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야할 이야기]이인구고속도로 건설 참여

   
젊은 날, 아산만 경계지역을 둘러보고 있는 이인구.
(공병) 보직된 후 공병감실에 차출되어 새로운 임무를 맡았다. 박정희 대통령은 갑자기 서울-부산 고속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그 기획을 육군 공병감과 건설부 장관에 맡겼다. 공병감은 7인 실무위를 구성하고 나를 팀장으로 지명했다.

고속도로의 개념(급수) 결정, 노선선정, 설계지침, 소요예산, 시공체제와 감독체제 등을 작성 보고 해야 한다. 기본 방향이 준비된 후에 제일 먼저 해결할 문제는 노선 결정이다. 나는 7명에게 5만분의 1지도를 나눠줬다.

“각자 도상 연구를 해서 이 지도에 노선을 넣어오시오. 커닝은 안 됩니다. 지침에 따라 수원, 천안, 대전, 김천, 대구, 경주, 울산을 끼고 노선을 선정해야 합니다.”

다음 날 각자의 노선안이 제출되었다. 나는 공병감에게 보고하고 L-19경비행기 7대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했다. 당장 참모총장의 승인 지시를 받았다.

“각자는 비행기 7대에 분승하여 자기가 선정한 노선에 따라 왕복하시오. 다음날부터는 각자 타 장교가 선정한 노선을 답사시킬 것이오. 그 이후는 2개의 안을 선정하고 마지막에는 팀 단일안을 확정할 것이오. 단일안을 확정할 때는 6인승 2대로 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2주간 매일 비행기만 탈 것입니다. 비행은 가급적이면 저공비행을 할 것이고 기후가 나쁘면 그날은 쉽니다. 망원경 등 소요장비는 오늘 지급합니다.”

그로부터 약 20여 일간 나는 서울-부산을 20여회 왕복 정찰을 했다.

대전 IC 노선으로 고민

그런데 항공 정찰 결과 6개안은 모두 신탄진에 대전 IC를 정하고 고속도로는 금강 연변을 따라 세천에서 옥천을 향하는 방안이었다. 나는 지금의 노선과 비래터널을 고집했다. 공사의 난이도 문제, 공기 단축문제 때문에 6명의 평가원은 반대를 했다.

“명색이 내가 팀장이오. 나는 대전 사람이오. 대도시인 대전을 관통하지 못하는 안에 나는 동의할 수 없소. 내 입장과 체면을 살려주시오. 부탁합니다.”

모두는 끄덕거려 주었다. 그 때는 대청댐 계획이 없을 때였다. 만일 다른 노선이 선택되었다면 지금의 대청댐은 존재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나는 지금도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노선이 확정되려면 대통령의 최종 승인이 있어야 한다. 우리 팀을 대표하여 청와대 회의에 나가 대통령께 보고했다.

박대통령은 만족해했고 다음 순서의 기획을 지시했다. 우리는 한 단계 한 단계 성안하며 골몰했다. 공사비용 산출에서 450억 원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청와대 회의가 소집되고 나는 차트를 갖고 대통령께 브리핑을 했다. 공사 예산 규모가 설명되는 순간 대통령은 눈빛이 달라졌다.

“도둑놈들, 나는 군인만큼은 믿어왔다. 그런데 너희들 다 도둑놈들이다. 설명 끝.”

노발대발했다. 장내에는 정일권 국무총리, 재무부 장관, 건설부장관을 비롯한 5-6명의 관계 장관, 한은총재, 참모총장, 공병감 등이 있는 곳인데 나는 대망신을 당하고 퇴거해야 했다.

“일주일만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각하께서 도둑놈으로 질책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조사해서 대안을 보고하겠습니다.”

공병감은 눈으로 동의를 했다.

300억원이면 되는 공사비

조사결과 박대통령은 우리가 준 노선지도를 정주영 현대건설 사장에게 넘기고 예산을 견적해서 은밀히 보고하라는 지시를 했으며 정사장은 총액 300억원이면 가능하다는 견적서를 이미 대통령께 전한 후에 이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수소문 끝에 현대건설의 견적 책임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냈다. 상모 상무였다. 나는 상상무를 찾아가 견적 초안을 보여 달라고 했다. 그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대답했다. 최고도의 보안조치가 내려진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나는 돈암동에 있는 상상무의 거처를 알아냈다. 그리고 상무의 집안사정, 출퇴근 시간대도 조사했다.

“지금 상상무가 집에 들어갔습니다.”
   
미국 공병학교 유학시절.


현지 보고를 듣고 몇 사람의 특공대를 조직하여 집안에 들어갔다.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내일 10시에 서린 호텔에서 만납시다. 견적서 전체는 못주고 브레이크 다운(집계표)만 드리지요.”

우호적 약속을 받아내고 집안 식구들을 안심시켜주고 퇴거했다. 상상무는 약속을 지켜주었다. 그 한 장의 쪽지로 나는 해법 열쇠를 찾은 것이다. 항목별 공사 견적은 우리 것과 대동소이했다. 오차 범위 내의 숫자 차이가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우리 견적에는 포함되었지만 현대 건설 견적에는 전혀 누락된 항목이 있었다.

토지 보상비. 실시 설계비. 감독비. 인터체인지 건설비 등...나는 대통령께 퇴자 당한 견적표와 현대 건설 견적표를 한 눈에 비교한 차트를 만들었다. 다시 보고하는 기회가 왔다. 그 차트를 대통령 앞에 걸어 놓고 막 설명을 하려는 데 “잠깐!” 표를 설명 없이 훑어보던 대통령이 말했다.

“도둑놈은 따로 있구먼. 저희들이 받아먹을 돈만 견적한 거 아니야. 지난번에 내가 실수 했어. 그대로 승인하니 다음 차례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모두 식은땀을 닦으며 해방이 되었다. 청와대를 퇴거하려 현관을 나서는데 경호실장이 “이인구 중령은 남으시오”해서 대기실로 갔다. 불안했다. 얼마 후 유골함보다 큰 하얀 상자가 왔다.

“각하의 하사금이오. 받아 가시오.”

부대로 돌아와서 그 돈을 세어봤다. 천원권 신권으로 2,000만원, 지금으로는 2억 이상의 가치가 있는 어머어마한 돈이다. 나는 되 넣어서 공병감에게 전액을 건넸다.

“각하의 하사금은 표 있게 사용하고 보고해야 한다. 이 돈으로 라디오를 몽땅사서 전군 공병 내무반에 각하 하사품으로 주자.”

공병감은 나의 동의를 요청하는 눈빛이었다.

“좋습니다. 고민거리가 해결됐습니다. 그렇지만 십만원만 주십시오. 우리 팀 장교한테 파티나 해줘야지요.”

공병감은 100만원을 떼어 주었다. 얼마 전 ‘영웅시대’라는 드라마가 상영되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손수 설계하시는 장면이 계속되는 것을 보고 나는 속으로 웃었다.

“그늘에서 숨어서 일하는 사람들은 도깨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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