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가슴에 머리 묻고 울고 싶어요″

 어느 여자재소자의 '부치지 못한 편지'


6일 오전 10시 한국과학기술원 대강당.
이곳에서는 '2001 교정위원 연찬회'가 열리고 있었다.
한참동안 공식 행사를 치르느라 경직됐던 분위기는 참석자들의 가슴을 저미게 했던 한 여성 수감자의 애절한 사연으로 온통 눈물바다가 됐다.

식전행사와 개회식 등 공식행사가 끝난 뒤 단상으로 앳된 얼굴의 여성이 조용조용 걸어나왔다.
청주여자교도소에 수감중인 이지현(가명·22)씨. 어찌해서 교도소라는 격리된 곳에 수용되게 됐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너무도 선한 얼굴이었다.
검정 치마에 흰 블라우스를 입은 그녀는 단상 앞에 서서 준비해온 편지를 침통한 표정으로 읽어 내려갔다.

'어머니에게 드리는 편지'.
가슴속에 흘러내리는 눈물로 편지를 썼지만 차마 보내지는 못한 편지였다.

편지는 어머니에 대한 연민과 그리움으로 시작됐다.
"가을의 문턱에 올라 12척 담 밖으로 보이는 산자락의 알록달록 단풍이 예쁘기만 하더니 아침에 불어오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밉니다. 해지고 어두운 밤이 오면 유난히도 엄마의 얼굴이 떠올라 차마 소리내지 못하고 빨랫줄에 걸어놓은 수건을 들고 화장실로 갑니다. ∼(중략)∼ 집앞을 지나가는 내 또래아이들이 교복 차려입고 학교가는 모습을 한참이나 뚫어지게 쳐다보고는 뒤돌아 서서 눈물 훔치며 애타게 나를 불렀을 엄마.∼(중략)∼"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그녀는 벌써 눈가에 이슬이 맺혀지기 시작했다. 애절한 사연은 눈물섞인 음성으로 계속됐다.

"철이 없던 그 시절에 어쩌다 집에 들어갈라 치면 골목사이로 들리는 아버지의 고함소리와 엄마의 울음소리가 너무 싫었습니다. 술 먹고 살림 부수는 것도 모자라 불평없이 살아준 엄마를 발로 때리고 담뱃불로 지지는 아버지는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웠습니다.
게다가 아버지의 횡포가 아무리 심해져도 큰소리 한번 치지도 못하고 술 깬 아버지 해장국 끓여주시는 엄마가 너무나 한심하고 답답해 보여 엄마처럼 살지 않겠다며 다짐했었습니다."

편지가 중간을 넘어서면서 그녀의 얼굴에는 아버지에 대한 분노가 역력했다. 그 분노는 어두운 삶을 살도록 방치해 놓은 세상과 남성들에 대한 분노로 변했다.

"집 떠나와 주머니에 돈이 있을 때는 친구가 좋았고 노래방으로 나이트로 천방지축 헤매며 노는 것도 좋았습니다. 왜 이제야 집을 나왔는지 가끔 생각나는 엄마 얼굴만 아니면 후회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녹녹하지 않았습니다.

수중에 돈이 떨어지니 나 몰라라 떠나버린 친구들, 일만 죽도록 시키고 월급을 떼어먹는 사장, 하녀처럼 부려먹고 엄청난 빚으로 족쇄를 채우는 술집주인들, 어쩌다 만난 남자와 살림 차리고 나니 애닯게 번 돈 갖고 날라버린 남자."

찢겨진 마음으로 편지를 읽던 그녀의 눈에는 진한 회한의 눈물로 뒤범벅됐다. 한동안 눈물을 훔쳐내느라 말을 잃었다.

"이제와 생각하니 엄마의 매섭고도 강한 회초리의 아픔이 더 그립게만 느껴집니다. 미련한 것이 사람이라고 길고도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 다시 눈을 떠 빛을 보려하니 어머니의 못난 딸이 머문 곳은 이 곳 교도소의 작은 방 한 귀퉁이였습니다.
누런 백열등 불빛의 온기만으로 보내야했던 지난 겨울의 매서운 겨울바람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햇살에 부셔졌던 등에 흐르던 땀 한 자락도 저에게 주어진 이 작은 공간에서 온전히 버틸 수 있었던 한마디는 "보고픈 당신, 어머니"였습니다."

