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인물]조장원 씨케이 상무...좋은 기업 만들어 장학사업하고 싶어

   
씨케이 조장원 상무는 "사업 확장 후 장학 사업을 꼭 해보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차세대를 기획하면서 독자 추천 제도를 마련했다. 선정 과정에서 부터 디트뉴스24 독자들을 참여시킨다는 게 기획 의도였다. 또, 대상 인물을 뽑는데 공정성을 유지하고 객관화를 통해 기사의 공감대를 형성한다는 것도 부수적인 이유가 되었다.

많은 분들이 의견을 제시해주었다. 내부 의견과 일치하는 추천 인물은 당연히 확정되었지만 아주 주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본 인물은 배제했다. 그러다보니 ‘독자들의 목소리 수용’이라는 당초 취지에 공감하는 인물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고민이 깊어가던 중 박세규 서구문화원장이 주식회사 ‘씨 케이’ 총괄상무인 조장원씨(39)를 추천한 글이 눈에 띄었다.

‘...충남대학교를 거쳐 해외장학생으로 선발, 도미하여 루즈벨트 경영대학원에서 석사과정을 수료하는 등 일찍이 국가의 동량으로 성장하기 위한 기반과 실력을...삼성전자 해외마케팅 부서 파트장을 거치면서 글로벌 시장 개척을 담당하는 등...’

충남대를 졸업하고 삼성전자에서 해외 영업을 담당했다는 추천사가 선정위원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리고 부친인 서예가 남계 조종국 선생의 부름을 받고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사실도 주목이 되었다. 몇 차례 전화를 통해 들어본 목소리는 힘보다는 세련되어 있었다. 그에 대한 정보는 백지상태였다. 이력서와 추천서만 믿고, 그리고 아버지의 명성만 보고 만나기로 했다. 그게 6월24일 이었다.

종합 광고 전문 회사인 (주) 씨케이는 대전시 중구 오류동 센트리아 오피스텔 19층에 자리한 자그마한 회사였다. 연매출 15억원 규모로 옥외광고 중심으로 영업을 하고 있었다. 작은 만큼 조상무가 앞으로 해야 할 일도 상대적으로 많았다. 그에게는 두 가지 과제가 있었다. 하나는 회사를 규모 있게 키우는 일과 아버지 그늘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그건 곧 자립이고 성장이었기 때문이다.

충남대 출신, 삼성전자 근무 중 부친부름으로 낙향

“전에 있던 직장에서 홍보를 담당한 적이 있습니다. 요즘 보면 CEO 자체가 회사의 브랜드 가치를 가지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그런 작업을 주로 했었고 제 나름대로 6년 정도 경험을 가졌죠.”

첫 인상은 깔끔함이었다. 잘 정돈된 머리에다 함부로 움직이지 않는 행동이며 찬찬한 말씨는 ‘예의 바른 젊은 이’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귀하에 대해 잘 모르겠다”는 필자의 말에 스스로를 소개했다. 이력서에 적힌대로 모 통신회사에 근무할 적에 지금은 미국으로 도피 중이지만 가수 유승준의 광고 카피 ‘따라 올테면 따라와 봐’를 시작으로 초고속 인터넷이 나오기 전 ‘모뎀’ 세대까지 경력을 대략적으로 얘기했다.

   
직원들과 미팅을 갖고 있는 조상무.

인터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다. 그걸 알려면 경력을 먼저 체크해야 하고 그런 다음 자라온 환경, 그리고 마주앉아서 인상까지 보면 비슷하게는 읽어낸다. 어쩌면 이게 오랜 기자 생활에서 나온 노하우다. 어떤 사람이든 초면에 만나 몇 마디 말을 건네 보고 얼굴을 주~욱 훑어보면 성격 파악이 된다. 조상무도 그랬다.

