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촌수필]『전.의경 어머니』들이 나눠 준 떡과 음료수에 들어있는 ‘사랑의 힘’

 비가 장대같이 쏟아지는 18일 오후였다. 비가 거세게 쏟아지면 대개의 사람들은 밖에서 하는 웬만한 일들은 모두 멈추는 법인데, 요즘 시위 현장의 양상은 다르다. 비가와도 우비를 입고 나와 외쳐댄다.

벌써 6일째. 고성능 마이크가 고막을 찢는 가운데 공해의 거리에는 무더위와 싸우는 자식 같은 전․ 의경들이 있다.

이들은 서울의 촛불집회에 장기간 지원근무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숨을 돌릴 겨를 없이 이제는 화물연대파업 사태로 관내 길거리에서 불철주야 고생하고 있다.

◆ 전․ 의경 근무 현장을 그냥 지나치기 못하는 사람들

시민들은 이제 만성이 되었는지 이들이 왜 길거리에서 저 고생을 해야 하는지,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감각한 듯 스쳐 지나친다. 그러나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전. 의경 어머니회』회원들.

18일 오후, 대전 대덕경찰서 ‘전. 의경 어머니회(회장 장경화, 회원 30명)’ 회원들은 전. 의경이 배치된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떡과 음료수, 수박을 나눠주자, 한 의경은 목에 메는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시울만 붉혔다.
   
▲ 18일 비가 억수같이 쏱아지는데도 불구하고 대원들이 배치된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내 자식과 같은 따뜻한 사랑'으로 떡과 음료수를 나눠주는 대덕경찰서 전.의경어머니회 회원들.


그는 이제 막 의경에 입대한 지, 얼마 안 되는 신참 대원이다. 저들을 위문하는 이들을 누구인가? 가정의 부모를 대신해서 저들을 내 자식과 같이 따뜻한 인정으로 위문하는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에 대한 답을 대원들한테서 들었다.

“저 분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분들이에요. 천사가 따로 있나요. 우리들에게는 저 분들이 천사 같은 분들이지요. 대원들이 생일도 매달 챙겨주시고, 김치 담그기 등 음식 만드는데도 도와주시고, 그 정성을 이루 다 말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 떡 한 쪽 입에 넣으면서 '그 따뜻한 사랑'에 목이 메어 눈시울이 붉어지는 대원들


대원들은 대부분 대학교 재학 중에 입대한 20대 초반의 앳된 젊은이들이다.

◆ 인내력에 한계를 느끼는 수모와 인간적인 모멸감

이들은 서울의 촛불 시위현장에서 같은 또래의 대학생들이 “저 냄새나는 것들”이라면서 침을 뱉을 때는 인간적인 모멸감에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고, 심지어 어린애들까지도 어른들이 뱉어내는 쌍소리를 예사 던지고 갈 때는 인내력에 한계를 느꼈던 대원들이다.

전경 아들을 둔 어느 아버지는 집에서 TV를 통해 시위현장 뉴스를 보다 못해 자식이 걱정되어 시위 장소를 직접 찾아 갔다. 그러나 아무 것도 도와 줄 수 없었다. 전경 아버지는 그래서 『촛불의 물결 속에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아들에게』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이렇게 착잡한 심경을 토로했다.


(전략)“광우병사태로 날이 갈수록 시위가 격렬해지고 있는 요즈음 아들은 시위군중의 격랑 속에 고립된 외로운 섬이다. (중략) 그러나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것이 세상의 이치라 시위대에 늘 밀린다.

시위대의 인내는 털끝처럼 가벼운데 내 아들의 강요당한 인내는 태산처럼 무겁다. 그래서 인내는 늘 상대적이다. (중략)

제우스는 사랑하는 딸 아테네에게 천하무적의 방패 ‘이지스’를 만들어 주었다는 데 무력한 나는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해 줄 것이 없다.

그 옛날 군대 간 나를 위해 뒤란 장독대 장독위에 정한수 떠 놓고 삼신 할매 찾으며 하염없이 손을 부비시던 어머니를 흉내 내어 매일 새벽 향을 피우고 108배를 하며 무사안전을 빌며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전경 아버지 . 모닝스타)

나의 아들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힘들다고 하는 서울 종로에서 의경 복무를 마치고 전역한지 몇 해 되지 않는다.

◆ 의경 아버지의 ‘기도하는 마음’

나는 아들이 서울에서 의경으로 복무하는 동안 아들을 염려하면서 쓴 글이 책으로 한권 분량이 넘었다. 아들이 복무하는 동안 출판사에서는 책을 세상에 내놨다. 제목은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책을 펴내어 남들처럼 돈을 벌고자 함이 아니었다. 자비를 들여 아들과 함께 복무하는 전 대원들에게 우편으로 발송했다. 가정에서 ‘자식을 염려하는 부모의 마음’이, 그 ‘기도’가, 또는 ‘이 사회에 던지고 싶은 아버지의 간절한 메시지’가 대원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힘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심정에서다.

밤새워 쓴 글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의경 아버지의 기도』
- 오늘도 순진한 너의 미소 떠올리며  -

오늘도 너의 구김살 없는 밝은 미소 떠올리며
입고 있는 제복에 얼마나 많은 땀방울이 배었을까
안쓰럽게 생각한다.

