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유의 친화력 발휘 부임 후 민원 격감

◈대전 최초의 여성 소방 파출소장 이오숙 소방위.
불이 났을 때나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열쇠를 잃어버리고 굳게 닫혀버린 현관 문 앞에 서 있을 때조차 가장 먼저 생각나는 번호는 ′119′. 소방서는 시민들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안전을 위해 없어서는 안될 기관이 됐다.

24시간 맞교대 근무에 불 속에 뛰어들어 목숨을 걸고 시민의 안전과 재산권을 보호해야 하는 소방관의 일은 막중한 임무와 책임감으로 남성들에게도 직업에 대한 철저한 사명감 없이는 할 수 없는 일로 인식돼 왔다. 그렇기 때문에 소방의 날(9일)을 맞는 우리들에게는 더없이 가까운 사람들이 소방관이다.

′금녀의 땅′으로 인식되던 일선 화재 현장에서 지역 최초의 여성 소방파출소장이 활약하고 있어 화제가 되고 있다.
대전북부소방서 궁동 소방파출소 소장 이오숙(35) 소방위가 그 주인공. 30,967㎢의 궁동 파출소 관할 26,936명, 8,693세대의 안전과 재산이 그녀의 손에 달려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14년 차의 중견 소방 공무원이지만 그는 대전지역 4개 소방 본서를 모두 거치고 소방본부 방호구조과와 소방 행정과 등 소방 행정 전 분야를 경험한 ′팔방미인′이다.

그가 일선 소방 파출소장에 부임하기까지는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의 경험이 큰 몫을 차지했다. 북부 소방서 관할 지역에서 구암 파출소와 함께 가장 중요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궁동 파출소에 배정된 배경에는 그의 능력과 함께 여성이라는 특성이 유효했다.

대전 4개 소방서 두루 거친 팔방미인

◈이소장은 근무자들의 인화를 위해 소장 집무실이 아닌 대기실에서 주로 근무한다.
궁동 파출소는 주변에 상가들이 밀집해 있어 소방차 한 대가 어렵사리 지나갈 정도로 진입로가 다른 어떤 지역보다 좁다. 때문에 주차 문제와 소음 등을 이유로 주민과 상가 주인들의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곳.

이런 곳에 이 소장이 부임한 뒤 특유의 친화력과 대화 능력으로 민원을 최소하고 있다. 부임 직후 인근 상가와 주민들을 일일이 만나 인사를 나누고 협조를 구했다. 그 덕택에 지난 10월1일 부임한 후 한달여 만에 인근 주민들의 민원제기나 마찰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물론 행정 및 기획업무를 주로 해온 이 소장에게 일선 파출소를 선택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불을 끄는 업무를 담당하는 경방으로 입사했지만 대학에서 행정학과를 전공한 이유로 행정업무에 배치돼 14년간 화재 현장에는 한번도 출동할 기회가 없었다. 오랫동안 화재 현장은 금녀의 장소였고, 이 소장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현장에 단 한번도 출동한 경험이 없는 자신이 화재현장을 진두 지휘한다는 것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두려움이 앞섰다. 물론 지금도 화재 현장이 두렵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누구든지 먼저 나서지 않으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성이라고 못할 것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무섭다고 시도조차 안 한다면 영영 못하겠죠. 기회가 닿고 조금이라도 젊었을 때 배우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금녀의 영역으로 인식되면 화재 현장을 진두지휘하는 여성 소방관의 모습은 후배 여성 소방관들에게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재 원인 등 분석해 피해 최소화

◈소방장비를 확인하고 있는 이소장.
불 속에 직접 뛰어들어 화재를 진화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화재 현장에서 가장 열심히 뛰어다닌다. 체력이나 힘으로 넘을 수 없는 장벽을 부지런함으로 극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부임한 이후 첫 번째 화재는 지난달 23일 7시경 충남대 기초과학관 실험실에서 발생한 사건이었다. 그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80% 이상 진화된 상태였다.

″물론 상황 대기 근무자들이 신속히 출동해 큰 불로 번지지 않고 화재를 진화한 것은 다행이지만 화재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습니다. 화재 현장에 들어가 화재 원인 및 진화 방법을 꼼꼼히 기록했고 잘된 점과 잘못된 점을 며칠동안 분석했습니다″

지난 달 말 새벽 궁동 로데오 거리 호프집에서 두 번째 불이 났다. 이 소장은 충남대 실험실 화재의 경험을 기반으로 현장을 진두지휘하며 신속히 화재를 진압했다. 가연성 물질로 인테리어가 꾸며진 호프집은 모두 타버렸지만 건물 사이 간격이 좁아 주변 상가로 번질 우려가 있는 것을 작은 화재로 막은 것은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그가 궁동 파출소를 지휘하면서 가장 중요시 여기는 것은 직원들간의 인화이다. 목숨을 건 화재현장에서 팀원들간의 손발이 맞지 않으면 신속한 대처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따로 소장 집무실이 있지만 직원들과 함께 대기실에서 근무한다. 직원들에게 눈치를 보이는 일이기도 하지만 소장이라는 위치가 아니라 함께 화재를 진압하는 동료라는 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판단에서이다.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는 것이 소방관 자세″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려운 일은 있다. 화재현장을 뛰어 다니고 18명의 직원들을 지휘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은 6일에 한번씩 반드시 해야 하는 화재출동 대기근무이다. 남편과 두명의 자녀들에게 6일에 한번씩 집을 비우는 일은 미안스럽기만 하다.

11월 들어 이 소장은 더욱 바빠졌다. ′불조심 강조의 달′을 맞아 각 공공기관 및 학교에서 실시되는 화재예방교육을 모두 이 소장이 도맡아 하고 있다. 소방본부에서 홍보 업무를 맡은 경력이 있기 때문에 매일 한군데 이상을 찾아 화재 예방교육을 벌인다.

앞으로 싶은 일을 묻는 질문에 이 소장은 ″지금까지 일 해온 날보다 앞으로 활동할 날이 더 많이 남아있습니다. 욕심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소방관이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겠다 또는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습니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에 대비하고 예방하는 것이 소방관 본연의 자세겠죠. 더불어 저에게는 ′대전 최초의 여성 소방파출소장′이라는 이름표가 붙어있기 때문에 오명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더욱 열심히 해야겠죠″라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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