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추심 금지유형 세분화 필요...

카드사 및 신용정보회사의 빚독촉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하루에 10여 차례 이상 전화를 걸어 폭언 및 협박을 일삼는 것도 예사다.

심지어 고의로 채무자의 상황을 주변에 알리는가 하면, 법원에서 발급한 것처럼 붉은 줄이 인쇄된 ′재산압류 강제신청예고장′을 보내는 등 무리한 채권추심행위가 좀처럼 근절되지 않아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동구 가양동에서 치킨체인점을 운영하는 양모씨(48)는 요즘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잠을 못 이루고 있다. 지난해 치킨체인점을 개설하면서 모 캐피탈사로부터 받은 대출금이 온가족들에게 이런 큰 고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장사만 잘되면 그정도 대출금 정도는 쉽게 갚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만만했던 양씨.
그러나 매출은 생각대로 쉽게 오르지 않았으며, 급기야는 대출금과 이자를 제날짜에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1∼2개월 정도는 봐주겠지″라며 다소 안일한 생각을 가졌던 양씨. 그러나 그것은 오판이었다. 연체된지 1개월이 되면서부터 양씨 가족들의 악몽은 시작됐다.

채권담당 직원으로부터 하루종일 10여통 이상의 독촉전화를 받는 것은 물론 저녁에 가게로 찾아와 눈에 보이지 않는 심리적인 위협을 가했다.
심지어는 집에 계신 팔순 노모와 고등학생 딸에게도 전화를 걸어 입에 담지 못할 온갖 폭언과 협박을 서슴치 않았다.

양씨는 이처럼 가족들이 시달리는 것보다는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갚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 현금서비스를 받아 연체금을 상환했다. 그는 또 곧 현금서비스 대금을 갚아야 하는 점을 감안, 급전을 융통하기 위해 또 다른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악순환을 겪고 있다.

양씨는 ″돈을 빌리고 제때 갚지 못한 저에게도 책임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때 갚지 않는다고 가족들에게까지 폭언과 협박을 가한다는 것은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나마 제도권 금융기관이라 믿고 대출받았는데 이런 방법으로 돈을 회수한다면 사채와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라고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

대출금 회수 및 독촉전화의 유형도 다양하다.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협박형′에서부터 바쁜 일과에 쫓기는 직장인을 상대로 10분 이상 전화를 끊지 않고 끝까지 결제일을 받아내 는 ′진드기형′까지.

김모씨(34·서구 탄방동)는 ″최근 자금난을 겪으면서 카드대금 지불을 2개월정도 미뤄왔다. 그러던 중 얼마전 법원에서 발급한 것처럼 붉은 줄이 인쇄된 ′재산압류강제신청예고장′ 보내 오더니 며칠전에는 법적으로 소송했으니 소송비용을 내라고 하루에 10여 차례 이상 전화를 걸어 폭언과 협박을 하고 있다″고 답답한 심정을 털어놨다.

신용사회의 상징인 카드거래 및 대출금 결제일 준수는 필수적이다. 약속 된 기일내에 결제를 못하면 신용사회 도래는 요원하다. 물론 카드 빚 독촉행위의 일차적인 원인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소비자에게 있다. 하지만 카드 및 대출자금 회수독촉으로 인해 일상생활을 영위하지 못한다면 그 또한 심각한 문제다.

정부는 이러한 무리한 채권추심 행위를 막기 위해 지난해 11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고쳐 신용정보업체들의 무리한 빚독촉을 금지하는 내용을 법률에 명시했다.
그러나 관련 법조항이 너무 포괄적으로 나와있기 때문에 실제 소비자들이 당하는 개별사례들에 대한 처벌을 요구하기에는 모호한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정은희 간사는 ″카드사 및 신용정보사들의 무리한 채권추심행위로 인한 피해사례가 한달에도 수십여건씩 접수되고 있지만 무리하고 강압적인 채권추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경찰에 고소하거나 은행연합회나 여신협회, 재경부 소비자정책과 등 관계부처에 문제제기를 하는 방법외에 별다른 방법이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신용정보회사 및 카드사들의 무리한 채권추심 행위로 인해 충남지방경찰청에 접수된 고소·고발 사건은 단 1건도 없다. 금융감독원 대전지원에 따르면 지난 1월말 현재 정부로부터 허가받은 신용정보업체는 총26개.
이중 대전에 지사를 개설, 영업활동을 하고 있는 신용정보업체는 10여개 업체에 이르고 있다.

여기에 캐피탈사 및 각 카드사들이 운영하고 있는 채권회수센터까지 포함하면 20여개가 넘는 업체들이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들 업체의 조직 및 인력구성을 들여다보면 무리한 채권추심행위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업체들이 영업이익을 본사와 지사가 절반씩 나누는 데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계약직으로 실적에 따라 봉급이 결정되고 있는 것.
특히 대부분의 채권추심 전문업체들이 건강한 체격과 활동력 등을 주요 채용조건으로 내세워 연중 수시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채권관리에 대한 전문지식과 소양 등 적절한 자격을 갖춘 사람을 채용하기보다는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빌려준 돈을 반드시 받겠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실제 모 캐피털사 채권회수센터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모씨(35·대덕구 법동)는 ″대부분의 직원들이 정부 규정을 지키며 채권추심활동을 하고 있다. 그러나 ′돈′문제로 채무자들과 부딪히다 보니 서로 불쾌한 언행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또한 100% 실적에 의해 월급을 받도록 돼있어 다소 무리한 채권추심행위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고 털어 놓았다.

이처럼 신용카드 및 신용정보회사들의 무리한 빚독촉으로 인한 민원이 크게 늘어나자 금융감독위원회는 신용카드 채권 심야 추심을 금지하기로 하고 밤 9시부터 다음날 오전 7시까지 채권 추심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여신전문감독규정을 개정, 지난달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큰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전경제정의실천연합 이광진 사무국장은 ″애매한 법규정과 금지유형 등을 좀더 세분화하는 등 무리한 채권추심행위로부터 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실질적인 제도개선이 필요하다″며 ″시민 스스로도 올바른 카드사용 등 건전한 소비문화 조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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