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심재익 보훈병원장...내 집같은 병원 목표

대전충청권 병원 평가에서 1위, 전국5위에 오른 대전보훈병원. 집과 같이 편한 요양병동과 완벽한 재활센터 구축은 심재익원장의 철학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신탄진고 옆 길을 따라 조금만 걸어가면 야트막한 야산을 끼고 있는 산뜻한 색상의 5층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나라를 위해 몸바쳐 싸우다 희생된 보훈환자들을 진료하는 대전보훈병원(원장 심재익, 60)건물이다. 3만 6천여평의 부지면적을 자랑하는 대전 최대의 병원이다.

대전보훈병원은 국가보훈사업을 수행하는 의료시설로서 쾌적한 진료환경과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국가유공자와 유가족의 건강한 생활 유지를 위해 보다 높은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목적으로 설립됐다.

애국지사, 전공상군경등 국가유공자 본인에게는 국가예산으로 무료로 진료하고, 유가족에게는 진료비를 감면한다. 또한 중상이자의 의학적, 정신적 재활사업을 실시하여 의수족 등 각종 보조장구를 제작 공급하고 있다.

심재익 보훈병원장.

특히 대전보훈병원은 도심권에서 멀어 환자들이 오기 불편한 면이 있지만, 조용한 숲속에 자리잡아 환자들에게는 최고의 환경이다.

심재익 원장은 "보훈병원은 전국에 5개 지역에 있는데 총 3000베드가 된다"며 "16만 보훈가족을 생각하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죄송할 따름"이라는 말로 보훈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그렇기때문에 진료에 열과 성을 다하게 될 수 도 있다. 대전보훈병원은 지난 4월20일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2005년 의료기관 평가에서(260~400병상이하) 전체 종합병원 부문 5위를 차지했으며, 대전·충청권에서는 1위를 차지한 것도 원장의 이러한 경영관이 반영된 결과로 보여진다.

이번 의료기관평가는 작년 8월부터 11월사이 전국 79개 의료기관(400병상 36개, 400병상 이하 43개)을 대상으로 환자의 권리와 편의, 진료체계, 병동, 영양, 응급수술관리체계, 약제 등 18개 항목에 걸쳐 평가가 이뤄졌으며 단 한개의 미흡한 부문없이 A(우수)10개, B(양호)6개, C(보통)2개의 우수한 평가를 받았다.

심원장은 전국 5위, 대전 1위의 성적에 대해 "부끄럽습니다."라는 말로 모든 공을 직원들에게 돌렸다.
 
"전 직원이 하나가 되어 보다나은 병원 이미지를 창출하여 국가유공자 및 지역민에게 보답하도록 노력해온 결과로 봅니다 그리고 친절 메뉴얼을 만들어 친절한 병원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면서 모든 직원이 친절상을 받을 때까지 자체 평가를 하고 외부 평가도 받습니다"

3월 27일 한방진료과를 개설하고 양,한방 동시 진료를 가능케 했다.

보훈병원들이 각기 특성화를 이루고 있는데, 대전보훈병원은 재활에 있어서 최고의 병원으로 인정받고 있다.

심원장 스스로 재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병원의 체제를 '재활'중심으로 꾸며 놓았다. '재활'이라면 물리치료를 먼저 생각하게 되는데, 심 원장은 정신과 육체가 같이 재활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찾아가는 진료도 재활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노인분들도 65세에서 75세까지는 young old, 75에서 85세까지 old, 85세 이상을 older 등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6.25를 경험한 세대는 76세 이상이며 월남전은 65세 이상이 된다. 따라서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도 60대 이후가 대부분이어서 '전문욕창센터'와 '재활센터'를 설치했다.

젊은 시절 군의관으로 군과 인연을 맺은 심재익 원장은 예편 후 보훈병원에 들어와 26년째 접어들었다. 보훈병원 출신으로 원장이 된 경우는 그가 처음이다. 3년간의 임기 중에 2년 3개월간 원장으로 근무하면서 많은 일들을 겪었다는 심원장. 전국최고시설의 재활체육관을 지었고 전국 두번째로 한방진료과를 신설했으며, 찾아가는 진료서비스 실시, 지역 호스피스 교육 선도 등 지금까지 보훈병원은 발전해 왔고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발전할 것인지 지켜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그는 의료인 가족속에서 자라나 어릴때부터 의사가 되는 것을 당연시 여겼고, 당시에 돈 많이 벌 수 있다는 정형외과를 전공했지만 돈과는 먼 공무원이 되었다. "남들 자장면 먹을 때 난 자장면 곱배기 먹으면 족합니다"는 게 심원장의 생각이다. 

 "아버님께서 친구분과 함께 병원을 설립하셨어요. 그래서 어릴때부터 아버님으로부터 슈바이처 같은 의사가 되라! 라는 말씀을 듣고 커왔으니까 의사가 운명으로 정해졌었나봐요. 초등학교 1학년때 선생님이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해서 슈바이쳐라고 말했지요 그때는 슈바이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저 슈바이쳐라고 말한거지요"

어릴 적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5살때 한자를 배워서 읽고 쓰는것은 자신있었어요. 서울사대부고 들어갈때 인데, 시험볼때 이름을 쓰는데, 아버님이름 내이름 모두 붓글씨로 멋지게 써 놓았더니 교장선생님이 떡 하니 합격을 시켰더라고요 그때 친구들이 대단했었는데 이영근대장, 김창룡 아들 등이 다녔어요. 그들은 밍크를 입고 학교에 다녔는데, 나는 군용담요를 줄여서 만든 몸빼바지를 입었지요. 이걸 입고 걸으면 까칠 까칠하고 바람도 잘 안통하고 고생 많이 했지요"

의대 졸업할 시점이니까 당시는 정형외과가 인기를 끌었다. 총장이 전공에 대해 물어 정형외과라고 답했다. 당시 총장은 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하셨던 분인데 대뜸 "너 돈벌려고 그러냐"고 힐난조로 얘기했다. 그 때 "저는 남들이 자장면 먹을때 자장면 곱배기만 먹으면 됩니다"라고 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는 게 심원장의 말이다. 결국 지금 그는 곱배기 정도만 먹을 정도로 살고 있다.

"이렇게 해서 정형외과에서 일하는데, 재활의학 전문의 제도를 하려고 학회를 구성할 때가 있었어요 종합병원에서 2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면 재활의학 전문의 자격증을 줄때죠 그때 전문의 자격을 쉽게 얻었는데, 이후로 더욱 관심이 가더라구요" 재활전문의가 된 심원장은 재활 학회 활동을 열심히 하면서 물리치료와 정신적 치료의 병행에 관심을 갖게 됐다.

재활과 관련, 그는  "우리나라는 재활 하면 물리치료만 생각하는데, 외국은 직업재활 등에 중심을 둡니다. 우리나라는 탁구가 주된 운동이지만 외국은 농구를

"의사가 되기 전에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심원장.
주로 하지요. 넘어지면 스스로 일어나는 '의타심'을 없애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생활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재활의 참 의미라고 할 수 있어요"라며 시각을 바꿔야 된다고 말한다.

보훈병원에서 26년을 근무한 심원장의 최고 보람은 제자들이다.

"최고의 재산이 제자입니다. 제자를 키우고 그들이 사회에 나가서 성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찾아요. 그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의사가 되기 전에 사람이 되라'라고 가르칩니다"

물질을 바라고 생활하는 사람은 물질의 노예가 되듯이 돈을 바라면 의사가 아니다. 국가유공자를 치료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것은 성직자와 같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보훈병원 원장을 만나고 나서 느낀 점은 성직자와 같은 엄숙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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