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조종국 대전예총명예회장...효율강조하는 세종 수정안 유감

   
조종국 대전예총 명예회장, 서예가.
얼마 전 한나라당 정 몽준 대표가 중국고사 미생지신(尾生之信)을 빌어 세종 시 정부 부처이전의 백지화를 주장한 적이 있다. 미생은 폭우가 내리는데 다리 밑에서 애인과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려다 불어난 강물을 피하지 않아 익사한 고지식한 총각이다.

거대 여당의 당대표께서 국법으로 정한 국가정책의 공적인 정책을 사랑에 눈먼 젊은이의 사사로운 단심쯤으로 여기시는 것은 크게 우려되는 일이다. 더구나 그 분은 한국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글로벌기업의 경영자로서, 사회적 신뢰가 국가경쟁력의 디딤돌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실 터인데 정치적 계략에 빠진 주장을 하시니 더욱 걱정스럽다.

요즘 들어 사회적 신뢰의 중요성이 많이 강조되고 있다. 사회적 신뢰는 사회의 중요자산이요 자본이다. 삼성경제연구소(2009년)가 한국의 사회적 자본은 OECD 국가 중에서 하위권으로, 이러한 낮은 신뢰가 경제발전을 저해하고 각종 사회문제와 분열을 야기한다는 보고서를 제출한 바 있다. 만약 정부가 법으로 정한 국민과의 약속을 무너뜨린다면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얼마나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불해야 할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지난 정부에서 당장은 비효율적으로 보이더라도 장기적인 국가발전의 관점에서 국토의 균형발전을 최우선의 정책기준으로 정한 바가 있다. 그리고 국민과 국회가 그 정책에 동의하여 정부 부처를 이전하는 세종시법을 통과시켰던 것이다. 당시 한나라당이 반대를 했더라면 그나마 정상을 참작할 수도 있겠으나 새 정부가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세종 시 건설을 예정대로 추진하겠다고 했었다.
이제 와서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4대강 사업은 강행하면서 도리어 국가발전의 백년대계인 세종 시 건설을 무산시키려는 모순된 태도는 무엇인가. 이러다가 다음 정부가 들어서서 4대강 사업을 백지화하자고 하면 그땐 뭐라고 할 것인가? 앞으로 정부는 계획만 세우다가 예산과 시간만 소모하겠다는 것인가?

세종 시에 정부 부처이전은 단순히 신뢰와 명분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 서울은 막강한 자본과 재화와 인재를 독점하고 있다. 과거 6~70년대에는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이러한 독점적 경제력이 국제경쟁력을 지녔었다. 그러나 인터넷과 스마트폰이 보편화된 21세기 네트워크 정보화 시대인 지금, 수도권 과밀화는 오히려 국가발전을 발목잡고 있다. 수도권내의 물류비용은 창고료, 인건비, 교통정체로 인해 지방간 물류비용보다 적지 않다. 한국교통연구원은 2007년 서울의 과밀화와 환경오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한해 10조원을 넘는다고 발표했다. 수도권은 2005년에 이미 노동생산성과 토지생산성이 전국평균에 미달하였고 인구 1인당 지역총생산액 역시 전국 평균이하로 떨어졌다. 또한 수도권 과밀화에 따른 부동산 불안정과 교육 불균형은 심각한 출산율 저하의 한 원인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외국의 한 여행정보지가 세계 최악의 도시 3위로 서울을 선정했겠는가. 서울은 무질서한 도로, 수용소 같은 아파트, 끔찍한 대기오염, 영혼도 마음도 없이 지겹게 단조로운 곳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에도 서울에 살아야 하고,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 이유는 서울에 모든 것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도권 과밀화를 해결하기 위해 헌법정신에 부합하는 가장 이상적인 원칙이 국토의 균형발전정책이었고,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행정중심 복합도시인 세종시의 건설이었다. 즉 정부부처의 이전으로 민간의 초기부담을 최소화하면서 기업도시, 과학도시, 교육도시와 자연스럽게 결합시켜 전 국토의 고른 발전, 중부권의 허브를 만들고자 하였다. 이런 원대한 계획에 국민이 희망을 걸었고 국가경쟁력의 주춧돌을 세우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효율성의 잣대만을 내세워 느닷없이 세종 시 건설 원안을 백지화하는 것은 국민들로 하여금 정부가 지극히 사사롭고 불순한 저의를 숨기고 있다는 의심을 들게 한다. 정부 부처를 옮기는 것은 당연히 돈이 드는 일이다. 그것을 알고 지난 정부에서도 국민적 합의를 통해 세종 시 건설을 결정했던 것은 그러한 초기 비용을 넘어서는 국가적 이익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더구나 원안 백지화는 전국 혁신도시의 궤멸과 몇몇 대기업에 대한 불법 특혜시비를 낳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극단적으로 치닫는 정책신뢰의 실종사태를 방지하고 장기적인 전망위에서 국가발전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세종 시 원안추진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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