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5시간 노동 …노예 부리듯

 외국인 노동자 삶과 애환(중)


지난 해 산업 연수생으로 한국으로 송출되어온 구엔씨(26).
코리안 드림을 찾아 베트남을 떠나온 것은 아무리 곱씹어도 잘 한일이지만 이곳에서 생활만 떠올리면 지쳐버린다. 불과 1년 남짓이지만 베트남에서의 생활과는 너무 다른 패턴에 적응이 쉽지 않다. 더구나 한국에서 억울하게 당한 동료들의 말을 들을 때면 꿈의 땅 한국이 두렵기까지 하다.

체불된 임금을 받으려다가 회사측의 농간으로 출입국 사무소로 붙잡혀간 동료 얘기를 듣고 망연자실했다. 지난 해 12월에 있었던 일이다.
부산에 있는 모 업체에 산업연수생으로 있던 베트남 노동자 K씨.
철강업체에 근무하면서 차별적인 대우와 상습 구타, 욕설을 삭이지 못하고 사업장을 뛰쳐나왔다. 물론 4개월의 임금을 받지 못했다. K씨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상담하는 단체에다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진술서와 위임장을 받은 이 단체에서 회사측에 임금 지급을 요청하자 ″니 네 들이 뭔데 돈을 달라 말라 하느냐″며 오히려 화를 냈다. 노동청 관계자도 역시 본인이 아니면 임금을 줄 수 없다는 원칙적인 입장만 내세웠다. 본인이 노동청에 가는 수밖에 없었다. 본인을 설득하여 위험을 무릎쓰고 노동청에 갔다. 하지만 돈만 건네주겠다던 회사측은 K씨를 불법 체류자로 넘겨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동료들 소문을 들으면 답답하기만 하다. 송출과정에서 지나치게 비싸게 지불한 비용이라던가 베트남에서 기다리는 동생과 부모를 생각하면 ′참아야 한다′는 말을 하루에도 수십 번씩 되뇌인다.

한국인 노동자의 상전행세 도 넘어


구엔씨의 하루 일과도 온통 작업과의 싸움이다.
오전 7시. 천근같은 몸을 일으켜 세우면 간단한 식사 후 8시부터 오전 작업에 들어간다.
한시간 작업 후에 10분 휴식으로 정해져 있지만 일을 하다보면 그렇게 될 수가 없다. 쉴새 없이 돌아가는 기계 때문에 쉬고 싶어도 앉아 있을 시간을 기계가 주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거의 오전 내내 작업을 하는 꼴이 된다. 더구나 작업장에 먼지는 숨을 못 쉴 만큼 목을 턱턱 가로막는다. 판자처럼 넙적하게 나오는 고무판은 용접용 고무장갑을 끼어도 뜨겁기는 마찬가지다. 코리안 드림을 위해 이런 일을 해야하지만 자기네들에게 일을 맡기다 시피하고 게으름만 피우는 한국인들을 보면 얄밉다 못해 울컥 화가 치민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이렇게 일을 하다보면 오전 내 휴식 시간은 10여분 정도.

낮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
점심이라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배려는 찾아보기 힘든 식단이다.
오후 1시부터 시작되는 오후 작업도 오전의 그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더럽고 힘든 일을 도맡아 하는 것은 그래도 참을 만하다. 욕을 하면서 시키는 일은 정말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인간적인 모멸감이 자신들에게는 사치스런 단어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도 있다. 멀리 돈을 벌려 왔지만 인간적인 대접을 받으면서 일을 하고 싶다면 욕심일까.. 상당수 한국인 노동자의 문화가 낮은데다가 눌려 지내왔던 사람들이라 모처럼 외국인들이 오니 상전행세가 도를 넘고 있다. ′개새끼′는 통용어이고 중국인에게 어김없이 ′떼국 놈′이라는 말이 나온다. ″나도 고향에 가면 귀한 아들이고 거기서는 배울 만큼 배웠는 데...″고 하지만 곧바로 머리를 흔들어 버리고 만다.

구엔씨가 작업과정에서 가장 염려하는 것은 바로 안전 사고다.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는 절대 다치지 않아야 한다고 서로 당부하는 모습이 이제는 낯설지 않다. 한국인과 너무 차별적이다. 한국인 근로자가 다치면 대개 공상처리를 한다. 일정액의 치료비에다 요양기간동안 위로금을 주는 게 일반적이다. 그렇지만 병원비만 겨우 주는 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예우다. 2주 진단을 받더라도 회사측이 필요로 하면 그전에 작업장에 나와주어야 한다. 그래야 후환이 두렵지 않다.
잔업도 그렇다. 외국인에게 잔업 여부는 선택할 문제가 아니다. 회사측에서 결정을 하고 통보만 하면 된다. 현장에서 아무리 몸이 아파도 회사에서 잔업을 요구하면 어쩔 수 없다. 자신들의 의견이 존중되지 않고 무조건 회사측 의견에 따라야 한다는 것도 여간 힘드는 일이 아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날은 하루 작업시간은 15시간에 달하게 된다.
파김치가 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하면 대개 잠에 떨어진다. 옆방에 있는 카자흐스탄 노동자들은 다르다. 일이 힘들고 고달픈 만큼 매일 술로 시름을 달랜다. 그러다 보니 몸이 망가진다. 악순환이 되면서 작업능률도 떨어지고 회사 눈에 벗어나게 되니 처신하기만 어려워진다.

전화·노래방서 고단함 달래

이들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전화다.
이국에서의 생활이 외롭고 쓸쓸하니 동료들과의 전화 통화로 위로하고 있다. 부산에 있는 친구에게도 걸고 일본에 있는 동료들에게도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통화로 시름을 던다. 만나기가 힘드니 궁금한 점도 많다. 어떻게 지내는 지, 지난번에 다친 손은 치료가 끝났는지 등 신상에서 체불 대책 등 다양한 정보가 전화를 통해 교환된다. 구엔씨는 전화를 많이 쓰는 편이다. 어떤 달은 전화카드 비용만 8만원을 훌쩍 넘겨버린다. 그래도 아깝다는 생각은 없다.

주말에 가끔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동방마트 주변에 있는 노래방이다. 러시아 노동자들이 이곳을 특히 즐겨 찾는다. 교회는 일요일 점심때면 어김없이 모이는 장소다. 대화동 빈들교회는 이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다. 예배도 보지만 같은 처지의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어 자주 가는 곳이다. 가서 고민도 털어놓고 상담도 한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도록 해달라고 요구도 한다. 운동 경기를 통해 외국생활을 고단함을 달래기도 하고 고향에 대한 향수를 잊어버리려고 노력도 한다.

하지만 구엔씨에게 잊어버릴 수 없는 아픈 기억이 있다. 바로 지난해 10월 한국인에게 맞아서 죽어간 니야의 사망이다. 인간으로서 그럴 수가 있느냐고 자문도 해봤지만 엄연한 현실이었다. 당시 빈들교회 김규복목사는 ″한국은 과연 꿈의 나라인가요....″라고 시작되는 추모시에서 절규를 한 것도 생생하다. 이제 얼마 있지 않으면 니야의 1주기다. 그녀를 생각하는 것조차 두렵다. 다만 빈들교회에서 니야죽음을 계기로 그녀의 고향인 베트남 호치민 구찌마을 복지관 건립사업이 잘되기를 바랄 뿐이다.
어제도 휴일을 맞아 빈들교회를 찾았다. 동료들로부터 이런 저런 소식도 들었다. 돌아오는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또다시 월요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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