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紙面) 위의 무법자 계룡 왕회장
지면(紙面) 위의 무법자 계룡 왕회장
  • 김학용 편집위원
  • 승인 2011.11.25 15:2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원로인가 오너인가

어느 사회든 여론이 분열되어 갈등이 증폭될 때 ‘어르신’의 말 한마디는 중요하다. 우리 지역사회에 그런 역할을 해주는 원로가 누구인가? 아니 그런 어르신이 있기는 한가?

며칠 전 대전도시철도 2호선 문제에 대해 이인구 계룡건설 명예회장 한 일간지에 했던 기고는 지역 원로의 ‘충고’인지 기업 오너의 ‘희망사항’인지 구분이 어려웠다. 이 회장은 칼럼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2호선 차량의 유형별 장단점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중앙정부에 요구에 맞춰 예타(예비타당성조사)를 신청한 대전시를 두둔했다.

지하철 기종을 변경하고 지하로 건설하기로 했던 일부 구간도 지상화 해 신청해놓고도 이를 숨겨온 대전시에 대해 비난이 일고 있는 상황이다. 시장 자신은 그런 사실을 몰랐던 양 부하직원에게 책임을 슬쩍 떠넘겨 욕을 먹고 있다.

원로의 충고가 아니라 건설사 오너의 주문?

전구간을 지상화하더라도 2호선을 조속히 추진해야 마땅하다는 게 이 회장의 생각이다. 그래서 대전시의 ‘변칙적 대체’를 오히려 ‘순발력 있는 대처’로 평가하면서 대승적 입장에서 대전시를 이해하자고 주문하고 있다.

대전시를 ‘이해하는’ 의견이 문제되는 건 아니다. 그러나 공사 금액이 1조원대가 넘는 도시철도 공사를 발주하는 기관에 대해 의견을 내는 사람이 건설업 종사자라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도시철도 공사가 착공될 경우 손놓고 있을 계룡건설이 아니라면 이에 대해 객관적인 견해를 내기는 어렵다. 건설업자로서는 하루속히 땅을 파고 교각을 세워 노선을 까는 게 좋은 일이다.

이런 입장에서 나온 칼럼이 대전의 미래를 결정하는 중요한 정책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준다면 가히 걱정할 일이다. 이 회장의 지난주 칼럼도 그런 글이다. 이 회장은 이렇게 의심을 받을 만한 글들을 지방지에 종종 기고한다.

그런 글이 때로는 지면(紙面)에서 특별대우를 받으면서 대문짝만하게 실리곤 한다. 칼럼은 그야말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오피니언 면을 벗어나지 않지만 그의 칼럼은 예외다. 칼럼 분량도 ‘평상’을 훨씬 넘는 ‘특대’ 규모로 실리곤 한다. 이번 칼럼도 오피니언 면을 벗어나 4면에 실렸다. 분량도 평상의 1.5배나 되었다.

중앙지의 경우 부시나 오바마 대통령 칼럼을 실을 때도 오피니언 면을 벗어나지 않는다. 신문사가 특별히 기획한 칼럼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계룡 이회장의 칼럼은 오마바 이상의 대우를 받고 실리는 셈이다.

이는 지면이 그만큼 유린되고 있다는 말도 된다. 신문사가 뭘 잘못해서 그런 처지가 된 것은 아니다. 기사(記事)로선 신문사가 ‘갑’이지만 광고로 보면 계룡건설이 ‘갑’이다. 신문의 경영난이 가중되면서 신문사는 기사보다 광고에 매달리고 있다.

자연스럽게 ‘갑’의 위치에 가 있는 계룡의 이 회장은 ‘을’의 지면에서 ‘무법자’가 되곤 하는 것이다. 칼럼의 내용이야 필자의 생각이니 상관할 바 아니나 남의 신문에 실리는 칼럼의 분량과 게재 날짜까지 맘대로 할 수 있는 기고자가 있다면 무법자가 아니고 뭔가? 그런 광고주의 ‘희망’이 ‘칼럼’으로 둔갑돼 지면에 실리고, 이것이 ‘엉터리 행정’을 변호하는 결과가 된다면 독자와 시민들은 피해자가 되고 만다.

풍부한 경륜과 지혜 번뜻이는 지역 원로인데…

계룡건설은 지역 최대 기업이다. 지방재정에 가장 많은 도움을 주는 기업 가운데 하나다. 지역사회에 대한 기여도 작지 않다. 계룡건설에서 만든 장학재단은 어제 87명의 어려운 학생들에게 3700만원의 장학금을 나눠줬다. 장학금으로 내놓는 돈이 연 3억5천만원이 넘는다. 지방언론 경영에 주는 도움도 적지는 않을 것이다. 대전시민들이 존경하고 응원해야 하는 기업이다.

이런 기업의 왕회장이면 지역 언론을 더 아껴야 한다. 돈 몇 푼 준다고 무법자가 되어 지면을 유린하는 행위는 장학금을 나눠주는 것과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나는 이 회장의 풍부한 경륜과 지식, 번뜩이는 지혜에 종종 놀라곤 한다. 분명 누구보다 소중한 충고를 줄 수 있는 지역 원로다. 그러나 이 회장이 이를 전달하는 방식을 보면, 원로가 아니라 특정 기업의 왕회장일 뿐인 경우가 많다. 지역 신문을 아껴주고, 시장도 도지사도 잘못은 잘못이라고 꾸짖는 원로가 되어 주시길 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