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의 인도차이나 통신]하노이의 3.8 여성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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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택시 안에서 밖을 내다 보다 뒤집어 지는 줄 알았다. 오토바이라기보다는 배기량이 적은 스쿠터가 훨씬 많기는 하지만, 베트남의 수도 하노이는 수백 수천의 오토바이가 러시아워가 따로 없이 하루 온 종일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는 가히 오토바이 천국이다.
마티즈... 마티즈...눈 흘기는 하노이 택시기사
자가용 오토바이는 말할 것도 없고 세옴이라 불리는 요금을 받는 오토바이가 주요 대중교통 수단일 정도다. 인구 400만 명인 하노이에 한 집에 1.5대 꼴로 오토바이를 갖고 있다니 그 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덕분에 도시는 너무도 활기차 보이는 반면 낡은 오토바이들이 한꺼번에 내뿜는 매연때문에 숨을 쉴 수조차 없을 정도고 굉음 또한 지축을 흔드는 듯 했다.
매연을 피해 무장강도처럼 손수건을 삼각형으로 접어 임시 마스크를 한 채 세옴 꽁무니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가던 어떤 사람의 양 손에 풍성한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옆 오토바이에 부딪힐세라, 하노이의 오토바이 행렬은 비록 폭주족처럼 속도는 없지만 처음 보는 사람은 경기를 일으키게 한다. 어떻게 교통사고가 안나는지 신기할 정도로 곧 부딪힐 듯 바짝 바짝 붙어가는 것은 물론이고 비집기 앞지르기도 도사들이다. 우리나라 난폭 운전은 이도 안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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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이니 꽃을 든 손을 늘어뜨렸다가는 1분도 안돼 옆 오토바이에 부딪혀 꽃다발이 처참하게 망가질 것은 불문가지다. 꽃다발을 안 다치려면 어쩔 수 없이 두 손을 마치 만세 부르듯 치켜들어야 했다. 오토바이 꽁무니에 매달려 벌쓰듯 손을 들어올리고 가는 모습도 우스운데 아, 글쎄 그 꽃다발이라는 것이 사람을 보통 웃기는 것이 아니었다. 큼지막한 꽃다발 한 가운데에 우리나라 겨울 가로화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양배추가 포기 채 턱하니 박혀 있는 것이 아닌가.
오토바이 질주 교통사고 안나는 것이 신기해
아니 꽃값이 아무리 비싸기로서니 꽃다발에 웬 양배추하며 후배와 배꼽을 잡자 휘라는 이름을 가진 젊은 운전기사도 덩달아 폭소를 터뜨린다. 그날은 하노이 거리에 꽃을 들고 왔다갔다 하는 남성들이 엄청 눈에 띄었다.
언제가 책에서 사이공, 지금의 호치민시를 꽃의 도시라고 한 것을 읽은 적이 있는데 베트남 전체가 꽃의 나라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그날 저녁 재래시장에 가보고는 비로소 그 연유를 알았다. 시장 안의 꽃가게마다 우리나라 발렌타이데이나 어버이날, 스승의 날 전야처럼 온통 사람들로 북적였다. 꽃을 사는 사람이 거의 남성였던 점만 제외하고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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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날이 3.8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3.8 여성의 날하고 꽃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요? 알다시피 3.8 세계 여성의 날은 1975년 유엔에서 선포한 국제기념일이다. 여성의 인권을 생각하는 날로 지금부터 1백년 전인 1908년 3월 8일 열악한 노동조건으로 미국의 여성 섬유 노동자 수만명이 뉴욕 광장에서 생존권과 노동권, 참정권을 요구하며 가두시위를 벌인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폭발한 것은 이에 앞서 1백여명의 여성 노동자가 불에 타 숨진 것이 촉발됐다.
여성에게 꽃다발을...양배추꽃도 괜찮아요
사회주의 계열 국가들에서는 이날을 대대적으로 기념하는데 특히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장미꽃 한 송이씩 선물하는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날 하노이 공항에서 만난 한 나이 드신 한국 여행객 손에도 반쯤 마른 장미꽃 한 송이가 들려 있었다. 호텔에서 여성 투숙객들에게 선물한 것이란다. 아마도 평생 처음 받아보았을지도 모르는 한 송이 꽃을 드라이플라워가 되도록 차마 버릴 수가 없었나 보다.
모든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일년 중 하루만이라도 꽃 선물하는 날이라니, 비록 남의 나라 일이기는 하나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이에 많은 남성들이 입을 샐쭉할지 모르겠다. 한국 남자들이 얼마나 고생하는데 한국에서는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꽃 선물하는 날을 제정하라고 말이다.
이 달 첫째 주에서 둘째 주 사이에 후배와 둘이서 캄보디아 앙코르와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왔다. 일상에서 한 발자국 물러서 내가 속한 세상을 보고 새로운 풍물과 생각의 여유를 담게 되는 여행은 늘 다시 한 번 나를 되돌아보게 한다. 3번에 걸쳐 인도차이나의 여행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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