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나비’되어 대전 온 방주연 ‘당신의 마음’은?

   
가수 방주연, 그녀는 청자모임 참석을 위해 대전을 찾았다.

설레임.
바로 그것이었다.

까까머리 고등학생 때 브라운관을 통해서만 보았던 여가수. ‘어쩌면 저렇게 고울 수가 있을까’하는 설레인 잔상이 아직도 남아있는 가수.

방주연.
그녀를 만나러가는 길은 70년대 그 설레임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당신의 마음’이 ‘꽃과 나비’가 되어 대전을 찾았다. 7080세대들이 지독한 되새김병 앓이를 하는 ‘청자모임’(회장 유하용 파랑새 기획 대표)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서 날아왔다. 팬들에게 ‘그대 변치않는다면’이라는 조건절을 제시하면서 ‘나도 변치 않는다’는 걸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30일 저녁 7시5분 전, 대전시 중구 대흥동 ‘내집 식당’.
시골 토담집 냄새가 물씬 풍기는 그 골방에는 유하용 회장과 가수 방주연씨가 기다리고 있었다. 세 번째 도착한 필자에게 준 명함에는 ‘한국파동의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과 ‘가수’가 함께 쓰여져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은 ‘박사’ 방주연이 아닌 ‘가수’, 우리 모두를 70년대로 되돌려 주는, 라는 직함만 필요할 뿐이었다.

“방주연 교수님입니다. 왜 잘 알죠. 김대표, ‘당신의 마음’, ‘자주색 가방’ 등 히트곡이 많이 있죠. 방교수님 동생하고 나하고는 절친한 친구죠.”

유회장은 기자가 대표를 그만두었는데도 계속 ‘대표’라고 불렀다. ‘당신의 마음’을 좋아한다는 말 끝에 흐밍으로 흥얼 거렸다. 가사를 다 외우는 걸 보고 아주 신기해했다. 청소년기에 외운 건 평생 잊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유하룡 회장, "학사주점 청자가 더 큰 모임이 되도록 노력할 터..."

하나 둘 회원들이 들어왔다. 송덕헌 총무, 문옥배, 가수 엄지혜, 이기호, 조성남, 조병렬, 조성칠 등 청자회원들이 자리를 채웠다. 내집 특유의 두부 두루치기와 파전, 올갱이 국이 나오고 증약 막걸 리가 한 순배 돌아갔다. 이 때 종업원 엄춘란씨가 사인을 요청했다. ‘노래 한곡’이 사인 값이었다. “너무 좋아했다”는 말과 함께 ‘당신의 마음’을 원조 앞에서 불렀다. 엄씨에게는 평생 잊지 못하면서 두고 두고 자랑할 거리가 되리라.

   
청자를 기억하는 회원들이 모인 자리는 항상 즐거운 자리가 된다.

회장 인사 순서가 왔다.
“4번째 청자 모임입니다. 이 모임이 많은 젊은 이들에게 전파되고 살아있는 날까지 대전을 사랑하는 그런 분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학사주점 청자를 사랑하는 영원한 모임이 되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번 오직 이 모임 참석을 위해 서울에서 와주신 방교수님께 감사드립니다.”

가수 방주연씨가 답할 차례다.
“아시다시피 70년대에 데뷔했습니다. 1968년, 여고시절에 글을 쓰고 싶어 ‘꽃과 나비’라는 가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후 문화공보부 전국노래자랑에서 가창상을 받고 가수로 출발하였습니다. 이 모임은 제가 데뷔하던 70년대와 비슷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어 반가워요. 여고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입니다. 이 모임이 더 커져서 전국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러면서 유사장을 쳐다보면서 “이 사람한테 씹히면 피곤하죠, 어느 날 갑자기 없어져 나중에 보니 대전으로 귀향했더군요, 악어 이빨이죠”라며 조크를 던져 한바탕 웃음 꽃을 만들어 냈다.

   
원조 앞에서 부르는 노래, 70년대 그녀는 지금의 '소녀시대'정도 되었을까.

유하용 회장은 아시다시피 70년대 서울 영등포의 유명한 나이트 클럽 ‘나성’을 이끄는 명 사회자였다. 그 때만해도 공중파에서 얼굴을 알리고 수입은 밤업소에서 올리던 시절이었다. ‘금마차’와 쌍벽을 이루던 업소를 총괄하니 요즘의 가요프로그램 PD 이상의 권세(?)를 누렸다. 훗날 드라마 ‘파랑새는 있다’의 소재가 되었고 샹글리아 나이트 클럽 사회자 한진희의 실제 모델이기도 했다.

