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영 여사(소설가·미술칼럼니스트)

◈김제영 여사.

선과 악, 의(義)와 부정의 인식과 가치가 도치된 오늘의 혼돈과 충돌을 단순히 분단 반세기하고도 10년에 가까운 세월 쌓이고 쌓인 민족의 불행과 비극에서 만연된 한국적 에너미(ANOMIE) 현상이라고만 볼 수 있을까

2002. 6. 3. 새천년민주당 당보 (평화와 도약) 제41호에서 접한 기사의 일부를 전재한다.
'한나라당 이회창씨가 선거대책 위원장으로 역할 했던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당시 안기부예산 1179억이 당시 신한국당 사무총장 강삼재를 통해 전달 총선자금으로 뿌려졌다. 이 사건은 돈을 전달한 김기섭 전 안기부 차장만 재판에서 실형을 받았을 뿐 강삼재의원은 한나라당의 방탄국회 덕분에 여전히 건재한다... 後略'

이런 대목도 있다.
'국세청 차장이 대선자금 조성, 세금 깎아준다는 조건으로 기업으로부터 236억 거둬....'
믿어지지가 않았다. 정당은 당원들의 당비 국고보조 그리고 기부금으로 운영하는 것이지 국민의 혈세로 이루어진 국가예산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한나라당이 주요 인물을 동원하여 차 떼기로 선거자금을 넘겨받고도 성에 차지 않아 더 갖고 오라고 호령을 했다는 신문기사를 읽고는 한나라당 그 자체가 강도패거리들의 소굴로 여겨져 가슴이 냉동되는 느낌이었다.

1996년 총선 때는 안기부 예산으로 부동산 구입도 하고 주식투자도 하며 진탕 호화판으로 놀았던 모양이다. 이번에는 차 떼기 돈을 어디다 썼을까.... 더욱 가관인 것은 날강도 패거리의 보스 최병렬의 단식이다. 그가 광주학살에 저항하여 데모를 한 번 해 보길 했나, 강경대의 죽음에 목청 한번 높여 본 적이 있나 무슨 투사라고 단식투쟁을 한단 말인가. 노무현 대통령 측근비리 특검 국회통과는 겨묻은 개를 물어뜯기 위한 똥묻은 개들의 해괴한 굿판이었음을 명심하라.

세상은 온통 벌집 쑤셔놓은 듯 앵앵 시끄럽다. 졸지에 노무현 대통령은 세상에 유일무이한 사기꾼 거짓말쟁이가 되고 말았다.
안대희 중수부장에게 묻겠다. 노무현이 안기부예산을 빼오라고 사주를 했는가. 국세청을 동원하여 기업체에 손을 벌리게 했는가.

노무현은 이슬을 먹고 사는 풀벌레가 아니다. 대통령 이전의 자연인으로써 자신의 토지와 그를 돕는 동지들 사이에 서로 편의를 제공하여 빚을 갚은 일이 그리도 큰 범죄 행위란 말인가.

'앞으로 대통령이 되면 크게 혜택을 입을테니 그 빚은 없는 것으로 하라'명령이라도 하고 토지를 움켜쥐고 있었어야 훌륭한 대통령으로 대접받을 뻔 했단 말인가.

문제의 제기는 후보 시기이다.
그 무렵 한나라당엔 금은보화가 쌓이고(신문에서 언급) 날이면 날마다 권문세가(權門勢家)의 문정약시(門庭若是)였다.
노무현의 기죽은 약세에 용기를 주고자 경제적 편의를 도모해 준 그들의 동지애가 그렇게도 매도될만 한 파렴치 행위였단 말인가. KS마크 게다가 금력 권력 명예를 걸머진 그들의 구미에 맞게 프로크루스테스(Prokroustes)의 잣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재단할 작정인가. 우의도 동지애도 범법시 되는, 그리하여 인간의 정서와 교감이 메마른 우리 사회의 사막화를 바라서인가.
◈문화일보 2003년 12월 30일자.