여기저기서 훌쩍훌쩍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 하나 미동도 하지 않았다. 연신 눈물만 닦아 낼 뿐이었다.
한 많은 삶을 선택한 자신의 생에 대한 한탄과 더불어 따뜻한 어머니 품을 그리는 내용으로 편지는 끝을 맺었다.

"이제는 엄마의 체온에서 배어 나오는 그 냄새가 그립습니다. 엄마의 젖가슴에 머리를 묻고 펑펑 소리내어 울고 싶습니다. 그 눈물 속에 저의 부끄러운 모습과 기억들을 모두 흘려 보내고 엄마가 허락해준 둥지 안에서 어리광도 부리고..., 가끔은 엄마의 다리를 베게 삼아 깊은 잠도 취하고 싶습니다.∼(중략)∼
엄마, 너무나 부르고 싶었어요. 엄마, 너무나 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말 늘 하고 싶었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할 수 없었어요. 엄마! 엄마! 엄마! ... 사랑해요!"
결국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면서까지... 단상 아래의 모든 사람들도 얼굴을 감싸안으며 오열했다. 편지가 낭독되는 동안 쥐죽은듯이 조용했던 대강당은 순식간에 울음바다가 됐다.

너무도 애절한 사연에 눈물이 자꾸만 쏟아져 그녀의 얼굴을 바라볼 수가 없었다. 선하고 앳된 얼굴의 그녀가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을까 궁금했다.

그녀가 참여한 합창공연이 끝나고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인터뷰가 금지되어 청주여자교도소 정형숙(41) 교무과장에게 그녀의 사연을 들을 수 있었다.

『이지현(가명)씨의 아버지는 알콜중독자로 매일 술만 먹으면 어머니를 때리고 폭언을 일삼았다. 그런 아버지가 죽도록 미웠고, 불평한마디 없이 그 다음날이면 항상 해장국을 끓여주시는 어머니가 싫었다.
그녀는 집을 나와 방탕한 생활을 했다. 집 나와 엉망으로 살았기 때문에 그녀는 차마 집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녀가 집에 들어갔는데 그때도 아버지는 술을 먹고 어머니를 때리고 있었다. 아버지와 언성을 높이던 중 아버지가 먼저 부엌의 과도를 들어 그녀와 어머니를 죽이겠다고 달려들었다. 그녀는 아버지의 칼을 뺏어 실랑이를 버리다 아버지를 찔렀다.』

이것이 그녀가 차가운 교도소에 머물게 된 사연이었다.

그녀는 아버지를 살해한 죄로 7년형을 받아 청주여자교도소에서 3년째 지내고 있다.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항상 꿈속에 나타나 웃고있는 아버지를 볼 때면 너무도 무서웠지만 그녀는 웃고있는 아버지가 자신을 용서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때는 아버지가 왜 그토록 죽이고 싶도록 미웠는지,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는 그녀는 이제는 폭음만을 일삼던 아버지가 보고 싶고 그런 아버지라도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녀는 지금 청주교도소에서 미용기술을 배우고 있다. 미용기술을 열심히 배워서 세상에 나오면 미용실을 차려 어머니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다. 그녀는 자신이 나갈 때까지 나이든 어머니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계시는 게 소원이다. 그녀로 인해 불행해진 어머니의 삶을 보상해드리는 것이 유일한 바램이다.

사람들은 교도소를 우리와는 거리가 먼 다른 세계로 여긴다. 교도소에 수감된 사람들은 왠지 험악한 인상을 가졌고 경계해야 될 상대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날 만나본 수용자들은 한결같이 선한 인상에 표정들도 밝았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동안 정 교무과장이 당부한 말이 귓전에 맴돌았다.

"일반인들은 교도소 수감자들을 우리와는 다른 사람으로 여겨요. 수감자들은 뿔이라도 하나 달렸을 것 같고 아니면 험악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수감자들 역시 우리와 똑같은 사람입니다.
사람들은 교도소를 나와는 상관없는 먼 곳에 있는 것이라고 여기는데 실제 우리와 아주 가까이 있습니다. 만약 그녀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다면 교도소에 들어올 리도 없겠죠. 물론 가정환경이 나쁘다고 해서 모두들 나쁜 길로 빠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의 극한 상황을 봤을 때 공감이 갑니다.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녀가 불쌍합니다.
여자 죄수가 그렇듯이 그들은 피해자이자 가해자예요. 아버지, 남편에게 상처를 입었죠. 이 사람들이 밖에 나가면 따가운 시선으로 바라보지 말고 따뜻하게 맞아 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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