“저희 회사는 1996년에 창립이 되었습니다. 옥외광고를 중심으로 하는 종합 광고회사입니다. 지난 해 매출이 약 15억원 정도였는데 올해에는 사업 모델도 새롭게 만들고 수익창출을 위해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 좋은 결과가 있을 걸로 봅니다. 그래서 ‘후퇴 없이 전진만 있는 기업’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후퇴없이 전진만 하는 기업 만들고 싶어

조상무는 충남대 무역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재학 중 마침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세계화’를 강조했다. 무역학과를 선택한 것도 세계를 상대로 업무를 할 수 있다는 학과 특성이 크게 작용했다. 학문 자체에 매력을 느꼈고 대통령이 또한 국제화, 세계화를 강조해 1994년에 미국 워싱톤 대학에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이를 계기로 4년 후에는 루즈벨트 경영대학원에서 MBA 과정을 마치게 된다.

“제 나름대로 훌륭한 부모님을 만나게 되어 그 시기에 언어 연수가 가능했어요. 대학 3,4학년 때 ‘와~ 한국 말고도 너무나 큰 세계가 있구나’하고 깨닫게 되었습니다. 언어 연수 후 세계에 대한 동경심이 더 커지고 대학원을 외국에서 다녀야겠다는 생각을 했지요. 이번에는 내 스스로 해내자는 결심도 섰고요. 마침 지도교수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MBA과정을 충남대 장학금으로 다녀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는 아버지 조종국 전 대전시의장의 그늘을 벗어나는 게 곧 성장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아버지인 조종국 전 대전시의장이 한동안 지켜보았다. 행여 말에 실수가 있으면 교정해주고 필자가 이해를 못하는 부분이 있으면 보충 설명을 해주었다. 아직까지는 ‘물가에 보낸 어린 아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사실 버팀목이 되는 아버지가 반드시 아들의 성장에 득(得)만 되는 건 아니다. 그걸 유용하게 활용(?)하면 당연히 득이 되지만 어려움을 모르고 자라는 과정이 사업적인 판단에 결정적인 해악이 되기도 한다. 그게 2세 교육을 철저히, 엄격하게 해야 하는 이유이다.

아버님 그늘 벗어나는 일이 곧 사회적인 성장

“서울에 있다가 내려와 보니 아버님의 그늘이라는 게 너무 크더라고요. 제가 어디 가서 뭘 하더라도 그 그늘이 저를 받치는 큰 토대가 되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그걸 부정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아버님이 만들어 놓은 역사였고 그 역사를 가지고 더 좋은 나의 역사를 쓰는 게 나의 할 일이라고 봅니다.”

이 대목에서 조종국회장이 거들었다.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바로 아들에 대한 우려였다.

“지금까지 말을 거역한 일도 없고...너무 여려요. 사실은 좀 와일드하고 그래야 하는데 그게 걱정이에요. 사회생활은 너무 여리니까. 좀 그래요.”

그러면서 조 회장은 어떤 가치라는 건 양의 가치가 아니기 때문에 현재 주어진 여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럴 때 지역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여건도 마련되고 정도에 벗어나는 일도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부모의 심정이 바로 인터뷰를 지켜보게 만들고 필자에게 “조카처럼 길잡이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게 만들었다. ‘충남대 동문’이라는 끌 턱을 내세워 ‘연’(緣)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아버지와의 관계, 사실은 기자와 출입처라는 인연 속에서 맺어진 것이긴 하지만, 그걸 다시한번 되새기는 걸로 마무리했다.

“기업을 하는 기업인으로서 아버님이 만들어 놓은 토대위에서 회사를 알차게 꾸려나가는 게 저의 1차적인 목표입니다. 그 기업의 성장 속에서 제가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럴 때 기업이 저의 활동에 가장 큰 기반이 될 것이고 그 토양도 역시 기업에서 나오지요.”

회사 잘 만들어 장학 사업으로 이윤 환원할 터

기업을 잘 가꿔서 이를 토대로 사회적인 기여를 하고 싶다는 얘기였다. 사회 환원을 하든 봉사활동을 하든, 근간은 자신이 가진 회사가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가 생각하는 작은 꿈은 바로 많은 이윤을 내어서 그 이윤을 장학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 환원하는 것이었다. 소박한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고향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조상무의 고향은 충남 부여읍 정동리이다. 그곳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초등학교 입학 전에 대전으로 왔다. 선화초, 한밭 중, 남대전 고를 졸업하고 충남대 무역학과에 들어갔다. 2녀 1남으로 위, 아래로 누나와 여동생이 있다. 올해 66세가 된 아버지에 대한 어릴 적 기억은 ‘엄하고 뵙기가 힘들었다는 것’이었다.

