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논산시 벌곡면 김상규 옹의 인생역정

오는 13일 벌곡면 자택서 100세 맞이 동네잔치 열 계획

“나이만 주워 먹은 게 뭐 자랑인가? 세상사람들에게 다 알리려고 왔구먼...나이가 너무 많다는 게 부끄러워!”(웃음)

올해로 만 100세(한국나이로 101세)를 맞이한 김상규(金相圭) 할아버지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도산 1리 34번지 자택으로 기자가 찾아가자 "나이만 먹어간다는 게 부끄럽다"는 말부터 꺼낸다. 그렇지만 방에서 거실로 걸어 나오는 모습이 한 세기 동안 세상 풍파를 거친 노인으로 보이질 않는다. 허리도 꼿꼿하고 "반갑다"며 기자의 손을 잡는데 아직도 장년의 힘이 느껴진다.

   
1910년 생으로 올해로 만 100세를 맞는 김상규 할아버지는 아직도 건강한 모습이다.

요즘도 새벽 5시면 일어나 직접 양치질은 물론 세면도 하고 방에서 요강을 가지고 나와 깨끗하게 청소도 한단다. 그리곤 동네 주변을 산책하며 하루를 시작한다. 가을로 접어들어 쌀쌀한 날씨로 인해 아침 산책의 강도(?)가 줄어들었지만 여름이면 동네 풀이라는 풀은 할아버지의 손에 남아나질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건강하고 부지런하다.

100년을 살면서 병원신세도 져 본적이 없단다. 감기조차 걸려본 적이 언제인지 모른다. 근래 들어 아들의 성화에 보건소에 몇 번 가본 게 전부다. 보건소에 가서 진단을 해보면 건강상태는 '양호'로 나온다. 그러면 할아버지는 “병원(보건소)에 올 필요가 없는데 괜스레 왔다”며 아들을 나무란단다. 할아버지가 백수를 누리며 아직도 건강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아버님은 젊었을 때 담배를 조금 피우셨을 뿐이고 술과 담배는 전혀 안하십니다. 음식은 주로 채식위주로 소식을 하십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자손들이 모일 때면 고기를 조금 드실 뿐 주매뉴는 채소입니다. 옛날 먹고살기 어려울 때 익힌 습관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거죠. 그리고 집 앞에 있는 400여 평의 텃밭을 가꾸고 인근 마을 등을 걸어다니시는 게 하루 일과입니다.”

김 할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둘째 아들 관진(59)씨는 “아버님은 한시도 몸을 놔두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새벽에 일어나 텃밭을 가꾸거나 할일이 없을 때면 집 주변 풀이라도 뽑아야 아침을 드신다고 한다. 집 앞에 있는 텃밭 400여 평은 할아버지의 일터이자 놀이터이다. 이곳에 야채는 물론 콩과 고구마, 깨 등을 직접 가꾼다. 자식들은 밭일에 손도 대지 못하게 한다고 한다. 가꾼 수확물들은 자손들에게 골고루 나눠준다.
   
아직도 400여 평의 텃밭은 할아버지의 일터이자 놀이터다. 쌀쌀한 날씨임에도 배추밭 앞에서 포즈를 취해 주셨다.

 아직도 400여 평 텃밭서 채소 등을 가꿔 자손들에게 나눠줘

일손이 좀 놓이면 걷는 것이 취미다. 인근 동네를 유람삼아 걸어다닌다. 걷는 것도 보통 걷는 것이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태고사 입구까지 20리(8㎞) 정도는 거뜬하게 걸었다고 한다. 4년 전에는 아들이 살고 있는 대전시 서구 도마동까지 무려 60리(24㎞)를 걸어서 다녔다. 자식들이 차를 타자고 하면 손사래를 친다고 한다.

“올 봄까지만 해도 하루 20-30리는 걸었어. 걸어다니는 운동이 제일 좋을 것 같아. 걸어다니다 보면 강산을 구경하고 얼마나 좋아. 차타고 가는 거보다 열 배는 더 구경할 수 있을 거야. 난 지금도 찻삯이 얼마인지도 몰라.”

할아버지는 그동안 걸으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노인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차를 세워 태워주려고 하는 사람들, 그리고 노인에게 정답게 인사를 해주는 마을 사람들... 할아버지는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도 빼놓지 않는다. 할아버지가 언제부터 걷는 것이 취미가 됐는지 정확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어렵던 시절, 농사짓고 나무하고 하면서 걷는 것이 자연스레 몸에 밴 것 같다.

4년 전엔 대전서 벌곡까지 걸어다녀..."걷는 것이 건강에 최고 좋은 것이여"

김상규 할아버지는 1910년(호적상에는 1912년) 음력 10월 13일 금산군 복수면 백암리에서 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한창 일제 치하에서 태어나 6.25를 거치고 보릿고개를 넘어야 했으니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장남이자 가장으로 책임감도 컸으리라.  

