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어우러져 ′칼바람 시원′

 

″덥다″ 연일 낮 기온은 30도를 넘고 밤에도 뜨거운 기운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선풍기가 ′강′으로 돌아가지만 뜨거운 바람만 불어댈 뿐이다. 에어컨에서 나오는 인조 냉각 바람은 시원하기는 하지만 이 바람이 없는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극한 더위를 느낄 수 밖에 없다. 에어컨이 없는 곳은 이동하기조차 두려울 정도이다.

사람이 더위에 적응하기 위해 사용한 도구 중의 하나가 부채이다.

순수한 우리말인 부채는 바람을 일으킨다는 뜻의 ′부′자와 가는 대나무 또는 도구라는 뜻인 ′채′자가 어우러진 말로 ′손으로 부쳐서 바람을 일으키는 도구′라는 뜻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부채는 타조 깃털로 만들어졌다. 이집트 투탄카멘 왕의 피라미드에서 발견 된 것으로 3,000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경남 의창군 다호리 고분에서 출토된 옻칠한 부채자루로 기원전 3, 4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특히 고려시대부터 만들었던 접선은 중국이나 일본에 기술을 전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부채 제작술은 뛰어나다.

전통 부채는 깃털로 만든 우선, 자루가 달린 둥근 부채인 단선, 접었다 펼 수 있는 접선, 모양이나 용도가 다른 별선 등 크게 네 종류로 구분할 수 있다.

깃털 부채는 종이가 발명되기 전 만들어진 것으로 종이 발명 이후 단선, 접선이 주종을 이뤘다. 단선은 모양이나 크기에 따라 오엽선과 연엽선·태극선·까치선·공작선·파초선·대금선·중원선·대원선 등이 있다. 접선에는 합죽선과 백선·칠선 등이 있으며 아동들을 위한 아동선과 민화가 그려진 민화선도 있다.

접선 중에서도 합죽선은 만드는 공정이 까다롭고 잔손이 많이 가 일제시대 일본인이 그 기법을 배우려 했으나 끝내 배우지 못했을 정도이다. 반면 단선은 접선보다 비교적 만들기 수월해 일반인도 쉽게 만들 수 있다.

한맥 한지공예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김진선씨(52, 대전시 유성구 전민동)는 ″부채살을 접었다 펴는 접선은 제작과정이 번거롭고 섬세한 주의가 요구될 뿐만 아니라 대나무 고르는 것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 반면 단선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치면 일반인들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초배작업을 끝낸 단선
단선을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우선 대나무 살을 가늘게 깎아 부채 살을 만들고 얇은 한지 위에 올려놓고 풀칠을 한다. 이것을 ′초배′라고 한다. 부채면은 주로 한지를 사용하는데 닥종이야 말로 은근한 화려함과 우아함이 부채의 곡선미와 잘 어우러지는 최고의 원자재다. 그림을 그린 종이나 원하는 색한지를 다시 붙이는 ′도배′과정을 거친 뒤 담요를 덮고 발로 밟아 풀이 잘 붙도록 해야 한다. 풀이 마르는 동안 부채가 뒤틀리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풀이 완전히 마르면 부채 모양을 그리고 가위로 오려낸다. 오려낸 가장자리의 테두리를 감싸서 선을 두르는 ′변선 두르기′과정까지 거치면 부채 모양이 완성된다. 변선을 두르기 전 꽃지를 오려 붙이면 부채의 멋을 더 할 수 있다. 손잡이를 만들어 붙이고, 종이에 기름을 먹이면 부채가 완성된다.

접선은 제작 과정이 100일 이상 걸리지만 단선은 며칠에서 몇 시간 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여름 방학 숙제도 할 겸 시원한 부채를 만들어 보는 것도 좋은 일이다. 대전에서는 한맥 한지 공예 연구소(861-6413)에서 단선 만드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

◈한맥 한지공예연구소 김진선씨.
김진선씨는 ″부채는 한지의 은은함과 여백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또, 걸어 다닐 때 휴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햇빛 가리개, 비막이 까지 가능한 다용도 도구″라며 ″직접 만들면서 느끼는 여유로움도 부채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한 손의 여유를 잃은 지 오래다.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컴퓨터 자판은 양손으로 쳐야 하고 오른손은 마우스라는 도구를 번갈아 잡아야 하는 번잡함이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걷기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운전대를 잡아야 하기 때문에 부채를 쥐고 바람을 일으킬 만한 여유조차 없다.

이 여름, 무더위를 식히며 부채를 만들고 누구에게나 평등한 바람일 일으키는 부채의 매력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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