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들이 쓰던 물건 본지 최초 공개

유사시 대피시설과 정전시 전력 공급 장치 완비

청남대에는 아름다운 자연만 있는 게 아니다. 54만평의 너른 땅에는 역대 대통령들의 별장에 걸맞게 비밀스런 역사가 숨어 있다. 지난 83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건립된 이래 2003년 4월 노무현 대통령이 주민들에게 돌려주기까지 20여년 동안 청남대는 그야말로 베일에 싸여 있었다. 국가 1급 경호시설로 4중의 경계가 펼쳐질 정도로 엄격해 청남대 소재지인 청원군 문의면 주민들조차도 그 앞을 마음 편히 지나갈 수 없었다.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개방되고 지금은 누구나 갈 수 있는 관광지가 됐음에도 청남대는 어딘가에 비밀이 숨어있을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 본관 지하 1층에 쌓아 놓은 역대 대통령의 물건들. 왼쪽은 김찬중씨.

오스트리아산 샨드리아 세상에 단 한 개
기자는 지난 22일 청남대를 방문했다. 그리고 대통령의 숙소이자 집무실로 이용되던 본관 지하를 눈으로 확인하는 ‘영광’을 안았다. 일반인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그 곳에는 역대 대통령들이 쓰던 물건과 운동기구, 그림 등이 꽉차 있었다. 깊이로는 지하 3층 정도 됐으나 1층을 빼고는 계단으로 이뤄져 있었다. 철문을 열고 들어가자 CCTV가 설치된 방과 지하 별실이 나타났는데, 별실은 유사시 대통령과 가족들이 대피할 수 있는 곳이다. 거기에는 쇼파와 간단한 집기들이 놓여있었다. 과거 청남대의 문을 꼭꼭 걸어잠그고 삼엄한 경비가 펼쳐졌을 때 ‘본관 지하에 대청호와 연결되는 수중터널이 있다’ ‘욕조를 금으로 만들었다’는 등 많은 소문들이 양산됐는데 실제 그런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청와대 비서실 소속으로 청남대에 근무하다가 개방된 이래 충북도 공무원 신분이 된 김찬중(위생직 7급·41)씨는 청남대에서만 18년을 근무했다. 그래서 ‘청남대의 산증인’으로 통하는 그는 역대 대통령들이 쓰던 물건과 청남대에 얽힌 역사를 소상히 기억하고 있었다. 김씨는 “지하 별실에 특수시설을 해놓은 것은 없다. 유사시 대피 목적으로 만들어진 곳인데 대통령들이 이 곳을 사용한 적도 없다. 다만 정전이 됐을 때는 정전됐다는 사실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완벽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대통령이 내려오면 한국전력 직원들이 UPS실에서 근무하며 바로 전력을 공급하도록 돼있다”며 “수중터널 소문은 지하 3층에 물이 고이면 퍼낼 수 있도록 수중펌프를 설치한데서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별실에는 평당 30만원짜리 외국산 실크벽지로 도배돼 있었는데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깨끗했다. 또 천장에는 호화스런 샨드리아가 달려 있었다. 세상에서 단 한 개 뿐인 오스트리아산 크리스탈로 아름다운 오색빛을 자랑했다. 김씨는 당시 똑같은 제품 생산을 피하기 위해 도면도 폐기됐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청남대의 물건은 세심하게 신경을 쓴 수입산이거나 당시 최고로 이름난 국내산으로 보였다.