   
20여전 전쯤, 선친 묘소 앞에서 선 할아버지 형제들 모습. 좌로부터 김 할아버지(100), 둘째 동생 승규(90)씨, 세째 동생 현규(78)씨. 장수집안임을 과시하는 듯하다.

 
“일정 때는 물론 6.25 때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지. 일제가 공출매상하려던 곡식을 감추었다 들켜서 욕도 보고... 6.25 때는 동생을 숨겨놨다고 빨치산에게 몽둥이로 많이도 맞았어. 세상을 그렇게 살았어.”

김 할아버지는 2남2녀의 자녀를 두었다. 원래는 12남매를 낳았는데 홍역 등 전염병으로 잃고 4남매만 남았다. 금산에서 지금의 논산시 벌곡면으로 이사를 오게 된 것도 자녀들을 많이 잃는 변고를 겪고 이를 막아보자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큰아들 정진(71)씨, 큰 딸 윤진(69)씨, 지금 모시고 있는 둘째 아들 관진씨와 막내딸 유순(56)씨 등 4남매를 농사를 지어 길렀다. 이제는 장성했다기 보다는 자녀들도 함께 늙어간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할아버지가 낳은 자손만도 손자는 물론 증손자 손녀 8명을 포함해 모두 40여명에 이른다. 100세의 나이라면 이보다 훨씬 자손이 많은 것이 정상이지만 앞서 설명한대로 자녀들을 많이 잃는 변고로 인해 자손이 예상보다 많지 않다.

   
올 봄 육군항공학교에 근무하는 손녀를 면회하고 기념사진을 찍었다. 왼쪽이 손녀 김국희 하사.

 
농사 지으며 자식 키워온 일평생...일제시대, 6.25 거치며 고생도 많아

“참으로 어렵던 시절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나무하고 평생을 일만하고 살았어. 먹을 것이 없어 때를 거른 적도 많았고... 지금은 모두들 천석꾼 부럽지 않게 살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시절이냐고? 가만히 집에 앉아 미국 대통령하고 대화하는 시대 아닌가벼?”

김 할아버지는 당신은 좋은 세상만나 아직도 잘 살고 있는데 10년 전 동갑내기 아내(윤임순)를 보낼 때가 인생에서 가장 아쉬웠다는 표정이다. 15세 때 만났으니 무려 75년을 해로한 할머니였다. 평생을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고 무던하게 살아준 아내가 갑자기 보고 싶은 모양이다.

“안식구는 저녁도 잘 먹고 옆에서 같이 잤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움직이질 않는 거여. 흔들어 보니 저 세상사람이 된 거여. 참으로 허탈하게 갔어. 마누라가 죽는 것도 모르고 난 잠을 잤으니 참...”

김 할아버지는 하지만 이젠 “마누라처럼 가는 게 신선놀음”이라며 “이제 해보고 싶은 것도 없고 가만히 살다가 자다가 가는 게 소망”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녀들이 효자효부라며 자랑을 잊지 않는다.

둘째 아들 관진씨, 벌곡-대전 출퇴근하며 아버지 모셔온 효자

“지금 부모 안 보려고 나쁜 짓 하는 놈들이 많은 것 같어. 나이 먹었다고 부모를 양로원에 버리고 말이여. 하늘에서 벼락을 친다면 그러지 않을 텐데... 우리 자식들은 효부 효자여. 이만하면 만족해야지.” 

   
둘째 아들 관진씨와 집 앞에서... 오는 13일 이 집에서 100세 맞이 동네 잔치가 벌어진다. 

둘째 아들 관진 씨는 대전에서 버스기사를 하다가 지난해 정년을 맞아 지금은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직업이 돼버렸다. 대전의 직장에 다닐 때도 아버지가 계신 벌곡에서 출퇴근하며 아버지를 모셨다. 얼마 전엔 집도 49평의 넓직한 한옥으로 새로 지었다. 할아버지가 효자라고 자랑할 만하다.

"우선 아버지가 건강하시니까 무엇보다 좋고요, 모시는데 어려움도 없습니다. 아버지가 몸관리는 물론 청소와 농사 등 당신의 일은 모든 것을 알아서 하시니까  저는 별로 하는 일이 없어요. 단지 연세가 있으시니까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수는 없지요. 아버님이 지금처럼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는 바람 뿐입니다.

관진 씨는 아버지의 100세 생일을 맞아 오는 13일 벌곡면 도산리 자택에서 동네잔치를 벌일 예정이다. 자녀들은 물론 동네 어른들을 모시고 백수를 넘어 한 세기를 살아오신 아버님의 일생을 축하하고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 깊은 자리를 만들겠다고 여러가지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기자에게 그 날 꼭 와서 축하해 달라고 초청의 말도 잊지 않았다.

김관진 씨 연락처:010-2498-3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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