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영호 국회의원..."숨 막히는 매뉴얼 문화 큰 문제"

   
 영화 <일본침몰> 포스터.
<일본침몰>.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그날, 2006년 개봉된 이 영화를 꺼내서 봤다. 강도 10의 대지진과 후지산을 비롯한 전 지역의 화산폭발 및 해일로 결국 일본이 침몰한다는 내용이다.

이번 동일본 대지진은 강도에서는 큰 차이가 있지만 상상력을 키우면 그런 결과가 있을 수 있겠다는 느낌도 들었다. 동시에 몇 가지 현안과 관련된 짧은 생각이 들었다.

하나는 헌법 개정 때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내각책임제보다는 대통령제가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그 엄청난 대지진 속에서도 일본에는 스스로 책임지고, 정면 돌파하려는 믿음직한 정치지도자는 없었다.

일본, 엄청난 대지진 속에서도 믿음직한 정치지도자 안 보여

사고의 현장에서 국민을 안심시키고, 시신수습에 전력을 다하는 지도자의 모습이 보이질 않았다. 내각제하에서 수상이 리더십에 상처를 받고 자꾸 바뀌면서, 관료 위에 얹혀사는 업무행태가 관례화 되다보니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의 IMF 위기시절 보여준 역동성 있는 신속한 대응은 대통령제의 리더십이다.

또 하나는 세계인들이 인류의 희망이라고 칭송을 아끼지 않는 질서의식과 절제된 슬픔, 침착함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하는 물음에 대한 답이다. 재난에 대한 꾸준한 교육과 훈련 이외에도 그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일본의 심리에 특이성이 있겠다는 생각이다.

일본 최고의 지식인이며, 정신분석학자인 도이 다케오(土居健郞)가 쓴 일본인의 의식구조와 관련된 <아마에(응석부림)의 구조(甘えの構造)>에서 보면 일본인은 죄의식처럼 가장 수치감을 느끼는 것은 자신이 속한 집단과의 관계다. 집단에서 손가락질 받는 것이 수치스러운 것이고,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여긴다.

일본인들이 상대방의 친절한 행위에 대하여 단순히 감사하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여기지 않고, 상대방에게 폐를 끼쳤다고 사죄를 하는 것도 상대방의 호의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1981년 영국 옥스퍼드대학 출신의 모리시마 미치오(森嶋通夫)는 <왜 일본은 성공하였는가?>라는 책에서 “일본의 유교문화는 중국과 달리 인(仁)의 경시이고, 충(忠)의 중시이다”라고 했다.

숨 막히는 매뉴얼 문화도 큰 문제…지식정보화 시대에는 안 맞아

여기서의 충(忠)은 중국에서처럼 자기양심에 대한 성실이 아니라 군주, 부모와 연장자, 사회의 다수파에 대하여 행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일본의 질서이고, 집단의식이다.

아울러 인(仁)을 경시하는 기질로는 매년 봄철에 되풀이되는 교과서 문제나 독도문제에서 일본에 기대할 것이 없다.

마지막으로 숨 막히는 매뉴얼문화이다. 구호물자가 부족한 이재민을 구하는데도, 도로에 차량을 치우고 복구하는데도, 관련 매뉴얼을 찾는데 시간을 보낸다. 지난 고베 대지진 때도 이번 대지진에서도 이것이 큰 문제였다.

일본인들이 잘 쓰는 ‘쓰메루(詰める)’라는 말이 있다. 이어령 교수는 이 말이 일본문화를 길러낸 아메바라고 한다. 일정한 틀 속에서 죄고, 다져서 빽빽하게 끼워 넣는 것이다.

1억 2천만 인구를 마치 한 사람처럼 축소하여 도시락 통과 같은 하나의 틀 속에 ‘쓰메루’하는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이다. 이 하나의 틀이 바로 매뉴얼이다. 빈틈없이 꼼꼼한 기질도 여기서 나온 것 같다.
   
 임영호 국회의원.
이런 문화에서는 괴짜도, 벤처정신도 살아남을 수 없다. 능률과 효율을 중시하는 산업화 시대에는 몰라도, 지식정보화 시대에는 맞지 않는 것이다.

막부 봉건체제를 붕괴시키고 근대 일본을 건국하는데 기여하여 일본인에게 제일 존경을 받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는 처음에는 긴 칼을, 다음에는 권총을, 마지막에는 국제법을 자신의 소지품으로 보이면서 자기변혁을 꾀했다고 한다. 일본이나 우리나 필요한 가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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