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사진 속 아이, 40 년만에 작가 찾아오다

   
40년 만에 만난 사진 속 소달구지를 몰고 있는 아이 이영천씨(왼쪽)와 사진 작가 신건이 선생.(이 사진은 전시회를 찾은 전재홍 전 조선일보 사진부 기자가 촬영해주었다)
“선생님! 너무 반갑습니다. 제가 사진 속에 아이입니다. 살다보니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저는 그날 상황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꼭 40년 만이다. 사진 속 주인공과 작가는 오랜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고 얼싸안았다. 마치 엊그저께 만났던 사람마냥 친근감이 넘쳤다. 카메라 앵글을 매개로 피사체와 작가로서 맺었던 인연이 40년 만에 다시 부활했다.

사진 작가 신건이(70) 선생과 이영천씨(52).
13일 신선생의 ‘사진 인생 60년’ 전시회가 열리는 예향 갤러리에서 ‘의미 있는 만남’이 있었다. 힘들었던 삶에 대한 기억이 남아있던 70년대 초반 30대 젊은 사진작가 신건이가 찍었던 사진 속 아이가 중년이 되어 나타났다. 그 연결고리는 ‘디트뉴스24’였다.

“꼭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제가 이 사진을 볼 때마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갑니다. 정말 우연한 기회에 찍혔던 제 얼굴은 시간을 정지시켰고 항상 추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 때 그사람,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들은 이제 중년이 되었다.
달구지를 끌고 있는 암소와 고삐를 잡은 소년, 그리고 그 위에 타고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들과 어미를 따르는 송아지. 70년대 생활상을 이보다 더 이상 표현할 수는 없었다.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 소를 몰고 가는 초동이 중년으로 변신, 멈춰진 시간의 흔적을 찾기 위해 전시장에 들어왔다.

“그 때가 1970년대 초였을 겁니다. 초등학교 6학년, 12살 때 였죠. 지금 충남 계룡시 엄사리 동부 농협 앞 쪽에서 신도안으로 닭 사료를 사러가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골목대장을 했죠. 특히 소를 잘 다뤄 가끔 친척 동생과 동네 아이들을 달구지에 태우고 다녔습니다. 이날도 달구지를 몰고 가는데 누가 카메라를 가지고 달려오는 겁니다. 제가 ‘사진 찍는다, 사진 찍어, 웃어라’하는 순간이 카메라에 잡힌 겁니다.”

신건이 선생의 이 작품은 같은 해 충남 도전 특선의 영예를 안았다. 사진 속 주인공 이씨는 이웃집 누나가 “네 사진이 도청에 전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한번 본 후로는 잊고 지냈다. 다시 사진을 만나게 한 건 지난해 제주도 여행이었다.

“초등동창 부부동반 여행이었습니다. 연대별로 시대상을 정리해놓은 테마파크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70년대 방에 바로 저 사진이 ‘소달구지를 타고 가는 아이들’이라는 제목으로 큼지막하게 걸려있었어요. 박수를 치고 난리가 났죠. 제가 그걸 핸드 폰으로 찍어서 자랑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신건이 선생의 전시회 기사가 ‘디트뉴스24’에 실리고 대표 사진으로 바로 문제의 그 작품이 올라갔다. 이를 대전시청에 근무하는 선배가 보고 이씨에게 알려주어 40년 만에 극적인 만남이 성사됐다.

“지난 해 제주도에서 찍은 그 사진을 명절날 달구지를 탔던 동생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모두들 좋아하고 한동안 옛 생각에 잠기더군요. 택시 기사를 하는 후배만 옆집에 살고 있고 나머지는 전부 객지에 나가있습니다.”
   
신건이 선생이 선물한 사진을 보면서 환담을 나누고 있는 두 사람.
이씨는 사진 속 아이들의 근황을 한사람씩 설명했다. 현대자동차, 대우조선, 수퍼 마켓, 핸드 폰 제작회사 등 직업도 다양했다. 매년 명절 전날 모임을 하고 있어 올해 추석은 ‘40년 만에 만남’을 화제로 긴 추억에 잠길 것으로 보인다.

신건이 선생은 “너무 반가웠다”며 “신도안에서 찍은 빗자루를 팔고 있는 자매와 공주 시장 안에서 촬영한 모자 수선 할아버지 앞에 발을 들고 있는 소년은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신선생은 이날 사진 속 주인공 이영천씨에게 그날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있는 사진을 선물했다. 이씨는 즐거움을 감추지 않으면서 “가보로 간직하겠다”고 화답했다. 이씨는 계룡시 엄사리 동네 이장을 10여년 맡았다가 지난 해 폭설로 비닐하우스가 무너지면서 농사를 포기하고 건설업을 하고 있다.

헤어지지 않는 만남이 없다지만 지나친 것도 때로는 다시 만나는 수도 있다. 이날 두 사람의 조우는 인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값진 교훈을 던져주었다. 잠시 스쳐지나가더라도 좋은 인연을 만들어야 하는 게 세상의 이치였다.(이영천씨 연락처)011-178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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