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잔소리]32

<원문> 禍兮福所倚 (화혜복소의)로다, 福兮禍所伏(복혜화소복)이로다. 孰知其極(숙지기극)가 其無定(기무정)이다. - 노자(老子)-

<해설> 화여! 복속에 기대여 있도다. 복이여! 화속에 엎드려 있도다. 누가 그 끝(화와 복의 끝)을 알 수 있는가 그것은 정해짐이 없는 것이다.

<여설> 누구나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화와 복을 겪는다.
 그런데 살면서 겪는 화와 복의 끝과 시작은 누구도 알 수 없어 화된 일인가 싶더니 생각지도 않게 복으로 변하고 복된 일인가 했더니 느닷없이 화로 변하니 화가 복의 씨앗이고 복이 화의 씨앗이 되는 변화무쌍한 그 화와 복의 조화를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한 고사성어로 새옹지마(塞翁之馬 :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라는 말이 있다. 즉 인간의 길흉화복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고 일정함이 없다는 말이다. 옛날 중국북방의 국경마을에 점을 잘 치는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노인의 말이 오랑캐 땅으로 달아났다.
마을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애석한 기색이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며칠이 지난 어느 날 도망쳤던 그 말이 새끼말까지 데리고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이 축하하자 노인은 조금도 반가운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화가 될는지?그런데 어느 날 말 타기를 좋아하는 노인의 아들이 그 새끼 말을 타다가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마을 사람들이 이를 위로하자 노인은 조금도 슬픈 기색 없이 태연하게 말했다.
?누가 아오. 이 일이 복이 될는지?그로부터 1년이 지난 어느 날 오랑캐가 쳐들어오자 마을 젊은이 들은 모두 전쟁터로 나아가 대부분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노인의 아들만은 다리가 부러져 싸움터로 나아가지 않아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화가 복의 씨앗이 되고 복이 화의 씨앗이 된 경우라 할 수 있다.

이런 일이 있었다.
민주화시위가 한창이던 5공 시절 어느 대학생이 시위에 참가 했다가 집시법위반으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학생의 어머니가 날마다 절에 가서 아들 석방을 위한 불공을 드렸다.
그 어머니의 정성스런 불공덕분인지 아들은 징역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고 3개월 만에 풀려 나왔다. 어머니와 아들은 얼마나 기뻤을까 그러나 그 기쁨도 3개월뿐, 석방 3개월 뒤 아들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차라리 감옥에 그냥 있었으면 목숨은 잃지 않았을 텐데, 이 또한 복속에 화가 들어있었음이 아닌가.
그러므로 인생을 삶에 있어서 앞날에 대한 일과 나에게 닥쳐진 길흉화복이 어떻게 변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나에게 화된 일이 닥쳤을 때는 앞으로 복으로 변할 수 있음에 좌절하지 말고 희망으로써 꿋꿋이 해쳐 나갈 것이며, 복된 일을 맞이했을 때는 앞으로 화로 변할 수 있음에 지나치게 도취되거나 자만하지 말고 닥칠 수 있는 화에 대비할 수 있는 지혜기 필요한 것이다.
즉 나에게 복이 왔던 화가 왔든 항상 평상심(平常心)을 잃지 않는 삶의 철학이 예측할 수 길흉화복의 파도에서 내 자신을 지켜 나 갈 수 있는 방파제가 됨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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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생활 명심보감?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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