. 19세에 ‘레번트릿 국제콩쿠르’에서 우승한 뒤 연간 120여 회 연주회를 돌던 때다.
인생 2막은 손가락 부상으로 연주를 접기 직전인 57세까지다. 손가락 부상 후 그의 음악 인생은 잠시 중단됐고, 어깨 근육까지 찢어져 복귀를 기약할 수 없었다.
연주인의 삶을 정리하던 그가 63세에 3막을 열었다. 그리고 활을 들었다. 시퍼런 날을 번뜩이듯 신들린 연주를 하던 ‘동양의 마녀’는 이제 넉넉한 여유와 사랑으로 무대에 오른다. 그렇게 정경화가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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