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힘들어도 사랑으로 극복해요″

″오늘은 장애인의 날이잖아요. 저희들이야 다음주에 오면 되지만 여기에 있는 아이들은 이런날 아니면 밖으로 놀러 나가기가 쉽지 않잖아요″

청각장애인 복지시설인 정화원(대전시 대덕구 대화동)을 찾은 한남대학교 수화 동아리 '돋을볕'의 이윤정(한남대학교 응용미술학과 3)씨는 정화원 아이들이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나들이를 나가 헛걸음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다음에 다시면 된다며 후배들을 추슬러 다시 학교로 향했다.

수화 교실 등 편견없애기 위해 노력

한남대학교 수화 동아리 '돋을볕'은 지난 14년간 매주 토요일 장애 시설을 방문해 수화 공연 등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현재 120여명의 동아리 회원은 매주 토요일 평강의 집, 정화원 등 장애시설을 방문하고 주중에는 교내에서 두 차례 수화교실을 열어 비장애인들의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없애는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이런 활동들이 알려져 매스컴에도 오르내리지만 매주 토요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하는 것은 한번도 거르지 않았다. 이날은 마침 장애인의 날이어서 수화에 능숙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대전시의 초청으로 시청에서 공연을 해야 하기 때문에 봉사팀은 대부분 1학년으로 구성됐다.

오전 11시 정화원을 찾기 전 돋을볕 24명의 동아리 회원들은 평강의 집을 찾았다.
중증장애인 요양 시설 평강의 집(대전시 대덕구 대화동, 원장 노준호)에는 대부분 중증 장애를 앓고 있는 77명의 아이들이 보호를 받고 있다. 아이들이라고는 하지만 적게는 3살에서 많게는 46살까지 여기에서 생활하고 있다.

평강의 집 노준호(32) 원장은 "평강의 집에서 보호를 받고 있는 장애아들은 보통 서너가지의 장애가 겹친 중증 장애아들입니다. 대부분 몸을 잘 가누지 못하죠. 40명의 선생님들이 하루 12시간씩 교대 근무를 하고 있다"며 한 선생님 당 서너명의 아이들을 돌보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말했다.

노 원장은 "지난 96년 1월 1일 평강의 집이 문을 연 후로 계속 돋을볕 학생들의 찾고 있습니다. 봉사활동 점수를 위해 중·고등학생 또는 대학생들이 한시적으로 찾기는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지속적으로 시설을 방문하는 일"이라며 "아직 능숙하지 않은 학생들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정기적으로 우리 시설을 찾아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옆집 친구가 놀러와 주는 일과 같은 의미입니다"라고 돋을볕의 활동에 의미를 부여한다.

중증 장애아 돕는 일 쉽지 않아

평강의 집 아이들에게 토요일은 언니 오빠들을 만나는 일주일 중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마침 이들이 찾아간 오전 11시 30분부터 오후 1시까지는 아이들의 점심시간.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밥을 먹이는 일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목을 세울 수 있는 아이들은 가슴에 안고, 몸이 뒤틀려 움직일 수 없는 아이들은 다리 사이에 끼워 몸을 고정시키는 일이 밥을 먹이기 전 먼저 해야할 일이다.

부드러운 선식을 먹이지만 이것을 씹는 일도 중증 장애아들에게는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턱으로 흘러내리는 음식물을 닦아주며 선식 한 그릇을 먹이는데 한 아이당 보통 30분이 넘게 걸린다.

이날 평강의 집을 찾은 회원들은 대부분 1학년생들.
보통 두 번씩은 와 봤지만 처음 방문하는 학생들도 꽤 많았다.
이윤정씨도 선생님들에 비하면 서툰 솜씨지만 아이들을 안아 밥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 채우는 일은 후배들이 보고 따라하기에는 충분하다.

소변을 본 강지예양의 기저귀를 갈아 채우던 이씨는 "저희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아이들 몸이 대부분 꼿꼿하게 굳거나 정상적이지 않은 모양으로 굽어 있어 옷을 갈아 입히거나 목욕을 시키는 일이 쉽지가 않아요"라며 "하지만 사랑으로 안아주는 일은 자신있게 할 수 있어요"라고 활짝 웃으며 말한다.