이 즈음, 이강철, 민장홍, 손중성, 원성연, 전창곤, 한순종 등 회원들이 속속 더 들어왔다. 방주연씨의 히트곡 ‘당신의 마음’을 합창하고 ‘그대변치 않는다면’, ‘자주색 가방’ 등을 증약 막걸리 힘으로 목청껏 불렀다.

“‘꽃과 나비’가 발표한 지 얼마되지 않아 금지곡이 되었어요. 한창 반응이 좋았는데... 가사에 ‘그대는 나를 지켜주는 태양의 사나이’라는 구절이 있어요. 그 ‘태양의 사나이’가 문제가 되었죠. 지금 생각하면 우습죠. 태양은 곧 북한 김일성을 연상케 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순수한 가사에 이념을 덧칠하는 능력은 올림픽 금메달 감이다. 그녀는 자신의 노래에 숨어있는 뒷 얘기를 계속 했다.

"태양의 사나이 때문에 금지곡 된 '꽃과 나비' 애착 커"

“데뷔곡이 금지되자 바로 후속 곡을 준비했어요. ‘그대 변치 않는다면’인데 하루 만에 작사 작곡을 했죠. 태양의 사나이 때문에 피해를 봐 이번에는 ‘나는 그대위해 조용히 살리라’라는 문장을 의도적으로 넣었지요.”

   

그런데 그게 시대상과 맞물려 대박이 터졌다. 고무신 거꾸로 신는다는 입대 장병의 걱정과 살기위해 조국을 떠나는 이민 가족들의 심금을 울렸다. 방송국에서도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꽃과 나비’가 금지된데 따른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그대 떠난다 해도 변치 않는다면 나도 그대위해 조용히 살리라, 언제고 언제라도 다시 또 만나기를 나는 빌겠어요 영원한 사랑위해...’

이 곡은 최초로 트롯을 기타를 치며 부르는 곡이라는 이정표를 남기기도 했다. 그녀를 최고의 가수로 발돋움하게 만든 ‘당신의 마음’에도 사연이 많았다. 서대문 교도소 사형수 담당 교도관인 김지평씨가 노래 말을 만들었다. 상담역을 담당하던 김씨는 사형수들 대부분이 ‘욱’하는 심정을 참지 못해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분들을 생각하면서 만들었다.

‘...바닷가 모래밭에 손가락으로...당신을 그립니다...코와 입 그리고 눈과 귀 입가에 미소까지 그렸지만은...마지막 한 가지 못 그린 것은 지금도 알 수없는 당신의 마음’

김지평씨는 이곡의 대히트로 교도관 생활을 접고 작사가로 변신을 하게 되었다.

고 이주일씨, "다음은 방주연의 자*색 가방입니다", 그리고 경찰서행

이강철 서구청장 예비후보가 건배를 제의했다. 구호는 ‘이방 저방 주연은 방주연’이었다. 막걸리 잔 높이 들고 힘껏 외쳤다. 감수성이 예민했던 청소년기 대중스타를 앞에 둔 건배는 회원 모두가 각각 다른 기억을 되살렸으리라.

   
약 3시간에 걸친 술자리는 오히려 짧았다. 정말 즐거워하는 모습이었다. ‘자주색 가방’을 극장 쇼에서 소개하면서 고 이주일 선생이 ‘자*색 가방’으로 불러 임검석에 자리한 경찰에 연행된 사건이라든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는 대전 한밭식당에 얽힌 얘기 등등...

이제 서울로 가야할 시간이 왔다.

“제가 이런 모임에 온 건 처음입니다. 그동안 참여할 틈도 없었지만 서울 ‘청진동 해장국 추억의 모임’처럼 되기를 바랍니다. 언제든지 불러주시면 오겠습니다.”

추억이 묻어나는 식당, 내 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날 가수 방주연을 통해 추억을 과식했다. ‘벗들이 구름처럼 모여 술 한잔 마시는 내집’은 술과 추억과 우정이 뒤섞인 비빔밥을 주었다. ‘가진 것이 없다 해도 순정은 있어 나와 너는 너와 나는 꽃과 나비’라는 노래말처럼 가수 방주연은 대전의 꽃을 찾고 10시행 KTX로 서울로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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