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인도차이나 통신]하노이의 3.8 여성의 날

마티즈, 전날 캄보디아에서 밤 늦게 도착해 묵었던 호텔 로비에서 우연히 베트남 NGO를 지원한다는 한국 교수를 만났다. 우리나라의 소형차 마티즈의 택시요금이 싸다는 정보를 알려줘 특별히 마티즈를 불렀다. 호텔 앞에서 호객 행위를 하던 베트남 택시기사들이 이런 우리를 두고 “마티즈 마티즈...”한다며 볼멘소리를 해댔지만 한국차라는 뿌듯함과 가격도 저렴하다는 솔깃함에 줄지어 서 있는 다른 택시를 물리친 채 굳세게 기다려 마티즈에 탔다.
◈.3.8 여성의 날 하노이 시내는 꽃의 향연이 벌어지듯 꽃들이 넘쳐났다. 꽃시장도 밤늦게까지 북적거렸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밖을 내다 보다 뒤집어 지는 줄 알았다. 오토바이라기보다는 배기량이 적은 스쿠터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수백 수천의 오토바이가 러시아워가 따로 없이 하루 온 종일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가히 오토바이 천국이다.

마티즈... 마티즈...눈 흘기는 하노이 택시기사

자가용 오토바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세옴이라 불리는 요금을 받는 오토바이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일 정도다. 인구 400만 명인 하노이에 한 집에 1.5대 꼴로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니 그 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도시는 너무도 활기차 보이는 반면 낡은 오토바이들이 한꺼번에 내뿜는 매연때문에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고 굉음 또한 지축을 흔드는 듯 했다.

매연을 피해 무장강도처럼 손수건을 삼각형으로 접어 임시 마스크를 한 채 세옴 꽁무니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가던 어떤 사람의 양 손에 풍성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옆 오토바이에 부딪힐세라, 하노이의 오토바이 행렬은 비록 폭주족처럼 속도는 없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경기를 일으키게 한다. 어떻게 교통사고가 안나는지 신기할 정도로 곧 부딪힐 듯 바짝 바짝 붙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비집기 앞지르기도 도사들이다. 우리나라 난폭 운전은 이도 안났다.
◈하노이는 오토바이 천국이다. 평생 볼 오토바이를 이곳에서 다 본 것 같다. 덕분에 마스크를 해야 숨을 쉴 수가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꽃을 든 손을 늘어뜨렸다가는 1분도 안돼 옆 오토바이에 부딪혀 꽃다발이 처참하게 망가질 것은 불문가지다. 꽃다발을 안 다치려면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마치 만세 부르듯 치켜들어야 했다.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벌쓰듯 손을 들어올리고 가는 모습도 우스운데 아, 글쎄 그 꽃다발이라는 것이 사람을 보통 웃기는 것이 아니었다. 큼지막한 꽃다발 한 가운데에 우리나라 겨울 가로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양배추가 포기 채 턱하니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오토바이 질주 교통사고 안나는 것이 신기해

아니 꽃값이 아무리 비싸기로서니 꽃다발에 웬 양배추하며 후배와 배꼽을 잡자 휘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운전기사도 덩달아 폭소를 터뜨린다. 그날은 하노이 거리에 꽃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남성들이 엄청 눈에 띄었다.

언제가 책에서 사이공, 지금의 호치민시를 꽃의 도시라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베트남 전체가 꽃의 나라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날 저녁 재래시장에 가보고는 비로소 그 연유를 알았다. 시장 안의 꽃가게마다 우리나라 발렌타이데이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 전야처럼 온통 사람들로 북적였다. 꽃을 사는 사람이 거의 남성였던 점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갖가지 열대 과일을 파는 베트남 여성. 사진을 찍자 과일을 사라고 졸라 애를 먹었다.

바로 그날이 3.8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3.8 여성의 날하고 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알다시피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75년 유엔에서 선포한 국제기념일이다.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는 날로 지금부터 1백년 전인 1908년 3월 8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미국의 여성 섬유 노동자 수만명이 뉴욕 광장에서 생존권과 노동권,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폭발한 것은 이에 앞서 1백여명의 여성 노동자가 불에 타 숨진 것이 촉발됐다.

여성에게 꽃다발을...양배추꽃도 괜찮아요

사회주의 계열 국가들에서는 이날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데 특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하노이 공항에서 만난 한 나이 드신 한국 여행객 손에도 반쯤 마른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호텔에서 여성 투숙객들에게 선물한 것이란다. 아마도 평생 처음 받아보았을지도 모르는 한 송이 꽃을 드라이플라워가 되도록 차마 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모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일년 중 하루만이라도 꽃 선물하는 날이라니, 비록 남의 나라 일이기는 하나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에 많은 남성들이 입을 샐쭉할지 모르겠다.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꽃 선물하는 날을 제정하라고 말이다.

이 달 첫째 주에서 둘째 주 사이에 후배와 둘이서 캄보디아 앙코르와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왔다. 일상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내가 속한 세상을 보고 새로운 풍물과 생각의 여유를 담게 되는 여행은 늘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3번에 걸쳐 인도차이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중앙우체국 앞에 줄 지어 주차해 놓은 오토바이들.

◈300여개의 크고 작은 호수가 있는 하노이에서 가장 사랑받는 호안 끼엠 호수공원. 아름다운 조각들로 장식되어 있다.

◈바람 살랑이는 호숫가에서 망중한을 즐기는 하노이 시민들.

◈베트남은 많은 잠재력을 가진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아직은 컴퓨터 보급이 미흡, 우체국에서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호안 끼엠 한 가운에 있는 응옥썬 사당으로 가는 나무로 된 붉은 다리. 호수 위에 그림처럼 떠 있다.

◈호숫가로 나들이 나온 전통의상을 입은 베트남 여인들.

◈호기심에 체중계에 올라섰는데 앗! 그만 여행중 몸무게가 늘었네요. 체중 재는 가격은 한번에 2000동(약 14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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