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구 대동 박할머니 '집 고치던' 날

"윙~윙~~" "뚝딱뚝딱"

18일 대전시 동구 대동 산1번지 달동네에서는 아침부터 때 아닌 소음이 들려온다. 성가실 만도 하지만 항의하는 사람 하나 없이 오히려 '수고한다' 고맙다'는 말들이다.
◈대동복지관과 한화가 손을 잡고 달동네 저소득층 가구와 독거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사랑의 집짓기'행사를 펼쳐나가고 있어 화제다. 사진은 올해 마지막 가구로 선정된 박점순 할머니댁의 공사현장.

대동종합사회복지관 '파랑새 집수리자활공동체'와 (주)한화가 손잡고 '사랑의 집짓기' 행사를 펼치고 있는 그곳은 대전시 동구 대동 산1번지 박점순 할머니(80)의 집. 동구 일대 독거노인과 저소득 가구를 대상으로 하는 이번 행사에서 올해 마지막 대상 가구로 선정됐다.

"늙은이 혼자 사는데 뭐 하러 오느냐"며 무관심한 듯 했던 할머니지만 공사가 시작되자 불편한 몸을 바쁘게 움직여가며 벽돌 부스러기와 나무조각 등을 쓰레기장으로 주워 나른다.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할머니만의 방식이다.

"저거 그 테레비에 나오는 러부하우스 아녀? 러부하우스? "
"점순이 할머니는 좋겠네~ 새 집 지어서~ 우리집도 좀 고쳐주지~"

이웃 노인들은 박할머니 집을 멀찌감치 둘러선 채 새 집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구경하느라 온통 신경이 쏠려있다. 집집마다 뻔한 형편에 부러움과 아쉬움의 눈빛이 교차한다.
◈흙벽과 나무서까래가 무너져내릴듯 한 집 내부. 벽 모서리가 뚫려 비와 바람도 들어온다.

흙벽 위에 얼키설키 덮은 나무와 슬레이트 지붕이 전부인 박할머니의 집은 수십 년 세월을 이겨내느라 낡을대로 낡아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상태.

경사도가 심한 오르막 길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대문 앞 손바닥만한 공간이 뚝 떨어지는 3-4미터 벼랑이어서 지나기에도 불편하다. 지난 여름 폭우에는 담벼락이 무너져 내리는 바람에 위험했던 적도 있었다.

18일부터 3일간 이어지는 이번 '집 고쳐주기 행사'는 주로 지붕수리와 수장공사, 외벽공사, 전기·수도공사, 화장실 공사 등이 주로 실시된다.

공사에 들어간 재료만 해도 철지붕과 시멘트, 각목, 합판, 석고보드, 밤나이트, 스티로폴, 방수액, 모래, 타일 등 약 200만원 어치. 이에 대한 비용은 한화에서 부담하고 파랑새 집수리 자활공동체에서는 작업을 맡기로 했다.

이들의 손이 닿자 까맣게 부식돼 비가 오면 새기 일쑤인 슬레이트 지붕은 철판지붕으로 새 단장을 하고 나무판자가 전부였던 부실한 벽에는 비바람에도 끄떡없을 석고보드와 밤나이트가 덧대어졌다. 무너져 내린 채 흉물스럽던 담도 벽돌과 시멘트로 단단하게 올라섰고 불편한 재래식 화장실과 겨울에는 고드름이 얼던 부엌도 변신을 앞두고 있다.

집이 워낙 낡은 탓에 손 대는 곳마다 고쳐야 할 것 투성이지만 파랑새자활공동체 팀원들은 오히려 기뻐할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면 신바람이 난다. 동구청의 지원을 받아 기초생활보호대상자를 중심으로 자활자립 기회를 주고 있는 '파랑새..'는 현재 4명이 함께 일하고 있으며 성실함과 꼼꼼한 솜씨를 자랑한다.
◈파랑새자활공동체를 이끄는 최광국씨.

"대부분 노인들이 관절염이 많아서 재래식 화장실이 불편하잖아요. 부엌도 그렇고. 되도록 좌변기와 입식부엌 놓아 드리는 게 많습니다"

수십 년 간 목수로 일해오다 4년 전부터 '파랑새' 공동체에 참여, 동구 일대 집수리 일을 도맡고 있는 '작업반장'격인 최광국씨(65. 대전시 동구 신안동)는 그동안 손봐온 집만 수백가구. 이 중 대동이나 신안동, 성남동 등 달동네 영세민 가구가 거의 90%에 달한다.

대부분 집 일부를 개조해 입식 화장실을 내거나 지붕, 담벼락을 다시 세우는 공사가 많지만 집 상태가 너무 심한 경우 아예 터를 닦고 새로 지어낸 집도 서너 곳이나 된다.

그나마 전기가 끊기거나 지붕에서 물이 샌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는 다행이다. 대부분 미안하다며 말을 안해 감전이나 담벼락 붕괴 등 위험에 노출된 적이 다반사다. 그래서 동네를 돌면서도 이곳저곳을 주의깊게 살피곤 한다.

꿀맛같은 점심식사 후 담배 한 대 피우는 것으로 휴식시간 끝. 바로 다음 작업에 들어간다. 3일 안에 모든 작업을 끝내기 위해서는 쨍쨍 해가 있을 때 서둘러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일을 다른 데 가서 하면 서너배 임금을 받거든요. 그래도 이유가 뭐겠어요. 어머니 같은 분들 동네에서 만나면 고맙다고 하도 절을 하시고, 만원짜리 꼬깃꼬깃한거 몰래 와서 주시는 거 보면 그만 둘 수가 없지요. 하루를 살아도 좀 편안하게 계시다 가시면 그게 보람 아니겠어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대문 왼쪽으로 어른 어깨높이의 튼실한 담벼락이 생겨났다. 손바닥만한 화분 앞 벽은 시멘트로 덧대져 말끔하게 정리됐다. 마침 무료급식소에 갔던 할머니가 돌아오신다.

"할머니, 새 집 들어가는 기분이 어때요, 이제 한 30년은 더 사셔야지"
"늙은이가 더 살면 뭐햐. 나는 그냥 고맙지 뭐.. 아유, 인제 비와도 걱정 없겠네~ 하하하하"
연신 잡동사니들을 주워다 나르는 박할머니의 얼굴에 모처럼 웃음꽃이 피어난다.

대동종합사회복지관 박요한 복지사는 "박할머니댁 외에도 예산 9백만원을 들여 동구 저소득층 3가구의 보수공사를 실시해 왔다"고 말하고 "대기업 차원의 사회공헌사업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대동종합사회복지관 파랑새집수리자활공동체는 기초생활보호대상자의 자활 및 자립을 위해 대전시 동구청의 지원으로 구성됐으며 올해로 결성 5년 째를 맞고 있다.

대동종합사회복지관 042-673-8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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