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돌이 양심방′도입 후 거부 몸짓 늘어
 일선 부서 연결고리 여전 ″아직은…″



경찰내부에서 청탁, 뇌물, 비호 등의 용어가 1980년대까지 자주 등장했다.
특히 지난 99년 경찰의 서울 미아리 윤락촌 대규모 수사에서 드러났듯이 관할 파출소 직원에 대한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상납고리는 사회에 큰 충격을 던져주기에 충분했다.
비호 대가로 받은 촌지는 경찰의 신뢰를 일거에 무너뜨렸고 공권력 추락을 부채질했다.
내부 개혁을 부르짖던 당시 경찰로서는 하루아침에 공든 탑이 무너진 셈이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포돌이 양심방’이다.
포돌이 양심방은 지난 2000년 4월 경찰 내부 비리를 척결하기 위해 경찰청이 자체적으로 도입했다.
피의자로부터 사건무마용의 뇌물, 민원해결에 따른 촌지 등을 자체적으로 거부하고 반납하겠다는 것이 포돌이 양심방 도입 취지다.

포돌이 양심방은 현재로서는 어느 정도 목적을 달성한 것으로 보인다.
적어도 이 제도가 도입된 후 천안경찰서에서 금품수수에 연관된 경찰사건은 단 한건도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 스스로도 금품을 받은 직원은 현재 없다고 장담했다.
그렇다면 사건 당사자인 피의자나 민원인도 그럴까.
사건해결을 바라는 피의자의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여전히 돈이나 물품으로 경찰을 구워보려는(?) 사례가 지난해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음주운전 단속 등이 증가하면서 민원인의 현금 공세도 많아졌다. 천안경찰서가 운영한 포돌이 양심방에 따르면 지난해 총 407건의 민원인 금품수수 시도가 발생했다.

◆ 경찰에 잘 봐달라면 얼마들까

피의자나 민원인이 자신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경찰에 직·간접적으로 건네는 금품은 얼마나 될까.
지난 한해 천안경찰서 포돌이 양심방에 접수된 민원인들의 금품 제공 현황을 살펴보면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금품은 물품보다는 현금 제공이 압도적으로 많다.
작년 포돌이 양심방에 접수된 407건 가운데 현금제공이 대략 95%정도를 차지한다. 금액만도 4500여만원에 육박한다.
경찰개혁과는 무관하게 여전히 경찰의 특혜를 받고자 하는 민원인들의 숫자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건수로 따져보면 민원인 들은 사건 당 평균 11만원을 경찰의 수고비조로 지출한 꼴이다.
경찰에 금품을 제공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음주 단속 등에서 빼달라는 비호용과 민원해결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 미아발견에 따른 감사, 피의자의 사건무마용 등 각양각색이다.
포돌이 양심방에 접수된 사례를 살펴보면 금액단위가 높은 것은 역시 경찰단속에 적발된 경우가 많다.

◆ ″없던 걸로 해 달라″ 단속에 걸린 이들의 몸부림

지난 1월 역전파출소 박모 순경은 청소년 제한시간외 영업으로 단속된 관내 PC방 업주가 파출소를 방문해 “한번만 봐달라”며 현금 50만원을 제공하는 것을 깨끗이 거절하고 포돌이 양심방에 이 내용을 접수했다.

같은 달 한 음주운전자는 목천파출소 김모 순경에게 전날 음주운전으로 적발됐다.
혈액채취를 요구한 이 운전자는 다음날 파출소를 찾아 “다른 사람의 혈액으로 바꿔 달라”며 현금 100만원을 건넸다가 거절당했다.

작년 9월 광덕파출소 김모 경사는 음주단속 근무 중 단속된 음주운전자가 본인의 운전면허증 대신 처남의 운전면허증을 제시하며 “이 면허증으로 단속 처리해 달라”고 현금 30만원을 제공했지만 거절했다.

한 운전자는 현금으로 단속을 무마하려다가 경찰로부터 따끔한 경고까지 받았다.
작년 8월5일 오후 4시30분경 백석파출소 한모 순경은 112순찰근무 중 백석동 알찬상회 앞 노상에서 신호위반 차량을 발견했다.
한 순경이 차량에 다가가 면허증 제시를 요구하자 운전자는 “잠시 옆에서 얘기 좀 합시다”며 도로 옆 건물로 한 순경을 데리고 갔다. 이 자리에서 운전자는 “사실은 무면허인데 좀 봐달라”며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한 순경에게 건네려 했다. 한 순경은 “뇌물공여죄로 형사 입건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뒤 운전자를 무면허 운전으로 입건 처리했다.

