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임근수 전 서주우유 공장장=친환경 카톤팩 처음 도입

친환경 카톤팩 처음 도입 우유 품질과 포장 기술 높인 선구자

“이렇게 해서 요렇게 마시죠. 서주우유는 정말 진하고 고소합니다!”

중년층 이상이면 지난 1970년대 말, 당시 최고의 MC커플 임성훈, 최미나가 TV에 나와 우유팩을 들고 했던 이런 내용의 광고 카피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지금이야 유제품의 대부분이 천염펄프로 만든 카톤팩(Carton Pack)에 담겨 판매되고 있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우유병이나 폴리비닐을 사용했다. 그래서 국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서구형 카톤팩을 서주우유가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판매하면서 손쉽게 개봉해 먹는 방법까지 알려주었던 것이다.

이렇게 서구형 카톤팩을 국내 처음으로 도입해 우리나라 우유의 품질은 물론 포장 기술을 한 단계 높여주었던 장본인이 대전의 두부전문점 사장으로 변신해 있다. 대전시 중구 안영동 장수마을 입구에서 ‘장수 두부촌 장어구이’를 경영하고 있는 임근수(63) 사장.

   
카톤팩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해 우리나라 우유품질과 포장기술을 발전시킨 임근수 전 서주우유 공장장 겸 상무이사.
그는 지금은 없어졌지만 서주우유에서 잔뼈가 굵은 서주우유의 산증인이자 우리나라 유제품 발전의 선구자이다. 지난 74년 생산과장으로 서주우유에 입사해 98년 문을 닫을 때 공장장 겸 상무이사로 있었으니 근 4반세기를 유제품 발전에 바쳐온 인물이다. 그렇지만 서주우유가 정치바람에 휩쓸려 불가피하게 문을 닫는 상황을 맞으며 시련과 좌절도 많았다.

“제 인생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누구에게 자랑할 만한 것도 별로 없습니다. 아직도 꿈을 꾸면 충북 청원에 우유공장을 짓고 전북 김제에 아이스크림 공장을 지을 때 현장에서 모기장을 쳐 놓고 밤새워 일하던 모습이 나타나곤 합니다.”

임근수 사장은 대전시 중구 사정동이 고향이다. 유천초와 한밭중, 보문고를 거쳐 충남대 식품공학과를 졸업했다. 학력만 보면 순탄하게 자라온 것으로 보이지만 농사를 짓던 넉넉하지 못한 가정의 4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가정살림까지 돌보며 성장해야 했으니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실업상태에 있을 때는 유성 등 사방공사 현장에 나가 일을 하며 받은 밀가루로 식구들의 끼니를 때워주느라 고교 진학도 한 해 늦춰야 했다.

이같은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충남대 식품공학과를 다니던 청년 임근수는 당장 집안살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졸업도 하기 전 부터 직장 잡는 것이 급했다. 그래서 4학년 말기(73년)부터 다닌 첫 직장이 부여에 있는 고려 인삼창이었다. 그렇지만 당시 전매청 산하 공무원 신분으로 받은 월급은 고작 8천원이었다. 이런 박봉으로는 동생들을 가르치지 못하겠다고 판단하고 들어간 곳이 서주우유였다. 

입사 4년만에 공장장 승진하며 서주우유와 함께 한 우유역사의 산증인

“서주우유에 생산과장으로 들어갔습니다. 대학을 갓 졸업한 신입사원으로서는 파격적이었죠. 첫 월급이 4만 5천원이었으니 공무원 월급보다 훨씬 많았고 한창 자라나는 동생들의 뒷바라지도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당시로선 열악했지만 발전가능성이 있는 우유산업에 헌신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판단도 섰고요.”

서주우유에 입사한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다. 차장에 이어 부장을 거쳐 입사한지 4년만에 이사 겸 공장장으로 승진해 우유생산을 총괄했다. 공장장으로 승진하자마자 카톤팩을 도입해 우리나라 우유역사를 새롭게 만드는 쾌거를 이룩하기도 했다. 이 때가 그의 인생에서 가장 전성기였다.

그러나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들어서면서 서주우유는 시련기를 맞는다. 대주주였던 윤석민 전 국민당 부총재가 전 정권과 마찰을 빚으면서 정치적인 압박을 받기 시작한 것. 은행대출금 상환압박을 받으면서 자금사정이 나빠졌고 이후 98년 공식적으로 문을 닫기까지 10년 이상을 법정관리상태에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임 상무이사는 어떻게든 정상화시키려고 안간힘을 써보았지만 실패하고 부도를 맞고 말았다. 그의 나이 49세 때의 일이다.

