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대전 북부서 윤승원 경사

◈청촌 윤승원씨는 대전 월드컵 기간 중 자원 봉사자와 경찰관이 겪은 월드컵 뒷이야기를 수필로 써내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었다.
청촌(靑村) 윤승원씨(50).
문인이나 화가들에게나 있을 법한 호(號)가 윤씨가 쓴 글 말미에 항상 달려 있다.
그는 두 가지 인생을 살고 있다. 낮에는 경찰 윤승원으로 생활하고 그 외 시간은 수필가 청촌으로 살고 있다.
경찰과 수필가.
대전북부경찰서 정보과 23년차 베테랑 경찰인 그에게 수필가는 어쩌면 '경찰과 도둑'만큼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다. 기세등등해야 할 범죄 현장과 관조하면서 조용히 쓰는 수필은 아무래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는 사건을 다루면서 수필이라는 아름다운 글로써 자칫 건조해지기 쉬운 인생의 분위기를 중화시키고 있다.

′청촌′(靑村)이라는 호(號)도 익살스럽다.
청양 촌사람이라는 뜻이다. 소박한 호(號)만큼이나 외모도 수수하다. 약간 벗어진 머리에 뭉툭한 코, 가늘지만 끝이 둥글게 마무리 된 선한 눈매, 웃을 때마다 환히 드러나는 하얀 치아까지 그야말로 청양 촌사람을 대표하는 모습이었다. 청양의 이웃 아저씨의 모습 그대로이다.

월드컵 뒷 이야기 잔잔한 감동

″삶을 담담히 그려낼 뿐″이라고 수필가라는 이름을 부끄러워하며 밝히기를 꺼린다. 하지만 낭중지추(囊中之錐)이다. 월드컵 대전경기장 안전요원으로 현장 근무를 한 뒷 이야기가 인터넷과 경찰문학회소식지에 게재되면서 많은 시민과 동료들의 공감을 사고 있다.

윤씨는 개인 홈페이지(http://my.dreamwiz.com/ysw2350) ′청촌수필′과 ′충남경찰문학회′소식지에 ′노란 조끼의 월드컵이야기′를 연재하고 있다. ′경찰과 자원봉사자의 만남′′경기장 경찰의 소망′으로 시작한 그의 글은 ′자원봉사 대학생에게 보내는 경찰의 편지′까지 총 9편의 글에서 월드컵 열기 뒤에 가려진 진솔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현장의 생생함과 잔잔한 감동이 느껴지는 글들이다.

경기장 안 보이는 곳에서 묵묵히 안전 활동하는 경찰관과 자원봉사자가 겪었던 에피소드를 기록하고 있는 이 글은 경찰관으로서 안전유지에 대한 강한 의지와 근무 중 애로사항, 월드컵을 겪으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담아내고 있다. 또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함께 근무하는 과정에서 요즘 젊은이들에게서 느끼는 감정들을 솔직 담백하게 그려냈다. 물론 대표팀이 승리 후 열광하는 거리의 풍경, 그 열기 속에서도 주체 할 수 없는 애국심을 잘못된 방법으로 표현하는 젊은이들에게 던지는 충고도 있다.

월드컵 안전요원 중 두려워

그는 ″대전 월드컵 경기가 불미스러운 일없이 잘 끝나 다행이다. 사실 처음 경기장 근무를 배정 받았을 때 두려움이 앞섰다. 한 사람 한 사람 가방 검사를 하면서 내가 혹시 빠뜨리고 넘어가는 것이 없는가 두려웠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감정은 그가 쓴 첫 번째 글에도 잘 나타나 있다.

「...금싸라기 같은 52,144평의 방대한 규모에 우람한 형체로 우뚝 자리한 월드컵 대전 경기장. 나는 이 경기장을 둘러 볼 때마다 엉뚱하게도 영화 '쉬리'의 한 장면을 떠올린다. 일상적인 직업의식, 그러나 절대 기우(杞憂)이길 바라면서도, 만약에 그 영화의 끝 장면과 같은 돌발사태가 이곳에서 벌어지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하랴. 현장의 안전점검 경찰관들은 그런 까닭으로 수많은 '위해(危害)요소'를 미리 상정하여 치밀하게 관찰하여야 한다...」

그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들은 월드컵 경기를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윤씨는 ″ 나 같은 경찰관이야 직업이기 때문에 한 일이지만 자원 봉사자들은 그야 말로 애국심 하나로 아무런 보수를 받지 않고 월드컵을 위해 최선을 다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성공 월드컵을 만들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또, "열광적이면서도 성숙한 응원 문화를 보여준 붉은 악마들은 이번 월드컵을 세계가 대한민국을 새롭게 보도록 만든 주인공들이다. 수고했다는 말과 함께 따뜻한 악수를 건넸던 사람들은 자원봉사자와 경찰관들이 마지막까지 보람을 갖고 일 할 수 있게 힘을 줬다"고 말했다.

안전요원으로 북관 4층 출입구에서 일했던 두 명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는 한국외국어대에 다니는 큰 아들(준섭, 21)과 내년이면 대학에 들어갈 둘째 아들(19, 종운)을 마주하고 이야기를 하는 듯한 세대와 계층을 뛰어 넘는 따스함이 느껴진다.

정식 등단한 수필가

윤승원씨는 1990년 한국문학 지상 백일장에서 수필 부문 장원을 차지하면서 등단했다. 그 후로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93)′′덕담만하고 살 수 있다면(97)′′우리동네 교장 선생님(2000)′등 3권의 수필집을 냈다.

그가 수필을 쓰기 시작한 것은 자신의 직업과 고단한 일상,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서 였다. 윤씨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을 삶의 한 구석에 묶어 두고 싶었다″고 말한다. 또 글을 쓰면서 자칫 경찰관이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볼 수 있는 무미 건조함과 거친 말을 정화하기 위한 자기 수양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힘들고 고된 하루를 시작하지만 ″북부서로 출근하는 아침 시간 송강동 날망 고개 넘어 내려다보이는 신탄진 공단의 연기 속의 북부서는 녹색 일터″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의 카메라에는 아름다운 아침 풍경이다.

이런 그에게 글쓰기는 생활이다. 차에는 항상 메모지가 항상 준비돼 있다. 도로에서 신호 대기를 하는 잠깐도 작문의 시간이다. 범죄 현장에서 스쳐 지나가는 글감들도 그의 수첩을 벗어날 수는 없다. 또 저녁시간 ′밥상 머리′에서 아내 원유순씨(50)와 막내아들 종운군(19)에게 자신의 글을 읽어주며 1차 품평회를 갖는다. 글을 읽고 밤새 그림을 그려오는 종운군의 작품은 그의 글을 더 빛나게 해 준다.

윤씨는 ″오히려 저의 긴 글보다 아들 녀석의 그림 한 장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림은 글을 함축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저의 글을 누군가가 가까이에서 읽어 준다는 것입니다. 종운이가 그린 그림을 글과 함께 홈페이지에 올려놓을 때 글쓰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런 그가 글을 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솔직함′이다. 그 동안 낸 수필집과 이번 ′노란 조끼의 월드컵 이야기′까지 생활인으로서의 경찰관의 삶과 가정, 고향 청양과 제2의 고향 대전에 대한 글들이 빼곡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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