물건을 쌓아놓은 또 다른 방에는 생활필수품이 모두 있었다. 이불, 가구, 침대, 운동기구, 화장품, 주방용품 등. 가구도 철마다 바꿔놓을 수 있도록 겨울용과 여름용으로 나뉘어 있었고, 목적에 따라 가든파티용, 실내용으로 구분됐다. 이불 또한 사계절 철철이 바꿔 사용한 것들이 쌓여 있었다. 그 중 노태우 전 대통령의 손녀가 썼다는 유모차,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청남대 개방행사 때 와서 탔다는 자전거, 김영삼 전 대통령이 오각정에서 신던 버선, 청와대 마크가 들어간 메모지와 냅킨이 눈길을 끌었다. 냅킨에는 청와대, 영춘재, 청남대 등 3가지의 마크가 찍혀 있어 이 곳의 역사를 대변했다. 청남대는 개관 당시 봄을 맞이한다는 의미의 ‘영춘재’로 불리다가 87년 7월 남쪽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로 이름을 바꿨다.

청와대 설득해 가져온 자전거
그리고 사진을 좋아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위해 행사 사진을 걸어놓았다는 액자, 한국도자기가 만든 식기류, 대통령의 가족들이 타던 스케이트, 수영·야구·배구용품, 6공 때 사용되던 당구대, 대통령 휘장이 찍혀있는 당구 큐, 골프화를 갈아신을 때 앉는 의자, 헬스기구, 커피메이커, 헤어드라이어, 주전자, 크리스탈 컵 등도 눈에 띄었다. 상자에 넣어 싸놓은 것까지 합치면 이 곳의 물건은 몇 천 점이 될지 헤아리기조차 어려웠다. 대통령의 물건을 확보한 데에는 우건도 초대 청남대관리사업소장(현 충북도 자치행정과장)의 힘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우 전 소장은 청남대 개방이 확정되고 나서 2003년 3월 인수팀장으로 들어갔다가 초대 관리사업소장을 지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 내외가 청남대 개방행사 때 탔던 자전거 두 대를 모두 청와대로 가져갔는데 역사의 기념물로 보전하겠다고 청와대를 설득해 다시 가져왔다. 본관에 있는 노대통령 내외의 핸드프린팅도 개방식 때 준비하고 있다가 찍었다. 그 때는 역대 대통령 모두 핸드프린팅을 찍고 청남대에서 쓰던 귀중한 물건도 기증받으려고 했으나 잘 안됐다”며 “청남대는 시설확장보다는 대통령과 관련된 역사를 보여주는 게 나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통령 업적을 기리자는 것은 아니고 있는 그대로,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이용하자는 것이다. 개방 초기에 일부 사회단체에서 대통령 전시관을 반대했는데 오욕의 역사도 역사 아닌가. 역대 대통령들이 쓰던 물건이 몇 천 점인지 모를 정도로 많은데 이것을 잘 정리해 일반인들에게 공개하면 볼거리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2003년 7월 천주교인권위원회 등 14개 단체들은 청남대관리사업소에서 관리사업소 건물 2층에 대통령들이 쓰던 물건과 사진을 전시하자 반민족, 반민주, 반역사적 행위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진을 불태우는 등 반대의사를 강하게 표출했다. 이 때는 전시관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니고 충북도가 청남대 개방에 맞춰 관광객들에게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가지고 있던 물건의 일부를 정리해놓은 정도였다. 그러나 사회단체의 의견과는 달리 역대 대통령 중 자랑스런 지도자가 없다고 치더라도 청남대의 컨셉이 ‘대통령 별장’이므로 이를 느끼게 해주는 대통령 전시관 같은 시설은 필요하다는 주장도 많이 나왔다. 다만 여기에는 대통령의 업적을 미화하거나 포장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단서조항이 붙는다.

운동 좋아한 YS, 경호원들 고생
‘청남대 명소화를 위한 중장기발전계획’ 연구 용역을 진행하고 있는 박호표 청주대 관광학부 교수는 “대통령의 역사문화관을 별도의 건물에 만드는 계획을 짰다. 여기에는 대통령이 쓰던 물건과 국정운영에 관한 소프트웨어를 전시하고 청남대가 건립돼 주민 품으로 돌아오기까지의 전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안이 들어있다. 주민들과 사회단체의 개방화 노력도 포함될 것이다. 역사문화관은 대통령을 우상화 하자는 게 아니고 흔적을 보자는 것”이라고 밝혔다. 따라서 어떤 방법으로든 역대 대통령들이 청남대에서 쓰던 물건을 정리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자는 게 중론이다.