오늘도 말 없는 너의 조용한 미소 떠올리며
신고 있는 구두의 무게가 얼마나 힘겨웠을까
딱하게 생각한다.

오늘도 작은 어려움조차 표현하지 못하는 너의 굳은 표정 떠올리며
낯선 세상에서 목소리 큰 대상들과 상대하며 얼마나 긴장하고
두려움 가졌을까 가슴 아리게 염려한다.

오늘도 너의 꾸밈없는 천진한 미소 떠올리며
남에게 억울한 말은 듣지 않았는지, 억압당하지는 않았는지
걱정과 근심 속에서 하루를 산다.

오늘도 "아버지 전 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전화 속에서 흘러나오는 이 반가운 너의 말 한 마디가
아비를 안심시키려고 애써 하는 말이 아니라
진정 네가 편한 마음에서 하는 소리인지
아비는 곰곰이 감정해 가며 밤잠을 설친다.

오늘도 너의 감추지 못하는 솔직한 표정 떠올리며
밥은 제때에 먹었는지, 땀에 전 몸 샤워는 했는지,
양말과 런닝은 제 때 빨아 입었는지
이런 소소한 것들까지 염려하고 걱정한다.

오늘도 제복 입고 거리를 나서는 유독 키 큰 너의 모습 떠올리며
이곳 거리를 지나는 의경들의 모습이 마치 내 자식 같아서
몇 번이고 그들을 다시 쳐다보며 너를 그리워한다.

오늘도 너의 시커멓게 그을린 꺼칠한 얼굴 떠올리며
남들은 넘치도록 자유를 만끽하는 이 세상에서
방패 대열과 철망 차량의 비좁은 공간에서 보내야 하는
너의 고단한 하루가 얼마나 지루했을까 상상하며
아비는 오직 자식의 '안전'을 염려한다.

오늘도 소년처럼 순진하고 착하기만 너의 미소 떠올리며
이 세상이 제발 조용하고 평안했으면 하고 간절히 기도한다.

오늘도 아름다움 추구하는 미술 전공 대학생인 너의 진지한
예술세계를 생각하며
뭇 사람들이 험악한 얼굴로 한 군데 모여 거친 목소리
마구 쏟아내지 말았으면 하고 바란다.

제복 입은 네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길거리에서
식판에 먼지와 매연 섞인 밥을 퍼먹는 상황이 제발 벌어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봉급 받고 직업으로 건물 지키는 사람들이 어딜가나 다 있는데
제복 입은 네가 눈 치켜뜨고 살벌한 모습으로 그 앞에 서 있어야 하는
긴장된 상황도 제발 사라지는 평화스런 날이 오기를 기도한다.

선풍기, 에어컨 앞에 앉아 있어도 덥다고 하는 이 계절에
솜바지 저고리 보다 더 힘든 방석복에 철망 모자 쓰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았는지 오늘도 너의 착한 미소를 떠올리며 아비는
시름에 잠긴다.

건강해라.
몸이 아프면 서러운 게 군대 생활이다.

잘 참고 견뎌내라.
인내로 버텨나가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현역이라는 특수한 단체 생활이다.

날이 더워도, 바람이 불어도, 비가와도
자유롭게 피하지 못하는 데 서 있을 자식을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이고

뉴스를 들으면서도 네가 복무하는 지역에 큰 집회나 사건이 터졌다 하면
TV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밤잠 못 이루고 근심 걱정하는 게
부모 마음이다.

그저 사회가 평안해야 네 신상도 평안하다고 하는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이치와 진리를 매일 같이 새롭게 깨닫는 게 의경 자식을 둔 부모 마음이구나.

그런 까닭으로 오늘도 착하고 순진하기만 한 너의 해맑은 미소가
더욱 그리워지는 지도 모르겠구나.

강인한 투지와 의지력으로
그저 '헌신 봉사'라는 말을 새롭게 배우고

결코 이 같은 고단한 세월이 낭비가 아니라 값진 삶의 체험으로
네 인생의 한 페이지에 '보람'이란 두 글자로 각인되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의경 아버지 윤 승 원   씀

◆ 큰 힘과 용기 불어 넣어주는 ‘인정과 사랑’

이제 예비역 의경 아버지이자, 현직 경찰관인 나로서는 비가 세차게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관내 시위 현장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전․의경들에게 떡과 음료수를 나눠주는 전․의경 어머니회 회원들의 정성어린 위문을 보면서 콧날이 시큰한 감동에 젖는다.

“고맙습니다. 대덕경찰서 전.의경 어머니회 여러분들!
여러분들이 전.의경들에게 나눠준 따끈한 떡과 시원한 음료수는 예사로 만들어진 떡과 음료수가 아닙니다. ‘사랑’입니다. 고생하는 전. 의경들게는 큰 용기와 힘을 불어 넣어주는 ‘위대한 사랑’이 되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윤승원 / 경찰관. 수필가. 1990년 '한국문학' 지령200호 기념 지상 백일장 장원 당선. KBS와 '한국수필' 공동 공모 수필 당선으로 등단. 2001년 '경찰문화대전' 금상 수상. 수필집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우리동네 교장 선생님'.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을 펴냄. 한국문인협회회원, 대전.충남수필문학회 회장. 대덕경찰서 정보과 재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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