이날 가장 인기 있었던 채송화반의 이진솔(9)양. 대전 MBC의 뉴스 취재로 19일 방문했던 언니 오빠들이지만 하루만에 보니 더 반가운 모양이다.
다른 아이들보다는 건강이 좋은 진솔이는 이방 저방을 뛰어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신나게 놀더니 결국 점심 먹은 지 30분만에 바지를 입은 채로 대변을 보고 말았다. 오늘만 벌써 두 번째 목욕이다.

평강의 집 아이들은 새벽 시간 자는 도중에 대·소변을 보는 일이 많아 일찍부터 목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새벽 5시면 모두 일어난다. 또 진솔이 처럼 용변을 볼 때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목욕을 한다. 대소변 묻은 기저귀와 음식물로 지저분한 옷가지들로 오전 한나절에만 한 트럭 분량의 세탁물이 나온다.

이씨는 "아이들의 옷을 보면 모두 물이 빠져 있고 감촉이 까실까실해요. 너무 많이 빨았기 때문이죠"라며 아이들의 피부가 상할 것이라며 걱정한다. 또 이씨는 "벌써부터 이렇게 더운데 정작 무더운 여름에는 어떻게 버틸지 걱정스럽네요. 너무 목욕을 자주해도 건강에 좋지 않다고 하던데"라며 다가오는 여름을 걱정한다.

아이들에게 밥을 모두 먹인 시간은 12시 30분. 돋을볕 회원들이 도와줘 점심시간을 평소보다 훨씬 일찍 마쳤다. 이런 날은 선생님들이 조금이나마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경력 6년의 양주향(25)씨는 "돋을볕 회원들이 오는 날은 저희들도 아이들을 마음놓고 맡길 수가 있어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각별하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여러번 왔었기 때문에 아이들도 친언니 오빠처럼 친구들을 잘 믿고 따르죠"라며 "오늘은 1학년 학생들이 많기는 하지만 믿고 맡길 수 있어요"라고 돋을볕에 대한 강한 믿음감을 표시했다.

장애인-정상인 하나 되는 세상 기다려

오후 1시까지 이들은 함께 노래를 부르고 복도를 뛰어다니며 이들과 하나가 됐다.

정윤정(사회아동복지학부 1)씨는 "처음 복도에 들어섰을 때는 가슴도 많이 떨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옆집 꼬마들 같고 너무 예뻐요. 몸은 불편하고 표현은 잘 못하지만 저희 말을 알아 듣고 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면 너무 사랑스러워요"라고 첫 봉사활동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돋을볕 회원들은 항상 평강의 집에서의 봉사 활동을 마치면 바로 옆의 청각 장애인 복지시설인 정화원을 찾아 수화 공연을 펼친다. 하지만 이날은 정화원 아이들이 엑스포 과학공원으로 봄나들이를 떠났기 때문에 이들은 학교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씨는 "금방 나온 평강의 집에 다시 돌아가면 아이들을 떼어내기가 너무 힘들어요. 옷깃을 잡고 놓지 않으며 많이 울죠. 그럴 때는 저희들이 찾는 것이 잘 못 하는 일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라며 봉사 활동보다 아이들을 뒤로 한 채 길을 나서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물론 제 전공에 맞는 직업을 얻겠죠. 하지만 평강의 집과 정화원을 찾는 일은 평생 직업보다도 더 중요한 숙명이라고 생각해요"라며 밝게 웃는 이윤정씨에게서는 대중 문화에 휩쓸려 자신들의 줏대를 잡지 못하는 대학생들과는 다른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4월 20일은 장애인의 날이다.
장애인의 날이나 연말 연시만 되면 반짝 세일을 하듯이 어려운 이웃들을 찾는 많은 사람들. 이 속에 나 자신도 속해 있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한남대 돋을볕 동아리의 14년간 변하지 않는 장애인 사랑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모두가 하나되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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