그런가하면 역대 대통령들은 여름휴가와 명절휴가를 비롯 매년 4~5회, 많게는 7~8회씩 청남대를 이용, 20여년간 총 88회 400여일을 이 곳에서 보냈다. 김찬중씨는 전두환 전 대통령은 19회, 노태우 전 대통령 25회, 김영삼 전 대통령 28회, 김대중 전 대통령 15회, 노무현 대통령은 한 번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운동을 좋아했는데 전 전 대통령은 축구와 골프, 노 전 대통령은 골프, 테니스, 탁구를 즐겼고 YS는 조깅과 골프, 테니스, 배드민턴, 산책, 그리고 DJ는 조용히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중 YS는 운동하는 것을 유난히 좋아해 비서와 경호원들이 하루종일 여기저기 쫓아다니느라고 다리에 진물이 날 정도였다는 것. 또 YS의 조깅코스는 특별히 실내에서 쓰는 비로 깨끗하게 쓸고 가장자리에는 나뭇잎들을 줄맞춰 갖다 놓았다고 말해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이들은 청남대에서 어울리는 사람들도 각기 달랐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 전 대통령은 5공 때의 실세들과, 노 전 대통령은 주로 사돈관계에 있는 SK그룹, 주식회사 대상(전 동방유량)의 CEO와 골프를 즐겼는가 하면 YS는 가족들과, DJ는 부부가 조용히 머물렀다는 것. 본관은 청남대 54만평 중 9700평에 불과하지만 대통령이 머무는 곳인 만큼 경호가 엄격해 청와대에서 통용되는 비표와 같은 표를 사용했다고 김씨는 말했다.

특히 5, 6공 때는 ‘진상한다’ ‘모신다’는 표현과 대통령에게는 ‘대통령 각하’ 부인에게는 ‘영부인’, 자녀에게는 ‘영식’ ‘영애’, 그리고 손자 손녀에게는 ‘영손’이라는 호칭을 꼬박꼬박 썼고 경호원들이 청남대를 왔다 갔다 하다가 대통령을 만나면 그 자리를 빨리 피해야 했다고 김씨는 회상했다. 대통령과 ‘조우’하고서도 우물쭈물하면 비서실 직원들로부터 당장 호통이 날아올 정도로 엄격했다고 말해 군사독재시절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계단이나 도로, 침실 등에는 主자를 붙여 모두 主계단, 主도로, 主침실로 부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것은 YS 때부터 완화돼 DJ 때는 스스로 대통령님, 여사님, 아드님, 따님 등으로 낮춰 부를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고.

락카룸에는 사우나시설 완비
또 청남대 내에는 락카룸이라는 사우나시설이 있다. 이 곳 역시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야외에서 수영이나 테니스를 하고 목욕, 샤워를 할 수 있는 곳인데 여기에는 대통령 내외가 쓰는 사우나실과 샤워실, 손님용 샤워실이 있었다.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고 다리가 불편했던 DJ가 의자높이를 5cm 정도 높여놓았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본관 1층은 손님용, 2층은 대통령과 가족들을 위한 시설로 꾸며져 있다. 1층에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김옥숙 여사가 쳤다는 탁구대가 놓여 있었다. 접견실의 달력에는 청와대 마크가 찍혀 있었고 날짜는 청남대가 개방되던 2003년 4월에 머물러 있었다. 안내를 해주던 김찬중씨는 “2층 유리창은 방탄유리와 도청방지장치가 돼있다. 대통령 가족 거실에 있는 피아노는 5공 때부터 있었던 것이고, 노래방 기기는 김영삼 전 대통령 손자들이 사용했던 것이다. 복도의 거울은 소화전을 가리기 위해 일부러 설치한 것이고 영부인들이 썼던 미용실에는 간이침대, 대통령이 썼던 이용실에는 안마기능까지 달려있는 이용기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용실에 가서 거울을 열자 세면기가 튀어 나왔다. 김씨는 대통령의 의자를 한바퀴 돌려 머리를 뒤로 젖힌 채 감겼다고 덧붙였다.

