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 생일 챙기기 등 공무원 다면평가 점수 따기 ‘백태’

대전시 공무원들 얼굴 사진.

최근 대전시청에 근무하는 A씨(7급)의 모습이 많이 달라졌다. 먼저 자주 웃는다. 얼굴이 밝아졌다. 자리 이석도 잦아졌다. 자판기 앞에서 동료 직원들과 커피를 마시다보니 자리를 자주 뜨게 된다.

공무원 A씨에게 왜 이런 변화가 왔나? A씨는 최근 다면평가 대상에 들어갔다. 조직 개편에 다른 인사 요인이 생기다 보니 신경이 쓰인다. 이번 인사에서는 승진자 명단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을지 몰라도 다음 번에는 가능성도 있다. 이제부터 소위 관리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주변 동료 공무원들의 움직임이 다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아침마다 열어보는 시청 내부 인터넷망 ‘자유게시판’에 올라오는 좋은 글들이 이유가 있다는 해석도 그럴듯하게 들린다. 지난달에 있던 생일날, 잘 알지 못하던 직원으로부터 축하 메시지를 받고 기분이 좋았는데 그것도 다면평가 때문이었나?

3년 전부터 대전시를 비롯해 각 구청, 도청 등 공무원들의 인사시스템이 바뀌었다. 인사권자의 혼자 평가로 이뤄진 인사에서 같은 직급과 상하 동료들이 참여하는 다면평가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면서 조직 내에도 또 다른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1천여 명이 넘은 거대 조직 속에서 다면평가가 주요 승진 평가 요소가 되면서 일어나는 풍속도다. 각 구청에서, 또 다른 기관에서 인사 이동돼 오면서 낮선 직원들은 더더욱 신경이 쓰이는 게 다면평가다.

그러나 다면평가에 대한 비판도 없지 않다. 최근 다면평가에 평가원으로 들어갔던 한 사무관은 “모르는 사람을 평가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게 아닌가. 다섯 명 올라오면 그중에 2-3명은 같이 근무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면서 ‘그러다보니 한번이라도 근무했던 후배 동료들에게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고 다면평가의 문제점을 꼬집기도 했다.

한편 대전시는 19일 6급 승진자 14명명과 7급 4명 등 18명의 승진자를 위해 다면평가가 이뤄졌다. 승진 명부에 들어가는 대상자는 모두 61명. 다면평가를 위해 평가에 참석한 사람은 4개 직렬에 54명이 참여했다.



무조건 부드러워 지기...다면평가제가 도입되면서 조직 내 내부적 변화는 부드러워졌다는 점이다. 과거 공직 내부에서 소위 힘 있는 부서에 근무하는 직원들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한다. 업무를 취합하는 부서에서 서류가 늦어지면 큰소리가 나오던 게 관례였으나, 이제는 웃으면서 마무리된다. 엘리베이터에서 벽만 쳐다보던 직원 간에 “바쁘시죠” “힘들어요?” 인사가 오가는 것도 다면평가의 힘이라고 말한다.

좋은 글로 나를 알리기...시청 공무원들의 내부 통신망인 e-nara 자유게시판에는 몇 가지 글이 올라온다. 매일 바뀐다. 업무와 관련되지 않은 글이지만 직원들에게 인기물로 자리 잡았다. 이곳저곳에서 좋은 글을 혼자보기 싫어 함께 나눠 보자는 취지로 올려지는 이 글은 그러나 동료들에게 자신을 알리기에는 금상첨화다. 어떤 공무원은 자신의 직무와 관련해 나눌 수 있는 정보를, 어떤 공무원은 다른 인터넷에서 좋은 글을 퍼다 나른다. 19일 아침에는 ‘삼성경영 실체 10가지’라는 글과 ‘아버지를 팝니다’는 글이 올라왔다. 꼬집어 말하기는 어렵지만 다면평가와 연결짓는 사람들도 있다.

동료 생일 챙겨주기...지난해 승진한 C 사무관은 동료들 생일 챙기기를 1년여 동안 했다고 털어놓는다. 전해에 승진대상에 올랐다가 번번이 떨어지면서 시작한 일이다. 자신을 알릴 수 있는 방법으로 고민하다 직원들의 생일날 축하메일을 보냈다. 처음에는 낯간지러웠으나 반응이 좋아 계속 보냈다. 결국 다면평가에서 좋은 점수로 승진을 했다. 생일날, 연말 직원 간에 문자메시지가 오가는 풍속도 바뀐 풍경이다.

자판기 대화에 끼기...3개 층마다 확보돼 있는 자판기 앞은 공무원들의 정보 보고의 장. ‘자판기 인사’ ‘자판기 정보교환’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자판기 앞에서는 여러 가지가 거래된다. 인사와 관련된 정보도 이곳에서 얻는 게 더 많다. 그러다 보니 다면평가를 앞두고 자판기 앞에 모여드는 공무원들은 많아지는 편이다. 이곳은 또 서로 서먹서먹했던 얼굴익히는 자리도로 애용된다는 게 직원들의 설명이다.

소모임 만들기-적극 참석하기...공무원들만큼 모임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조직도 드물다. 향우회와 동창회는 기본이고 같은 과에서 근무했다는 이유로, 한 동사무소에서 고생하면 일했다는 이유로 모임이 만들어진다. 이런 가운데 승진을 앞두고는 또 소 모임들이 형성되고 있다. 한번이라도 근무를 했던 사람, 친밀도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주다 보니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것이다. 1년에 한두번도 안나오던 사람도 이때 만큼은 빠지지 않는다. 어떤 이는 소위 '유사'를 자청하기도 한다고 한다.

술 좌석 합석하기 ...인사를 앞두고 잦아지는 게 또 술자리다. 인사 당사자도 마음이 급하지만 늘상 있는 퇴근길 한잔이 많아진다. 예전과 달라진 풍경은 옆자리 챙기기. 직원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얼굴을 잘 모르던 직원들도 술좌석만큼은 가까워지기 쉽다는 점을 이용, 인사 대상자들이 자주 찾게 된다는 것이다. 동료들과 합석도 하고, 또 술값을 대신 내주는 이색풍경이 연출되는 것도 다면평가가 이뤄지기 며칠 앞두고는 자연스런 분위기라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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