◆ 민원해결·고마움 표시 현금으로

단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노골적인 현금 공세와 달리 조금은 인간적인(?) 현금 제공도 있다.
경찰의 친절한 모습이나 성의있는 업무처리에 감동한 민원인들이 인사나 고마움의 표시로 제공하는 것.
금액도 앞서의 것보다는 소액인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것들 역시 경찰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거절의 대상이다.

작년 10월 동부파출소 김모 경장은 112순찰 근무 중 집을 찾지 못하고 길을 헤매고 있는 노인을 발견했다. 컴퓨터 조회를 통해 노인의 주소지를 알아낸 김 경장은 순찰차로 즉시 노인을 집까지 안전하게 귀가시켰다. 가족들은 연신 “고맙다”며 10만원을 건넸지만 김 경장은 정중히 거절했다.

광덕파출소 김모 경장은 작년 9월 관내 이장이 파출소를 방문해 “직원들과 식사 한번 못했는데, 회식비로 쓰라”며 20만원을 제공했지만 공손하게 거절했다.

지난해 6월18일 새벽 1시경 경비교통과 이모 경사는 성정지하도 입구 노상에서 음주운전 단속근무를 하고 있었다.
당시 한 운전자가 “차량시동이 걸리지 않는다”며 이 경사에게 다가와 도움을 요청했다. 차량 점검을 통해 방전으로 인한 것임을 확인한 이 경장은 즉시 순찰차에 비치하고 있던 점프선을 이용해 시동을 걸어주었다. 운전자는 “고맙다”며 “야식비에나 보태 쓰라”고 돈을 건넸다. 물론 이 경사의 거절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다.

같은해 5월20일 응급환자를 태운 한 차량이 단대병원 응급실에 가야 한다며 112순찰근무중인 서부파출소 유모 순경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유 순경은 112순찰차로 환자를 안전하게 병원까지 후송시켜 주었다. 환자 측은 “정말 감사하다”며 유 순경에게 10만원을 제공하려 했지만 역시 거절당했다.

◆ ‘포돌이 양심방’의 빛과 그림자

포돌이 양심방의 성과에 대해서는 경찰 스스로 자신한다.
포돌이 양심방 운영을 맡고 있는 천안경찰서 청문감사담당관실의 관계자는 “포돌이 양심방은 경찰과 민원인들간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를 없앴다”며 “깨끗한 경찰 이미지를 구현하는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 내부적으로는 올바른 경찰상을 구현한 직원이 포돌이 양심방에 접수하면‘깨끗한 손’ 경찰관으로 선발, 표창을 실시함으로써 사기 진작도 꾀하고 있다.

또한 경찰의 업무 특성상 포돌이 양심방은 꼭 필요한 제도라는 여론도 만만찮다.
민원인으로서는 경찰과 맞닥뜨리는 사건에 연루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해결하려는 경향이 짙기 때문이다.
회사원 이모(32·천안시 봉명동)씨는 “하다 못해 교통단속에 걸려도 빠지려 하는 게 민원인들의 입장”이라며 양심방 운영에 수긍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포돌이 양심방의 그림자에 대해 거론한다.
포돌이 양심방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양심방에서 알 수 있듯 민원인과 경찰의 연결고리는 여전히 상존한다는 지적이다.
양심방에 접수되지 않은 드러나지 않는 금품제공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혹이다. 이들은 양심방의 존재 자체가 다른 가능성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천안경찰서의 경우 파출소 등 외근 부서에서 포돌이 양심방으로 접수한 건수가 전체의 90%를 차지한다. 본서 부서 가운데 사건피의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수사과나 형사과, 경비교통과 등에서 양심방을 이용한 것은 채 10%도 되지 않는다.

사건피의자와의 은밀한 거래가 절대 사라졌다는 경찰의 입장표명에도 이를 고스란히 믿으려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경찰로서는 곤혹스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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