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남의 잔소리]31

<여설> 둑길에 나있는 이름 모를 풀 한 포기에도 다 하늘의 뜻이 있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요,
소우주라는 인간에 있어서야 더 말할 나위가 없는 것이다.
즉 하늘이 사람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할 때는 그에 따른 삶의 길을 함께 부여해 주셨다.
그래서 福(복)자를 파자(破字)해 보면 ?신(示)은 한(一)사람의 입(口)마다 밭(田) 즉 먹을 양식을 주었다.
즉 저마다 살아갈 복을 주었다.?라고 풀이할 수 있다.

이처럼 하늘은 인간을 내려 보내면서 그와 함께 살아갈 몫, 즉 복(福)까지 딸려서 내려 보내 주었는데 단지 그 몫, 즉 복(福)을 받고 못 받음에 있어서는 자기가 할 탓에 있기에 어떤 자는 제대로 자기 몫, 즉 복(福)을 받는가 하면, 노력을 하지 않아서 제대로 받지 못하는 자도 있어 이처럼 그 차이가 천차만별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이 그 사람을 걷게 하는 운명의 길에는 구도자로서의 운명의 길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운명을 받아야 하는 사람에게는 하늘은 오로지 구도자의 길만을 걷도록 하기 위해서 세속의 욕망이나 인연 심지어 가족의 인연까지 전부 끊어 버리고 그리하여 가장 절박한 운명의 삶으로서 벼랑 끝까지 몰아서 결국은 그로 하여금 구도자의 길을 가도록 인도한다.

마치 물고기를 잡을 때 물고기가 어항 속으로 들어가도록 모는 것처럼 말이다.
동자승들의 입도 과정을 가끔 TV속에서 보게 되는데 천방지축 까불대던 속세의 어린아이들이 눈물을 뚝뚝 흘리며 머리를 깎고 어설프게 불경을 외면서 불자의 길로 들어서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들 모두가 스님이 되고자 스스로 절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거의 모두가 고아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자기의 뜻과는 관계없이 절에 맡겨진 사연등 모두가 박복한 운명에 의해 자기도 모르게 구도자의 길로 인도 된 것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어느 나이 많으신 보살은 남편을 6.25때 잃고 청상과부가 된 후 개가도 하지 않고 속세에 대한 인연이나 욕망을 모두 끊어 버리고 절에 들어가 공양주로서 평생을 부처님을 받들며 구도의 길을 걸어왔는데 항상 그 모습은 평화로움 그 자체였다.

이는 자신의 박복한 운명을 구도의 길로써 맞이하고 사랑함이라 할 수 있다.
『성철』스님 같은 큰 스님 거의 모두가 불도에 입문하기 전 속세에서의 삶은 참으로 박복한 운명이었다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부나 수녀로서 구도의 길을 걷는 성직자들도 거의가 세속의 박복한 운명과의 인연을 끊고 구도자의 길을 걷게 된 경우가 많다.

어쩌면 아무나 쉽게 갈수 없는 구도자의 길을 가도록 하기위해 하늘은 그에게 그다지도 세속에서의 절박하고도 박복한 운명을 내려 주어 구도자의 길로 인도 하셨음인지도.
그렇다, 박복한 운명의 삶이 나를 벼랑 끝으로 몬다면 세속의 욕망과 인연을 끊고 구도자의 길로 가라는 하늘의 또 다른 뜻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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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충남 교수는 서예가이며 한학자인 일당(一棠)선생과 '정향'선생으로 부터 한문과 경서를 수학하였다. 현재는 대전광역시 평생 교육문화센터와 서구문화원 등 사회교육기관에서 일반인들에게 명심보감과 사서(대학  논어  맹자  중용)강의 활동을 하고 있다. 금강일보에 칼럼 ?김충남의 생활 명심보감?을 연재하고 있다.

 또 어려운 한문이나 경서의 뜻을 쉽고 논리적이고 현대적 정서에 맞게 강의 할 수 있도록 하는 강의서를 집필중이다(김충남의『명심보감』, 김충남의『대학』, 김충남의『논어』, 김충남의『맹자』, 김충남의『중용』, 김충남의『생활한자』, 김충남의『고사성어』) 손전화 010-2109-5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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