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들이 쓰던 건축연장 24년째 수집

◈24년째 목공구를 수집하고 있는 목원대 이왕기 교수.
옛 선인들의 멋이 느껴지는 사찰이나 장롱 등을 바라보면서 ′과연 이것을 어떤 연장을 써서 만들었을까′ 관심을 가져본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얼마 전만 해도 너무 흔해 그냥 지나쳤던 먹통이나 대패, 끌 같은 연장을 모으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
건축학자 이왕기씨(목원대 건축과 교수)가 그 주인공이다.

이 교수가 어쩌면 불쏘시개로, 아니면 민속주점의 장식품으로 전락하고 말았을 건축연장들을 수집한 것은 벌써 24년째.

″처음부터 연장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요. 전공이 '한국건축사'다 보니 조금의 관심은 있었죠. 1978년 우연히 서울 지하철역을 지나다 역구내에서 당시 돈으로 적지 않은 2만원을 주고 먹통하나를 구입해서 책장에 놓고 보게됐죠. 그 후로 오래된 목공구에 관심을 갖게 됐고 목원대 강의를 시작하게 된 80년 가을을 전후해 본격적인 수집에 나섰죠″

이교수가 24년 동안 모은 연장은 700여점. 이중에는 16세기 말경 만든 것으로 보이는 대패를 비롯해 먹통, 자귀, 끌, 윤도판, 톱, 꺾쇠, 깎낫, 후비칼 등 종류도 다양하다.

″사찰이나 고 건축물을 볼 때 건축양식을 제일 먼저 살펴보게 되죠. 그 다음으로 이 건물은 어떤 공구를 사용해서 만들었겠구나 하는 상상이 지요. 그러다 보면 간혹 놀랄 때가 있어요. 조선 후기 건축물인데도 불구하고 조선 전기 때의 도구를 사용한 흔적이 발견되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도구가 발달했다고 하지만 건물에 따라서는 옛 도구가 더 어울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전국 각지서 대패·먹통 등 700여점 모아

우리나라 건축에 쓰이는 공구는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중국, 일본, 한국 3개국의 공구는 같은 동양권이면서 서로 뚜렷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먹통 하나만 보더라도 한국은 줄을 입으로 빼고 먹칼은 뒷면에 보관하도록 되어있어 목조각 같은 느낌을 준다. 반면 중국은 먹실을 뒤로 빼고 투박한 모양은 날렵하나 돌리는 손잡이가 없어 불편해 보인다.

그는 한국 건축물이 투박하지만 순수한 멋이 느껴지는 반면 일본 건축물은 섬세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다 연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다는 설명이다.

″조선 대패는 긴 손잡이가 있어 이를 잡고 앞으로 쭉 밀고 나가면서 나무의 평면을 고루는 자루 대패였죠. 하지만 일본 대패는 손잡이가 없고 틀만 있어서 대패 틀을 손으로 잡고 앞으로 당겨 나무를 깎는 틀 대패입니다. 우리나라의 자루대패는 표면을 곱게 마름질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지만 힘이 적게 드는 장점이 있고 일본대패는 당기는 힘과 누르는 힘이 더 들어가지만 마름질이 섬세합니다″

최근 이교수는 경복궁 근정전 해체 복원에 참여하면서 자루 대패의 흔적을 처음으로 찾아내 17세기까지 이 대패가 쓰여졌음을 밝혀냈다.

"연장에는 장인들의 땀 배어 있어"

◈중국에서 사용했던 자(가운데)와 우리나라의 전통자.
오랜 세월 공구 수집을 하다보니 웃지 못할 일도 많았다. 어디 원고를 써준다거나 강연을 나가서 받은 돈은 고스란히 전부 공구 사는 데 쓰여졌다. 또, 어떤 날은 좋은 공구가 나왔다는 골동품 가게의 전화를 받고 휴강을 하면서 까지 달려갔던 일도 지금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난다.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지방에 가면 제일 먼저 들르는 곳이 골동품상입니다. 요즘은 단골 골동품 가게에서 좋은 물건이 나오면 먼저 연락이 와요. 공구가 골동품 가게의 주 판매 품목은 아니잖아요. 그러다 보니 목공구들을 하나가득 모아두고 한쪽 구석에 쳐박아 놓는 경우들이 많아요. 운이 좋으면 목공구 하나 살 돈으로 수십가지를 사는 경우도 있고 또 어떤 곳을 가면 버려 두었던 것을 산다고 하니까 터무니없는 값을 부르기도 하곤하죠. 오랜 시간 골동품을 모으다 보니 이젠 물건을 보면 값이 저절로 보여요. 골동품 상인들에게 그 물건이 왜 그 값을 받아야 되는지 오히려 설명해 줄 정도입니다″

지난 1999년은 건축문화의 해였다. 그 동안 수집됐던 목공구들은 여기서 진가를 발휘했다. '건축 장인의 땀과 꿈'이란 주제로 열린 전시회에서는 그의 목공구 100점이 전시되어 전시회를 주도했다.

그는 일이 잘 안 풀리고 복잡한 일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목공구들을 손질한다. 목공구를 손질하고 있으면 복잡했던 마음이 하나, 둘 풀리면서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이 교수에게는 아직 이룰 꿈이 남아있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었던 낡은 것들이지만 지금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물건들을 한곳에 전시해 사람들 앞에 보여지는 날을 꿈꾸고 있다.

◈이교수는 공구수집은 물론 북한건축물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를 통해 책들도 발행했다.
″제가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어요. 여건이 된다면 대전근교에 조그만 전원주택을 직접 지어 도구전시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쪽에서는 목공구들을 전시하고 또, 마당 한 가운데서는 그 목공구들을 이용해 작은 가구를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체험의 장을 제공하는 게 제 꿈입니다″

이 교수는 오늘도 언뜻 보면 낡고 볼품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건축 장인의 땀과 꿈이 고스란히 배어있는 연장을 닦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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