2003년 12월 30일자 문화일보는 '아듀 2003'란에서 청와대-언론 사이의 과거 관행과의 결별 그리고 의전(儀典) 경호 등에서도 과거에는 상상 조차 할 수 없었던 파격적인 탈 권위주의가 시도 되고 있으며, 대통령 중심으로 주재하던 각종 회의도 참석자 전원이 주체가 되고 국무회의나 공무원들과의 조회(朝會)는 디지털 사이버 쌍방 토론으로 진행되고 있고, 권력 편중의 우려가 있는 특정부처 기관장과의 독대도 삼가하는 등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회의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크게 달라진 청와대(노무현 정부)의 근황을 소개하면서 김교만 기자는 글의 말미에 노무현 대통령의 인사(人事) 스타일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즉 개개인에 대한 업무능력을 상사와 하위직 동료들이 평가하는 다면평가제를 실시하므로서 대통령 후보 시절 아무리 공이 컸거나 긴밀한 유대의 측근이라 할지라도 다면평가제에 걸려 노무현 내각이나 청와대 인사에서 탈락되기 일 수 였단다.

그리고 보면 정치 신조어(新造語)코드 운운(云云)은 노무현 흔들기 제1탄인셈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조차 묵과한 청남대 개방이라든가 균등한 지방 발전의 분권화 구상등은 참신한 노무현의 창의성, 행정력의 현시라고 할 수 있겠다.
민주당이 노무현을 질타함은 이해가 간다. 물론 창피하기는 하지만 애정이 증오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매도는 웃기는 일이다. 까짓 상고 출신이 감히 ···잠재된 권위의식이 애당초 노무현의 집권을 얏잡아 본 자만에서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속내를 포장할 줄도 책략을 세울 줄도 모른다. 그래서 세련되지 않은 언어들이 마음 먹은 대로 불쑥불쑥 쏟아진다.

요즈음 서점가에 두 권으로 된 실화소설 가 관심을 끌고 있다. 작가 서현우는 김현희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위원장으로 인간의 탈을 쓰고 짐승과 악귀의 짓을 서슴지 않은 (그가 서술한 내용이 진실이라면) 범인 색출작업에 백방으로 뛰고있는 마징가제트와 같은 사나이다.

1970년대 중반이던가 육영수 여사가 피격되고서 열흘쯤 지나서였을까 홍제동 내 집(애들 교육 때문에 서울에서 살았다) 골목과 거리에 삐라가 수북히 쌓여 있었다. 흰 치마 저고리를 입은 육영수 여사가 머리를 풀어헤치고 “날 잡아먹은 놈” 긴 손톱으로 박정희 대통령의 얼굴을 할퀴는 삐라였다. 무슨 말썽이라도 생기면 큰일이다 싶어 얼른 그 자리를 떴다. 다음날 반장이 집집을 다니며였는지 동네 어귀 느티나무에 매단 스피커에서였는지 이상한 삐라가 눈에 띄면 경찰서에 신고하라고 당국이 수습에 나섰다.

그 때는 이북에서 풍선으로 남쪽에 날려보냈거나 간첩의 소행이려니 하지만 삐라의 내용이 너무도 흉측하고 괴기스러워 해도 너무 한다고 이북을 나무랐다. 그런데 육영수 여사를 죽인 것은 간첩이 아니고 이쪽이었다니 이게 사실이라면 이 땅에 벼락이 떨어지지 않는 게 신기하다.

출판사의 연결로 의 작가와 통화가 가능했다.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가요.”
“국내 네 개 잡지에서 1989년에 이미 다루었고 일본 미국 등의 외신을 근거로 했습니다. 그리고 독극물로 자살했다는 그 할아버지의 시신을 부검한 의사의 검안서를 제가 갖고 있습니다. 갈비뼈가 다섯 대 부러져 있습니다.”
“그만한 증거가 있으면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염려는 없겠군요.”
“고소당했습니다. 안기부에서가 아니고 그 당시의 안기부 직원 다섯 명의 이름으로요. 고소를 안 하면 시인하는 꼴이 되니까 한번 해 보는 거겠죠.”
“육영수 건은 요?”
“그것은 외신기자가 그 현장을 비디오에 담아놓았습니다. 그 테이프를 한국 수사진영에 넘겼는데 받아들여지지 않았답니다.”

정권유지를 위해서는 아내의 살해(이 대목은 박정희 대통령 몰래 청와대 경호실에서 아첨하느라고 저지른 짓이 아니었을까)한 야수의 얼굴들은 근엄하고 말수도 진중했고 경솔하지 않았다.

