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민주당 대전시당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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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파 경제학에서 현대의 비판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통상과 무역은 후생을 증가시켜준다고 주장한다. 마르크스도 통상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비교우위든 절대우위든 국가간 통상과 무역을 통해서 서로 필요하고 서로 부족한 것을 보완해 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통상과 무역을 증진시키기 위한 다자간 협정에서 국가간 쌍무적 협정인 FTA(자유무역협정)를 찬성할 측면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FTA 추진했던 이유
그러하기 때문에 참여정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미국과의 한미 FTA를 추진해 왔다. 상당수 진보진영 인사들의 거세 반대에도 불구하고 유한한 자원을 가진 작은 나라인 대한민국이 글로벌화한 세계경제의 거친 경쟁의 틈바구니에서 살 길을 모색하는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GDP 대비 수출의존도가 50%에 이르는 우리나라 아닌가 ? 더군다나 2006년도에는 신자유주의의 맹위가 극성을 발휘할 때이니 돌아가신 공자가 살아난다 해도 불과 2년뒤의 일을 예측하기는 어려웠으리라. 당시의 진보적 학술지를 찾아보면, 향후 몇십년간 진보의 득세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예측을 진보학자들 사이에서 공공연하게 튀어 나올 때의 일이었다.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위기가 발생하였다. 돈놓고 돈먹기로 표현되는 셀 수도 없는 수많은 파생금융상품이 실물과 무관하게 번져나갔다. 도덕적 해이(모럴 헤져드)와 정보의 비대칭성이 가세하면서 결국 미국의 월가는 백기를 들고 말았다. 리먼브러더스의 도산, 일본 노무라증권의 도산이 그 상징이었다. 그리고 이제 전 세계는 과거 대공황의 재연을 염려할 정도의 전대미문의 경제침체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각국의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
미국이 주도한 한미 FTA 재협상 

2006년에 타결된 한미 FTA의 재협상은 미국이 주도하여 왔다. 당시의 양국간 협정문은 달라진 세계경제 환경속에서 우리가 그토록 찬양해 마지않았던 오마바 행정부의 4년여에 걸친 끈질기고도 집요한 노력에 의하여 2011년 재협정문으로 대체되었다. 이 과정에서 열악해진 한국경제의 조건과 환경은 조금도 고려되지 않았고 오히려 전 세계가 슈퍼파워임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 미국 경제의 조건과 환경만이 고려되었을 뿐이었다. 그것은 이익균형의 파괴이었다.
최초의 협정문에서 재협상에 의한 재협정문에 이르기까지 4년이 경과하였고, 그 사이에 세계경제조건과 환경이 변화하였다면 그리고 미국만의 이익을 위하여 재협정문이 탄생을 하였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재재협상을 할 수 있는 것이 논리필연적이지 않은가? 그러기 위하여 충분한 시간을 갖고 국민적 논의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바로 이런 관점에서 지금의 한미 FTA에 대한 국회 비준은 서둘러야할 이유가 조금도 없다.
ISD, 한국의 사법주권 침해하는 독소조항
하물며 그럴진대, 이번 재협정문상의 ISD 조항과 미국의회가 이번에 통과시킨 한미 FTA 이행법안을 살펴보면, 이것이야말로 한국의 사법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고 그러하기 때문에 더더욱 쉽게 국회의 비준을 허락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ISD 즉 투자자국가소송제도란, 외국에 투자한 기업이 해당기업에게 불합리한 현지의 정책이나, 법으로 인한 재산적 피해를 실효적으로 보호하기 위하여 국제기구의 중재로 분쟁을 해결토록 한 제도를 말한다. 즉, 기업이 상대방 국가의 정책으로 이익을 침해 당했을 때 해당 국가를 세계은행 산하의 국제상사분쟁재판소(ICSID)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번 재협정문에는 수도, 의료, 전기, 가스, 철도, 우편요금 등의 모든 공공서비스 영역이 포함되어 있고, 한국의 정책이 한국내 투자하는 미국기업의 재산과 권리에 대한 직접적 규제(예를 들어 외국인 토지소유의 제한 등)는 물론이고 간접수용 즉 어떠한 한국의 공공정책으로 인하여 미국기업이 한국내에서 손해를 보는 경우(예를 들어 미국의 영리병원이 한국의 건강보험제도상의 수가지정제도에 의해서 손해를 보는 경우, 지금 한국민이 혜택을 보고 있는 원가보다 싼값으로 공급되는 전기료, 수도료로 손해를 보는 경우, 저소득층에 대한 세제상 경제적인 지원정책으로 인하여 손해를 보는 경우 등)에도 제소를 할 수 있는 것이 ISD조항이다.
그것도 한국법원이 아니라 국제상사분쟁재판소에 말이다. 이 경우 한국법이 아닌 국제법적 원칙과 법리가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상사에 관한 국제법적 원칙은 당연히 미국을 위시한 서방경제대국의 시장자유주의 준칙과 민영화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번 미국 의회에서 통과된 한미 FTA 이행법은 한미 FTA 협정문이 미국법을 위반할 수 없게 하였고, 미국정부가 이 협정문을 지키지 않았다고 해서 한국기업이 미국정부를 제소할 수 없게 만들어 놨다. 미국과 FTA를 체결한 국가들을 상대로 미국기업이 제소한 소송에서 현재까지 결론난 사건들의 대부분을 미국기업이 승소하였다는 것이 우연이 아닌 이유이다.
결국, 대한민국 헌법이 예정한 사회적 경제적 약자를 위한 각종의 시장규제적 공공정책이 한국 법원이 아니라 뉴욕에 법정을 두고 있는 국제재판소의 결정에 의하여 사실상의 폐지 혹은 제한이 가해질 수 있다는 것이고, 이것이야 말로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갖는 사법주권을 심대히 침해하는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렇기 때문에 이번 한미 FTA 협정문 중 가장 독소조항인 ISD에 대하여 우려를 넘어 반대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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