항간에 금으로 만들었다는 소문을 뒷받침 할 수 있는 것으로는 본관 욕실 손잡이와 욕실 수도꼭지, 전등 스위치 등이 있었는데 이 것들은 모두 금 도금 제품이었다. 본관에 놓여있는 가구들은 화려한 맛 대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멋을 풍겼고, 방마다 국내의 유명한 작가 그림들이 걸려 있었다. 본관 1, 2층은 일반인에게 개방돼 줄을 서서 관람할 정도로 붐빈다. 이 것들은 청남대의 어떤 시설이나 자연보다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338 경비대의 흔적
한편 청남대에서 경호를 맡은 군인들은 대통령 경호실 338 경비대였다. 평소 이 곳을 지키는 경비대는 250명. 대통령이 청남대를 이용할 때는 이 인원 외에 청와대 경호실과 비서실까지 합쳐 적게는 300명, 많게는 700~800명까지 내려왔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아무리 ‘청남대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중요한 결정이 이 곳에서 이뤄지고 주요 국빈을 대접하는 장소로 쓰이긴 했어도 대통령을 위해 많게는 1000명의 인력의 동원됐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다. 군사독재시절이 아니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일 것이다.

청남대관리사업소 건물 2층에는 338 경비대가 머물렀던 흔적이 고스란히 있다. 물론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은 방이다. ‘대통령님을 모시는 긍지와 자부심으로! 338 충성’이라고 크게 씌어 있는 방에 들어가자 달력, 찬송가, 성경책, 모자, 가방, 달력, 대대장 명패, 경호원의 다짐 같은 것들이 놓여 있었다. 시간은 경비대가 물러가던 2003년 4월 30일에 정지해 있었다. 달력의 날짜도 2003년 4월을 가리키고 있었다. 경비대원들은 떠나면서 “역사속의 청남대, 그 자취와 그 곳을 가꾸어온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 2013년 5월 5일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라는 글을 남겼다. 흰 천에는 경비대원들의 사인과 글이 가득 들어 있었다.

또 경비대원들이 쓰던 밥솥과 국그릇, 국자, 집게, 수저, 식판 등도 그대로 있었다. 당시 우건도 초대 청남대관리사업소장은 본관 물건 덮어놓은 흰 천을 가져다 떠나가는 대원들에게 글 한 줄씩 남기도록 하고 그들이 쓰던 물건도 뺏어 둔 것으로 전해졌다. 우 전 소장의 말이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대원들의 취사도구를 가져가려고 해서 대통령이 여름에 내려오면 어떻게 밥을 해먹이느냐고 하면서 놓고 가라고 했다. 그 때는 대통령이 여름에 한 번씩 내려온다는 말이 있었다. 이 것 말고도 대대장 옷과 지휘봉, 군화, 사진, 대대 깃발, 사격 타겟 등도 역사의 기념물로 남겨 놓았다.”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주변 경관이 빼어난 것을 감탄하자 들어섰다는 청남대. 20여년간 청원군 문의면 주민들을 비롯해 국민들이 대청호의 아름다운 자연을 즐길 권리를 빼앗았던 청남대는 지금 국민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부터는 이를 어떻게 명소화시키느냐가 관건이다. 그 중 역대 대통령들이 쓰던 물건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도 과제 중의 하나다.

CBI뉴스 제공 = 홍강희 기자 tankhong@cbinews.co.kr
대통령 휘장 찍힌 당구 큐. / 육성준 기자.

338 경비대의 흔적 / 육성준 기자.

이용실. / 육성준 기자.

사우나실 / 육성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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