3년의 피땀으로 모은 노임을 한 푼도 안 쓰고 가족을 만날 설렘에 비행기를 탔을 노동자 사랑하는 약혼자, 귀여운 아들 딸 눈이 빠지게 아들의 귀국을 기다리고 있을 노모를 가슴에 품고 김포공항에 착륙할 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렸을 백 몇 십 명이 탄 비행기를 폭파하고 이북 간첩의 소행이라고 명 연기를 연출해 낸 자들 그들도 과묵과 위엄으로 권위를 지켰다. 어째서 노무현 대통령만이 면구스럽게 그리도 경솔하고 대통령의 무게를 잡지 못하는 것일까.

이승만도 박정희도 전두환도 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목숨 취급했다. 허우대는 사람이지만 사람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사람을 죽이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실수도 하고 경솔할 수도 있다. 그는 서민대중과 행복을 함께 나누려는 평민이기에 폼을 잡는 권위 따위 필요가 없다.

빼어난 경관과 쾌적한 청남대를 맨발로 걸어 본 사람이면 누구나 노무현 대통령의 따스한 체온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만 흔들고 그만 씹어라. 다행하게도 한나라당이 거듭 태어날 조짐이 보여 기쁘다. 살인마들이 지배하던 정권을 받쳐주던 각료 정치인들은 스스로 정계에서 떠나라.
◈행복한 국민 연구소 창립대회.

2003년 12월 6일은 내게는 여간 소중한 날이 아니었다. 허인회(열린우리당 동대문지구당 위원장) 그는 군사독재에 항거하여 80년대 고려대 총학생회장으로서 가열하게 맞서 싸운 청년 투사였다 투옥되고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민족의 자주적 평화를 건설하기 위해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과거의 투쟁방식이 아닌 남북이 공존할 수 있는 사랑의 길을 모색 기어이 그 길을 찾아냈다. 천민자본에 인간의 품위와 양심이 퇴색되어 가는 오늘 신규장각 운동을 벌이자 였다.

이조사회의 개혁에 소금이 되었던 양심적인 선비와 학자들 그들은 규장각으로 이조사회의 부패와 타락을 막았고 기강을 세웠다. 이 날(12월6일)은 규장각 운동의 모체가 되는 행복한 국민 연구소(신규장각 / 서울시 동대문구 답십리 5동 487-20 3층 / 02-2212-1043 / hih21@hanmail.net)가 발족하는 날이었다.

강만길 교수의 축하강연 특히 통일의 방법은 다양하다. 남이 북을 흡수하느냐 북이 남을 흡수하느냐의 틀에 박힌 고정관념에서 우리는 벗어나야 한다는 말씀은 가슴에 곽 박히는 말씀이었고 문익환 목사님 부인 박용길 여사와 전태일 열사의 어머님의 한나라당 차 떼기 정치자금과 노동자의 처참한 생활을 언급하신 축사는 한마디 한마디가 살아서 꿈틀거렸다.

통일 일꾼들에게 개방한 문 목사님 사저를 찾는 일꾼들에게 깨끗한 이부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빨래하고 집안 정돈하고 늘 바쁘시다는 박용길 할머님 정정하신 모습이 얼마나 마음 든든하였던지.... . 신규장각 운동은 오늘의 부패와 인면수심의 야만성을 정화 평등하고 자주적인 민족의 앞날을 인도하는 등불이 될 것이다.
그것은 2003년의 부도덕한 암흑을 물리치고, 2004년을 맞는 우리 모두의 희망이 될 것이다.

(인터넷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허인회의 단행본 재미있게 역사 공부를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김제영 여사(75)는 충남 조치원에 거주하는 원로 소설가이자 미술평론가이다. 1946년 이화여고를 졸업하고, 196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석려'가 당선되어 등단했으며, 민국일보 문화부기자, 무용한국 편집고문, 음악저널 편집고문, 미술21 편집고문, 미술세계 객원편집인 등 왕성한 활동을 해왔다. 소설작품집 '거지발싸개 같은 것'(1985), '라흐마니 노프의 피아노 협주곡·연주자 기행'(1990) 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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