“새벽같이 나가시고 저녁 늦게 들어오셔서 거의 못 뵈었어요. 일주일에 한두차례 정도 뵜을까. 어머님이 살림을 다하시고 자식들 돌보시고 그러셨죠. 뭐 듣는 걸로는 어머님 속을 좀 썩이셨던 것 같아요. 다만 자식교육은 정말 엄격했어요.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그런 교육을 시켰어요.”

조회장이 다시 설명했다. ‘불언지교’(不言之敎), 즉 말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이 바로 자식을 키우는 방법이었다. 부모가 행동으로 모든 걸 보여주어야만 했다. 그게 최고의 교육이었다. 조회장은 어릴 적 성적 얘기를 하면서 아쉬움이 아직도 남은 듯했다.

   
아들 상현군과 아내와 함께 망중한을 즐기면서 한 컷 '찰칵'

“중학교 때는 공부를 잘했어요. 근데 고등학교 올라가면서 써클 활동, 사진 찍는... 그때부터 성적이 떨어지더라고요...나 원 참”

조회장의 말은 결혼까지 이어졌다.

“미국 갔다와서 다시 유학을 가야하는 그런 시기인데 장가를 가겠다는 거예요. 당초에 내가 경상도 며느리를 얻겠다고 했는데 말이 씨가 되었는지 그 쪽 며느리를 보았네요. 하하하.”

경상도 며느리 얻고 싶다는 아버님 말씀이 씨가 돼

결혼 이야기는 미국 언어연수시절로 거슬려 올라가야 한다. 거기서 만난 친구 중 경상도 친구가 있었다. 두 사람이 너무 잘 맞을 것 같다는 걸 전제로 소개해주었다. 처음에는 ‘그저 그런 여자’로 여겼다. 대개 몇 번 만나고 헤어지는 게 대학생활의 풋사랑 패턴인데 아내는 그렇지 않았다. 소개해준 친구말대로 너무 잘 맞았다. 한 달에 한 두차례 만나다가 ‘아~ 괜찮은 여자’라는 판단이 서면서 만난 지 13개월 만에 결혼했다. 1996년도 6월 9일이었다. 아내 김희진씨는 밀양대를 졸업한 부산 사람이다. 둘 사이에 아들 상현군(10, 글꽃초 3)이 있다.

“결혼하고 바로 미국에 들어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를 하면서 집사람이 내조를 참 많이 해주었습니다. 편하게 공부할 수 있었던 것도 다 덕분이죠. 대학원 과정을 1년 반 만에 졸업을 하게 되었죠. 공부만 해서요.”

열심히 공부를 했다. 통상 2년에 마치는 대학원 과정을 6개월을 단축했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오니 갈 곳이 없었다. 외환위기가 일자리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인턴 사원으로 잠시 가 있기도 하고 이곳 저곳 기웃거리면서 일할 곳을 찾았다. 하지만 퇴출은 있어도 신규 채용은 없었다. 그런데 98년 10월에 하나로 통신에서 공채를 했다. 지원자들이 구름같이 몰렸다. 무려 600대 1이었다. 

   
어린 시절, 그리고 외국 유학 당시 찍은 사진. 거기에는 추억이 묻어 있다.

하나로 통신 입사 후 그는 몇 차례 직장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옮겼다. 그 가운데 삼성전자 근무 당시를 매우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삼성이라는 브랜드 하나만 가지고 우즈베키스탄과 우크라이나 등지에 영업 활동에 나간 기억을 되살렸다. 여행자 보험도 들어주지 않는 오지를 가면서 광케이블 사업권을 따냈고 3년 동안 1조가 넘는 프로젝트도 성공시켰다.