   
서주우유가 문을 닫은 후 두부전문점을 차려 재기에 성공한 임근수 사장이 두부를 만들 우리 콩을 점검하고 있다.
“참으로 막막했습니다. 그나마 종업원들은 퇴직금이라도 챙겨주었는데 저는 퇴직금도 한 푼 받지 못하고 나와야 했으니 앞으로 살아갈 일이 걱정이 아닐 수 없었죠. 그래서 서울로 올라가 건축업에 손을 대기도 했고 대둔산의 축사를 빌려 토종닭 등을 길러보기도 했지만 사료값에 중간유통마진 등으로 타산이 맞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통마진을 없애고 생산자가 소비까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두유를 만들었던 기술을 바탕으로 두부전문 음식점을 차리게 된다. 두유에 응고제만 넣으면 두부가 된다는 점을 착안해 청주에 두부전문 음식점 ‘만복식당’을 개업하게 된 것. 우리 콩을 사다가 두부를 만들어 조리하는 과정이 위생적이고 맛도 좋아 손님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서 고향에 홀로 계신 아버지를 모시는 것이 문제였다. 장남인 그가 고향인 대전으로 돌아오게 된 이유였다.

서주우유 부도 후 시련 딛고 두부전문 식당 차려 재기 성공

임 사장은 중구 안영동 장수마을 입구에 땅을 사고 건물을 짓기 시작했다. 가진 돈은 없었지만 그동안 정직하게 살아온 신용을 인정해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이 컸다. 특히 임 사장이 장남으로 뒷바라지 해준 동생들이 적극적으로 나섰다. 키워주고 가르쳐 준 큰 형님에 대한 보은의 마음이 작용했으리라.

그는 지금 4층 건물 중 4층에서 살림을 하고 아래층에선 ‘장수 두부촌 장어구이’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콩으로 직접 만든 두부를 중심으로 ‘두부버섯전골’ ‘두부 보쌈’ 등 매뉴를 개발해 손님상에 올리고 있다. 장어구이는 지인의 협조를 얻어 함께 매뉴로 내놓고 있다. 임 사장은 손님들에게 올리는 음식마련을 위해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주방에서 두부를 만들고 육수를 조제하는 일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래서 60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불구 하루도 쉬지 못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는 아직도 자전거 패달을 계속 밟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안 밟으면 쓰러지기 때문이죠. 그동안 이렇게 해서 건물을 짓기 위해 동생들이나 지인들이 도와준 돈은 거의 갚았습니다. 또한 실업자가 된 지인들에게 두부제조과정 등 음식 만드는 비법을 가르쳐 창업해 성공한 사람도 많습니다.”

“불평 없이 시련 함께 해준 부인에게 고마움 느껴”

그는 그동안 굴곡의 삶을 살아오면서 불평 한마디 없이 고락을 함께해온 부인에게 가장 미안하다고 한다. 부인 곽노순(56) 여사와는 서주우유에 입사하던 이듬해 중매로 만나 결혼했다. 어려운 가정을 이끌며 부모님은 물론 시동생들까지 뒷바라지 해야하는 장남의 아내이자 맏며느리로서, 두 아이를 길러야 하는 엄마로서, 그리고 요즘은 음식점의 여주인으로서 부인은 헌신적이라면서 고마움을 표시했다.

   
임 사장은 부인 곽노순 여사가 없었다면 시련 극복이 어려웠을 것이라며 부인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 부인과 함께 고향인 안영동에서 경영하는 두부전문점 '장수두부촌 장어구이' 앞에서 포즈를 취해봤다.

지금도 85세의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는 부인 곽 여사는 지난 2008년 뿌리공원 축제 때 대전시로 부터 효부상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며느리로 주변의 평이 자자하다. 이같은 부인의 도움으로 동생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고 1남1녀의 아이들도 잘 자라 자립했다. 아들은 고려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엔지니어링 회사의 토목설계사로 일을 하고 있고, 딸은 숙명여대를 나와 서울대 의대 안과의사로 있는 남편과 단란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있다.

“그동안 시련도 있었지만 동생들도 자리를 잡았고 아이들도 손자 손녀를 낳고 잘 살고 있으니 큰 아쉬움은 없습니다. 서주우유가 잘 됐으면 대표이사까지는 무난했다는 생각도 해보지만 이제는 음식점이 그런대로 잘 되고 있어 잊으려고 합니다. 인생을 되돌아 보면서 어려움이 닦쳐도 간절하면 이뤄진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하면 남에게 폐는 끼치지 않고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임 사장은 그동안의 인생역정을 회고하며 어려움에 처한 젊은이들에게 충언도 잊지 않았다. 옆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을 지켜본 부인 곽노순 여사는 “우리 남편은 본인이 실패한 인생이라고 얘기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유업계의 선구자라는 자부심을 안고 살아가고 있다”며 “지금도 서주우유의 옛날 직원들이 인생선배로 존경하는 것을 보며 실패한 인생이 아니라 성공한 인생이라고 평가하고 싶다”고 말한다. 인생의 고비고비를 함께 화합으로 극복해가며 살아온 임 사장 부부를 보면서 부창부수(夫唱婦隨)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임근수 사장 연락처:042-586-5988. 016-247-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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