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지체장애인 사회편견으로 취업 못해

천안이 배출한 세계적인 마라토너 이봉주.
그의 이름을 따서 붙인 성거읍 ′봉주로′를 달리다보면 도로와 맞닿은 한 학교를 만나게 된다.

「인애학교」
학교 이름 뒤로 초등학교나 중학교 등의 수식이 붙지 않는, 조금은 낯선 학교다.
지난 93년 개교한 천안인애학교는 천안지역 유일한 정신지체 특수학교다. 천안을 비롯한 인근 3개 시·군 장애학생들 2백50여명이 유치원, 고등부, 전공과 과정에 다니고 있다.

인애학교는 설립 당시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었다. 91년 성거읍 소우리 학교부지를 매입했을 때 인근주민 3백22명이 학교설립 반대를 주장하는 진정서를 관계기관에 접수했다. 장애인학교가 들어서면 인근지역 개발이 저하되고 재산권이 침해된다는 이유에서 였다.
8월에는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이 학교의 조기설립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교육부장관 면담요청, 주민설득, 항의방문, 공청회 등을 통해 같은 해 10월 입지승인이 어렵게 허가됐다.
그로부터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동안 인애학교는 학령기 장애아동을 위한 특수교육기관으로 지역에서 뿌리내렸다. 학교 설립을 반대했던 주민들도 이제 긍정적인 입장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인애학교와 그곳에서 생활하는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한 지역사회 편견은 정말 완화됐을까?

갈곳 없는 인애학교 졸업생들

정기철(23)씨는 매일 아침 7시면 집을 나선다. 아산에서 카풀로 천안까지 온다. 천안에서 다시 시내버스를 타고 성거읍에 있는 직장까지 출근한다. 그의 직장은 자동차 의자 커버를 만드는 연경사(대표 이의경).
이곳에서 정씨는 제작된 커버를 조립하고 운반하는 일을 맡는다. 일은 단순작업의 반복이다. 보기에 따라서는 하찮은 일로도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그에게 이 일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소중하다.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하고, 가치를 인정받는 것. 그것이 정씨에게는 너무나 즐겁다.

정씨는 경도정신지체와 편마비를 갖고 있는 장애인이다. 장애 때문에 왼쪽 팔과 다리 등 몸 한쪽 움직임이 불편하다. 선천성 장애를 갖고 태어난 그도 인애학교 졸업생이다. 올해 정씨는 동료 15명과 함께 천안인애학교 전공과를 첫 졸업했다.
전공과는 천안인애학교 고등부를 졸업한 학생들이 좀 더 직업적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개설된 학과다. 지난 2000년 개설 이후 고등부 졸업생들은 전원 전공과로 진학하고 있다. 전공과에 다니며 학생들은 ‘자신의 일을 갖는 상상’을 한다.

하지만 전공과 졸업생들이 모두 정씨처럼 실제 일을 갖게 되는 것은 아니다. 15명 졸업생 가운데 현재 취업이 성사돼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은 정씨를 포함해 단 세명 뿐이다. 일을 갖지 못한 졸업생들은 무엇을 하며 지낼까?
전공과 1학년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 한현희씨의 말이다.

“대부분 집에서 머무르게 됩니다. 학교에서는 사회통합을 위한 교육을 받았지만 정작 졸업 이후에는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에서 분리된 채 다시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됩니다. 본인이나 가족들에게도 또다시 부담만 강요되는 셈이죠.”

′장애인=무능력자′ 편견 없어져야

전공과 재학생들의 졸업을 앞두고 교사들은 재학생들의 취업을 한명이라도 더 늘리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지역업체들에 공문도 발송하고 직접 업체를 찾아가 장애청소년들의 취업을 부탁했다.
그러나 대부분 업체의 반응은 싸늘했다. “장애, 그것도 지체장애가 아닌‘머리가 좀 모자란’정신지체장애인이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이냐”며 오히려 면박을 당했다.
지난해 전공과 2학년을 맡았던 교사 김경희씨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정신지체장애인에 대한 지역 사회 편견이 그토록 깊은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정신지체장애인은 곧 무능력자라는 고정관념 앞에 직업 갖기를 원한 장애청소년의 꿈은 산산히 깨졌다는 것.

정신지체장애인은 정말 일을 할 수 없을까? 정기철씨를 채용한 연경사의 취업담당자 윤인구 차장의 생각은 달랐다.
“비장애인 근로자들과 같을 수야 없죠. 예전에도 장애인을 채용한 적은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지체장애인이었지 정신지체장애인은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조금은 걱정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대만족입니다. 단순 반복작업의 경우에는 일처리가 오히려 비장애인들보다 더 빈틈없는 걸요. 주어진 일에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기철씨로 사내 분위기도 한결 좋아졌습니다.”

재활전문가들도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직업재활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확신한다.
나사렛대 인간재활학과 김종인 교수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은 학습의 한계는 있지만 노동의 한계는 없다”고 말했다.
특히 김 교수는 “복잡한 직무가 아닌 청소나 운반, 조립 같은 단순 반복작업의 경우에는 정신지체장애인이 노동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발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정신지체장애인들의 고용을 꺼리는 기업주들의 편견과 미흡한 고용지원체계가 정신지체장애인들의 취업을 가로막는다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학교 내 전문직업교사 배치 필요

그는 미흡한 고용지원체계 개선을 위해서는 정신지체장애청소년들의 개인 특성을 분석하고 적합한 직무를 연결해주는 전문직업교사 배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문직업교사 배치 필요성에 대해서는 천안인애학교 전공과 교사들이나 학부모들도 공감했다.
김경희씨는 “취업이 됐더라도 한동안은 정기적인 방문을 통해 학생을 관리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현재는 교사의 몫이죠. 하지만 교사가 그 일까지 떠맡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학교 내 업무도 만만치 않은 실정에서 취업한 학생의 사후 관리까지 감당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라는 목소리다.

천안인애학교 학교운영위원회 학부모위원인 김교식씨. 그의 자녀도 정신지체장애인으로 현재 인애학교에 재학중이다. 김씨는“정신지체장애인이라고 해서 언제까지 부모가 책임질 수도 없는 노릇 아니냐”며 “직업을 통해 그들도 보람과 독립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위원은 “전문직업교사가 학교에 배치된다면 학생들에게 적합한 직종의 발굴이나 연결이 훨씬 나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기철씨는 월 50여만원의 급여를 매달 꼬박꼬박 저축하고 있다. 저축액이 커지면 결혼할 계획도 갖고 있다. 인애학교에 다니고 있는 2백50여명 정신지체청소년들. 그들도 기철씨처럼 자신의 꿈을 현실에서 맛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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