과감한 추진력, 아버님으로부터 배워야

- 조상무는 스스로 성격이 어떠하다고 봅니까.
“사회생활을 시작할 때는 상당히 급했습니다. 어떤 오더를 받으면 상사께서 요구한 시간보다 더 빨리 레포트를 제출하곤 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점수를 많이 따게 됩디다.”

- 하나로 통신과 삼성전자의 기업 문화는 차이점이 있었나요.
“크게 있었습니다. 하나로는 개인의 역량이나 능력을 중시한 반면 삼성은 소통하고 협력하고 설득하는 기업문화를 가졌습니다. 지금 성격이 좀 더 차분하고 분석적으로 된 건 삼성 근무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 포부가 있다면.
“5년안에 20억 규모의 회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선순환구조로 돌아가는 기업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걸 통해서 직원 복지 뿐 만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인재도 채용하고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 아버님께 배우고 싶은 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불굴의 의지입니다. 또, 그 의지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밀어 부치시는 그런 캐릭터를 배우고 싶습니다. 불도저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습니다. 제 입장이었으면 한발 물러서거나 포기를 했을 걸 아버님은 밀어 부쳐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냅니다. 그게 부럽습니다.”

조상무와 대화는 이제 막 1시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인터뷰 기사 작성에 반드시 필요한 사진 촬영을 했다. 직원들과 포즈를 취해주는 모습에서 성실함을 읽을 수가 있었다. 아버지와의 사진 촬영에는 쑥스러워하면서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인터뷰는 박세규 원장의 추천사를 인용하면서 마쳐야했다.

‘...가친이신 남계 조종국 선생이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헌샌해왔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봄으로써 불언지교의 엄격한 교훈 속에서 성장한 조상무는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사화 활동의 덕목으로 삼아 사회 공헌의 기회를 살피고 있습니다...’
(연락처) 042-531-9795, 010-4125-8303, 이메일 : tobe@hanafos.com


   
박세규 서구문화원장.
[내가본 조장원] 박세규 대전 서구문화원장

미래에 우리 지역사회를 이끌고 갈 차세대 일꾼을 그려보다 보면 항상 625의 폐허와 보릿고개로 배곯던 시절을 억척스럽게 살아낸 우리 세대를 생각하곤 합니다.분명 다음 세대는 우리가 경험치 못했던 발전된 조국에서 풍요를 만끽하며 우리와 다른 가치관과 삶에 목표를 가지고 빛나는 조국을 만들어 가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금번 디트뉴스의 “대전-충남 차세대 리더” 발굴작업은 우리의 미래를 점쳐보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게 되며, 가능성을 가진 차세대 리더감을 언급함에 있어서도 큰 무게감과 엄숙함마저 느끼게 합니다. 저는 (주)씨케이에 재직중인 조장원 총괄상무를 차세대 리더감으로 추전한 바 있습니다.  

조상무의 부친과는 오랜 세월동안 우정을 같이해온 벗으로서 조상무의 유소년시절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성장하고 발전해 가는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엄격한 가풍속에서 정도의 교육을 받아 왔고 미국 경영대학원 졸업, 국내 굴지의 대기업에서 쌓아온 다양한 사회경험 등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탄탄한 기초를 충실히 다져온 젊은이라고 생각됩니다.

최근 서울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가업인 전문광고업체 (주)씨케이에서 총괄상무로 근무중인 조상무는 부친으로부터 경영자 수업과 함께 이 지역사회에 봉사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중에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패기와 능력을 겸비한 젊은이가 우리 지역에 새로운 주역으로 등장하고 사회활동을 통한 사회공헌을 계획하고 있어서 개인적인 추천을 통해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자 합니다.  

지역사회가 중심이 되어 차세대 리더감인 조상무를 육성, 발전 시킨다면 우리의 미래 또한 준비된 인재와 리더쉽을 통해 한단계 높은 수준의 우리 마을과 선진 대전을 만들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조상무가 초심을 잃지 않고 열심히 노력하여 우리 지역과 시대가 요구하는 성공된 리더로 성장해 나가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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